1924년에 개장한 비행장에서 출발해 활주로는 하나뿐이었으며, 주변의 고층 건물들과 산, 바다 때문에 착륙하기 매우 어려운 공항으로 악명높았다. 1998년 7월 6일 홍콩의 신공항인 첵랍콕 국제공항이 개항하면서 폐쇄되었으며, 폐쇄 당시까지 일본의 하네다 국제공항과 함께 아시아에서 가장 번화한 국제공항이었다.
이 부지는 1922년 구룡 반도 일대에 Ho Kai와 Au Tak이 함께 세운 카이탁 투자회사가 매입한 것이 있었는데, 사업이 실패한 뒤 그 땅을 홍콩 정부가 매입하였다.[1][2]카이탁이라는 이름은 여기에서 온 것이다.
카이탁 공항은 1924년에 해리 애봇(Harry Abbott)이 비행장을 세운 것이 시초이며,[3] 그 뒤 영국 공군 등이 사용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때에는 일본군이 점령하기도 했다.
1954년에 이름을 홍콩 국제공항으로 바꾸고, 바다를 매립해 활주로를 1958년에 2,542 m로, 1975년에 3,390 m로 연장하는 등 공항시설을 확충하였다. 그러나, 활주로가 1개 뿐인 카이탁 공항으로는 경제 성장에 따라 늘어나는 항공 수요를 감당하기에 어렵게 되어 1980년대 말부터 첵랍콕섬에 새로운 공항을 만드는 사업이 추진되었다.
카이탁 공항은 연간 2,400만 명의 여객까지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지만, 1996년에 연간 2,950만 명의 여객(당시 세계 3위)과 156만톤의 화물(당시 세계 1위)을 수송하고 있었다.[4] 이 공항은 새로운 홍콩 국제공항이 개항한 1998년7월 6일에 폐쇄되었다.
카이탁 공항 활주로의 13방향 착륙 접근은 곡예에 가까운 조종이 필요해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았다.
활주로 13방향에 착륙하기 위해서는 먼저 란터우섬 서쪽에서 기수를 북동쪽으로 낮추어 우회전한다. 그러면 비행기는 복잡한 항구 위를 지나 인구밀도가 높은 구룡의 서부 지역을 지나게 된다. 여기까지는 1974년부터 IGS(ILS의 전신)에 의해 유도되었다.
이후 조종사는 비행기를 활주로와 일직선으로 맞추어 착륙하기 위해서 구룡 자이 공원(九龍仔公園, 영어:Kowloon Tsai Park)에 설치된 유도표지를 기준으로 삼아 활주로로부터 북서쪽으로 약 3.7 km 거리에서 47° 각도로 우회전해야 한다. 이 때의 비행기 고도는 1,000 ft(300 m) 미만이어야 한다.
이 경우 일반적으로 조종사들은 약 650 ft(200 m)의 높이에서 우회전을 시작한 후, 140 ft(43 m)의 높이에서 비행기를 활주로와 일직선으로 맞추어 진입했다.
활주로 31방향에서는 ILS(계기착륙장치)를 통한 착륙이 가능했지만, 활주로 13방향에서는 위험 요소가 많은 접근 방식 때문에 ILS를 사용할 수 없었고 조종사의 시계(視界)에 의존한 수동 착륙만 가능했다. 그로 인해 활주로 13방향은 시야가 좋지 않을 때는 쓸모가 없었다.
이런 어려운 착륙 때문에 착륙 도중 여객기의 꼬리가 활주로에 부딪히는 테일스트라이크가 일어나기도 했다.
카이탁 공항이 폐쇄된 후 카이탁 공항의 부지는 10년 가까이 방치되다가, MTR 그룹과 선홍카이 그룹이 2010년 이후 공동으로 옛 공항 청사와 주차장 등의 부지를 공항 인근 저개발 지역의 부지와 묶어 주상복합 아파트 등 대단위 주거 단지로 개발 중에 있다.
주룽반도에서 작은 반도처럼 튀어나온 카이탁 공항의 옛 활주로 부지는 2009년 말 대형 여객선터미널 부지로 활용하기로 결정되었고, 2013년 6월 12일에 카이탁 크루즈 터미널(Kaitak Cruise Terminal)이 개장하였다. 카이탁 크루즈터미널은 홍콩의 조명 쇼인 심포니 오브 라이트에도 참여한다.
1983년10월 18일, 루프트한자보잉 747 화물기는 2번 엔진이 고장 난 후 이륙을 포기했는데, V1을 초과하는 속도를 초과하여 활주로를 연약지대로 넘어뜨려 심한 손상을 입었다. 탑승한 세 명의 승무원은 경미한 부상만 입었다.
1988년8월 31일, 중국민항 605편호커 시들리 트라이던트의 오른쪽 바깥쪽 플랩이 비와 안개 속에 착륙하던 중 31번 활주로의 접근등을 명중시켰다. 이어 오른쪽 주 착륙 기어가 입술에 부딪혀 쓰러지면서 항공기가 활주로를 이탈해 항구로 미끄러졌으며 7명이 사망했다.
1993년11월 4일, 중화항공 605편보잉 747-400기가 태풍 중 착륙 중 활주로에 오버런을 했다. 그 당시 바람은 세차게 불고 있었고, 비행기의 불안정한 접근에도 불구하고 기장은 돌아가지 않았다. 활주로를 2/3 이상 내려갔고 활주로가 끝나기 전에 멈출 수 없었다. 비록 항공기가 활주로 끝을 넘어 물에 잠겼지만 396명의 승객과 승무원 중 부상자는 23명에 불과했다.
1994년9월 23일, 헤비리프트 화물 항공록히드 L-100-30 헤라클레스는 13번 활주로에서 이륙한 직후 통제력을 잃었다. 프로펠러 중 한 개의 피치 조절 시스템이 고장 난 것으로 알려졌으며 6명이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