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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왕국(크메르어: ព្រះរាជាណាចក្រកម្ពុជា [prĕəh riə.ciə.naː.caʔ kam.pu.ciə], 영어: Kingdom of Cambodia) 또는 약칭 캄보디아(크메르어: កម្ពុជា [kɑmˈpuˈciə])는 동남아시아 인도차이나 반도에 있는 입헌 군주국이다. 태국, 라오스, 베트남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남서쪽에는 타이만을 끼고 있다. 국토 면적은 18만 제곱킬로미터다.
캄보디아 왕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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ព្រះរាជាណាចក្រកម្ពុជា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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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어 | 크메르어: ជាតិ សាសនា ព្រះមហាក្សត្រ Chéatĕ, Sasânéa, Preăh Môhaksâtr | ||
표어 설명 | 국가, 종교, 국왕 | ||
국가 | 장엄한 왕국 | ||
수도 | 프놈펜 북위 11° 33′ 00″ 동경 104° 55′ 00″ | ||
캄보디아(캄보디아) | |||
정치 | |||
정치체제 | 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 단일 국가 | ||
국왕 | 노로돔 시하모니 | ||
총리 | 훈 마넷 | ||
왕실 | 노로돔 왕조 | ||
역사 | |||
독립 | 프랑스로부터 | ||
• 승인 | 1953년 11월 9일 | ||
지리 | |||
면적 | 181,035 km2 (88 위) | ||
내수면 비율 | 2.5% | ||
시간대 | (UTC+7) | ||
DST | (UTC+7) | ||
인문 | |||
공용어 | 크메르어 | ||
데모님 | 캄보디아인 | ||
인구 | |||
2023년 어림 | 17,423,880명 (71위) | ||
인구 밀도 | 96명/km2 (95위) | ||
경제 | |||
GDP(PPP) | 2024년 어림값 | ||
• 전체 | $1067억 (97위) | ||
• 일인당 | $6,541 (144위) | ||
GDP(명목) | 2024년 어림값 | ||
• 전체 | $332억 (151위) | ||
• 일인당 | $2,037 (108위) | ||
HDI | 0.600 (148위, 2022년 조사) | ||
통화 | 리엘(미국 달러 통용) (KHR) | ||
종교 | |||
국교 | 상좌부 불교 | ||
종교 | 불교 97% 이슬람교 2% 기독교 0.3% 기타 0.5% | ||
기타 | |||
ISO 3166-1 | 116, KH, KHM | ||
도메인 | .kh | ||
국제 전화 | +855 |
캄보디아 공식 종교는 상좌부 불교로, 국민 95%가 믿고 있다. 캄보디아 수도이자 가장 큰 도시는 프놈펜으로, 정치, 문화, 경제 중심지다. 현 총리는 2023년에 퇴임한 훈 센 전 총리의 아들인 훈 마넷은 아버지로부터 총리직을 물려받았으며 2023년부터 집권을 시작했다. 현임 국왕은 노로돔 시하모니이다. 크메르 제국의 유적인 앙코르 와트와 앙코르 톰 등으로 유명하다. 주요 도시로는 프놈펜, 시엠레아프, 바탐방, 캄퐁참 등이 있다.
나라 이름 캄보디아는 크메르 제국의 다른 이름인 '캄부자'(산스크리트어: कंबुज)에서 유래한 프랑스어 '캉보주'(Cambodge)가 영어화된 것을 받아들인 것으로, 원래는 구한말에 이 나라의 국호를 '금변국(金邊國)'으로 불리던 것이 일제강점기에 일본어식 발음인 '캄보자'(カンボジア)로 대체되어 들어왔었다. 1970년 이전 왕국시대에는 캄보디아로 불려오다가, 1970년 론 놀의 쿠데타로 공화국이 성립되자 국명이 크메르 공화국으로 바뀌었다. 1975년 4월 크메르 루주에 의해 수도 프놈펜이 함락되고 국명은 또다시 민주 캄푸치아로 바뀌었다. 4년 뒤인 1979년 베트남의 지원을 받은 헹 삼린이 캄푸치아 인민 공화국으로 바꾸었다가, 이후인 1993년에 현재의 국명으로 되돌아왔다
고고학적 증거에 의하면 캄보디아에는 기원전 2000년~1000년대 사이에 신석기 수준의 문명을 가진 사람들이 살았다.[1] 이들은 주로 중국 동남부에서 이주해 온 것으로 추측된다.
기원후 1세기경에는 메콩강 하류와 하구에서 농경과 어로, 목축을 통해 생활하며 조직화된 사회를 구성한 집단이 나타났으며, 이들은 인도와의 교류를 통해 종교 등의 문화를 받아들이며 인도차이나 반도에 알려진 첫 번째 국가인 푸난을 세웠다. 푸난은 1세기에서 6세기 말 경까지 번영했으며, 이후에는 메콩 강 중류에서 일어난 쩐라의 공격을 받아 위축되다가 7세기 중엽 멸망하였다.
이 시기의 쩐라는 지방 분권적인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쩐라의 왕인 자야바르만 1세가 681년 사망한 후, 쩐라는 육진랍과 수진랍의 두 개의 나라로 분리되었으며, 이후 말레이 민족과 자바인의 압박을 받아 현재의 캄보디아 지역의 국가들은 점차 속국화하였다.
이후 9세기에 자야바르만 2세가 등장하여, 자바인들로부터의 독립을 선포하고 주변 소국들을 정복하였으며, 종래에는 앙코르를 수도로 하는 왕조를 세웠다. 이것이 크메르 제국의 시작이다. 크메르 제국은 9세기에서 13세기에 걸쳐 번영하였으며, 앙코르 와트와 같은 유적들도 이 시기의 군주들에 의해 건설되었다.
그러나 13세기 초 자야바르만 7세의 치세가 끝난 후 점차 약화되어 14세기에는 서쪽의 아유타야와 남쪽의 따웅우 왕조(현재의 미얀마), 그리고 동쪽의 베트남 사이에서 약소국으로 연명했다.[2] 1431년에는 아유타야의 침공으로 수도 앙코르를 함락당하고 현재의 프놈펜으로 천도하기도 했으며[3], 18세기 말에는 베트남에서 일어난 떠이선의 난과 미얀마인의 아유타야 침공의 여파로 국토가 황폐화되기도 하였다.[3]
1863년 프랑스의 보호령이 되었고,제2차 세계전쟁 때인 1940년부터 일본이 패망한 1945년 8월까지 일본군에게 점령되었다.1954년 프랑스 공동체 내의 자치국으로 독립했지만, 베트남 전쟁 등의 영향으로 인해 크메르 루주가 득세하는 등 계속해서 정권이 불안정했다. 크메르 루주 등의 준동과 베트남의 개입으로 인해 내전이 1980년대 말까지 계속되었으며, 이 시기 중 킬링필드가 일어나기도 하였다.
킬링필드는 두 시기로 나뉜다.
1기 킬링필드는 1969년에서 1973년 베트남 전쟁중이던 미군이 퍼부은 폭격으로 인한 것이었다. 캄보디아에 쏟아 부은 포탄의 양은 무려 54만 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일본에 투하했던 16만 톤의 세 배가 넘고, 한국전쟁 기간에 미군이 사용한 49만 5천 톤마저 능가하는 엄청난 양이었다. 제네바협약을 위반한 불법 폭격이었다. 죄 없는 수십만 민간인들이 숨지고, 그보다 더 많은 숫자가 평생 불구가 됐다.[4]
2기 킬링필드는 1975년에서 1978년 사이, 민주 캄푸차시기에 캄보디아의 군벌 폴 포트가 이끄는 크메르 루주라는 무장 공산주의 단체에 의해 저질러진 학살을 말한다. 원리주의적 공산주의 단체인 크메르 루주는 3년 7개월간 전체 인구 700만 명 중 1/3에 해당하는 200만 명에 가까운 국민들을 강제노역을 하게 하거나 학살하였다.
1989년 이후 베트남군이 철군하였고, 1991년에는 파리 평화협정이 체결됨으로써 내전이 공식적으로 종결되고 유엔의 임시 관리안에서 놓이게 되었다. 1993년에는 망명해 있던 국왕 노로돔 시아누크를 다시 불러오고 보통 선거를 통해 정체를 입헌군주제로, 국명을 캄보디아왕국으로 바꾸었다. 이후 총리 훈 센에 의한 쿠데타가 한 차례 있었지만, 1993년 이후로 정치는 대체로 안정되어 왔다.
캄보디아는 181,035 제곱 킬로미터의 면적을 가지고 있다. 북서쪽으로는 태국과 800 킬로미터, 북동쪽으로는 라오스와 541 킬로미터를 접경하고, 1,228 킬로미터를 동쪽과 남동쪽으로 베트남과 맞닿아 있다. 타이만을 따라서 443 킬로미터의 해안선이 있다.
캄보디아의 기온은 10 °C~40 °C에 이르며, 열대 몬순 기후이다. 10월~1월은 30 °C 정도이며, 2월~5월은 32 °C ~ 35 °C에 이른다.
우기와 건기로 나눌 수 있는데 우기는 5월~10월 사이로 내륙으로 불어오는 남서 몬순이 타이만과 인도양에서 습한 바람을 몰고온다. 이로 인해 연 강수량의 75%가 여기에 집중되어 있으며 7월~9월에 절정을 이룬다. 건기는 10월~4월 사이로 11월~1월 사이는 우리나라 초가을 정도로 비교적 시원하지만 이때를 제외하면 매우 덥고 건조하다.
캄보디아는 25개 주(ខេត្ត, khaet)와 4개 지방 자치체로 구성되어 있다.
캄보디아의 정치는 1993년에 제정된 헌법에 따라 의회에 의해 운영되는 입헌군주제를 따르고 있다. 캄보디아의 총리는 의회의 수반이고, 국왕은 국가의 수반으로 다당제의 형태의 정당을 운영하고 있다. 총리는 국회의 승인을 받아 국왕이 임명하며, 총리는 집행부(행정부)의 권력을 행사한다. 입법권은 집행부와 상,하원 양 의회에 주어진다.
2004년 10월 14일, 1주일 전 갑작스런 노로돔 시아누크 국왕의 퇴위로, 노로돔 시하모니 국왕이 왕위 선발 위원회에 의해 선택되었다. 시아누크 국왕의 간택은 훈센 총리와 국회 의장인 노로돔 라나리드 왕자가 승인함으로써 계승식은 마무리되었다. 왕위 계승식은 10월 29일 프놈펜에서 거행되었다. 군주는 상징적이며, 실제 정치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노로돔 시하모니 현 국왕은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예술에 정통하며, 캄보디아 전통춤에 조예가 깊고, 체코에서 오랫동안 체류를 했기 때문에 체코어도 능숙하다.
캄보디아는 2006년 국제 투명성 기구가 조사한 국가 투명도 지수에서 163개국 중 151위를 차지했다. 2007년에는 179개국 중 162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부정부패가 심각한 수준이다. 이는 라오스, 미얀마에 이어 동남아 3대 부패국에 손꼽히는 것이다.
BBC에 의하면 캄보디아 정계에서 부정부패가 만연하며,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지원되는 국제 원조가 불법적으로 정치인들의 호주머니 속으로 새어나간다는 보도가 있었다.[5]
캄보디아의 부정 부패는 광범위한 소득 불균형을 이루어 빈부의 격차가 뚜렷하다.
캄보디아는 UN 회원국이며, 세계은행과 IMF의 특별 회원이다. 아시아개발은행(ADB)과 ASEAN 회원국이고, 2004년 WTO에 가입하였고, 2005년에는 동아시아 정상회의(EAS)에 참가하였다.
캄보디아는 많은 나라들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동남아시아 이웃 나라들과 1973년 파리 협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중국, 유럽 연합, 일본, 러시아 등과 수교 관계를 맺고 있다. 또한 캄보디아는 북한과 남한 모두와 수교 관계를 맺고 있다.
1970년과 80년의 격동이 지나가고, 몇 차례의 국경 분쟁을 이웃국들과 경험했는데, 여전히 일부 도서와 베트남에 인접한 국경 및 태국과 접한 바다의 경계는 아직도 분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2003년 1월, 프놈펜에서 태국의 인기 여배우의 발언으로 촉발된 앙코르 와트와 관련하여 소요가 발생했는데, 캄보디아의 언론과 훈센 총리까지 곤욕을 치른 사건이었다. 당시 태국은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국경을 폐쇄하고 전투기를 출격시키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2003년 3월 21일, 캄보디아 정부에서 태국 대사관을 파괴한 보상금으로 600만 달러의 보상금을 지불하고 국경이 다시 개방되었다.
2008년 태국과의 국경에 위치한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록을 둘러싸고 태국과 군사 충돌이 일어났다.
1993년 GDP 24억 달러에서,2006년 72억56백만 달러, 2008년 103억 달러로 증가하였고, 1인당 GDP는 1993년 229달러, 2006년 513달러, 2008년 739달러로 증가하였다.[6] 2006년의 경제성장율은 10.8%이다. 2006년 인플레이션은 2.6% 수준이고, 2007년 추정치는 6.2%이다.
1인당 국민소득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지만, 주변 지역의 다른 나라에 비하면 아직도 낮은 수준이다. 대부분의 도시 주거는 농업에 의존해 있고, 그 관련 하부 구역도 마찬가지이다. 벼 농사, 어업, 목재, 의류, 고무는 캄보디아의 주요 수출 품목이다. 2,000년도에 이르러서야 쌀의 자급자족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1970년대에는 면 생산이 유명하였으나, 폴 포트 이후에는 현재 면 생산이 없다.
1997~1998년에는 주변국의 경제 위기와 폭동, 정치문제로 인해 경제 회복이 급격하게 떨어졌는데, 외국 투자와 관광 또한 급격히 저하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성장율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1999년 이후 경제 개혁과 성장이 5%대를 회복하였다. 혹독한 홍수 등의 자연 재해에도 불구하고, 2000년도에 GDP는 5% 성장하였고, 2001년에는 6.3%, 2002년에는 5.2%를 기록하였다. 캄보디아의 주요 산업은 농업, 어업, 임업이다.
관광산업은 가장 빨리 성장하는 산업 중의 하나로, 1997년 21만 9천명에서, 2004년에는 105만명을 돌파하였다. 2003~2004년의 성장율은 5%대로 꾸준하였다.
특히 학교 등의 기본적인 사회간접자본의 부족으로 시외의 중장년 층은 교육률이 아주 떨어지고 있다. 불안정한 정치와 부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외국의 투자는 꺼려지고 있고, 외국 원조도 연기되었다.
이 나라의 경제 구조는 후진적이고, 전기를 마음대로 쓸 수 없다. 전기를 태국에서 수입해야 할 뿐만 아니라 수입 비용도 비싸다. 농촌 지방은 교육을 받은 사람이 많지 않다.
육상교통망은 수도 프놈펜에서 각지로 도로가 뻗어 있고, 철도도 프놈펜으로부터 서쪽으로는 태국과의 국경 도시인 포이펫(크메르어: ឃុំប៉ោយប៉ែត), 남부의 캄포트(크메르어: កំពត)를 거쳐, 캄퐁솜만(灣) 방향으로 가는 노선이 있는데 모두 단선이다.[7] 또 메콩, 톤레사프, 바사크 등의 하천은 중요한 수상 교통로이다. 외항선은 프롬펜과 콤퐁솜에 기항한다.[8]
주민은 크메르족이 90%이며, 크메르어가 공식 언어이다. 나머지는 베트남계 5%, 중국계 1%, 기타 4%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크메르어는 오스트로 아시아어군의 몽크메르 하위계보이다. 인도차이나계의 프랑스어가 한때는 사용되었고, 지금도 일부는 사용하고 있으며, 과거 식민지 유물로 대부분 오래된 캄보디아 사람들은 제2 외국어로 사용하고 있다. 아직도 일부 학교와 대학교에서는 프랑스 정부의 기금을 지원받아 프랑스어를 가르치고 있다. 캄보디아 프랑스어는 캄보디아에서 발견할 수 있으며 주로 정부기관에서 사용되는 방언이 섞인 프랑스어이다. 최근 수십 년 동안은 많은 젊은 캄보디아인들과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사용활용범위가 넓은 영어를 더 선호한다. 주요 도시와 여행자 센터에서는 영어가 폭넓게 사용되며, 대부분의 학교에서 가르치는 과목이기도 하다. 시골로 내려가도 불교 사원의 승려 등을 포함하여 많은 젊은 사람들이 영어를 구사한다.
주요 종교로는 크메르 루주에 의해 박해를 받았던 소승 불교가 95%, 이슬람교 3%, 기독교가 2%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1993년 9월 23일 헌법 5조에 의하면 "공식어와 공식문자는 크메르어와 크메르 문자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영어는 프랑스어를 대체하고 이 나라의 제2 언어로 각광받고 있다. 소수 언어로는 중국어, 태국어 등이 있다.
캄보디아의 문화는 대표적으로 앙코르 시대(802년 ~ 1432년)에 만들어진 앙코르 와트 사원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화려했던 유물들은 관리가 소홀한 탓에 파괴와 식민 시대의 약탈 등에 시달려 많은 손상을 입었다.
종교는 95%가 소승 불교이다. 그외 이슬람교, 로마 가톨릭, 개신교, 힌두교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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