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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온(五蘊, 팔리어: pañca khandha, 산스크리트어: pañca-skandha)은 불교에서 생멸 · 변화하는 모든 것, 즉 모든 유위법(有爲法)을 구성하고 있다고 보는 색(色) · 수(受) · 상(想) · 행(行) · 식(識)의 다섯 요소를 말한다.[1][2] 이들을 각각 색온(色蘊: 육체, 물질) · 수온(受蘊: 지각, 느낌) · 상온(想蘊: 표상, 생각) · 행온(行蘊: 욕구, 의지) · 식온(識蘊: 마음, 의식)이라고도 부른다. 5온을 5음(五陰), 5중(五衆) 또는 5취(五聚)라고도 한다.[3]
5온설(五蘊說)은 원래는 인간 개인의 존재가 이들 5가지 유위법(有爲法) 요소의 집합으로 지탱되고 형성되고 있다는 견해로, 5온설을 사유 또는 명상하는 것은 개인 존재(나, 我)는 이 5가지 집합적 요소로 분해되고, "나[我]"라고 말할 때 그것은 결국 이들 5가지 집합적 요소들 중의 하나 혹은 다수를 가리켜 하는 말이며, 이들 5가지 집합적 요소들 밖에 나[我]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아(無我)의 이치를 깨우쳐 자아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4][5][6][7][주해 1]
5온은 유루와 무루에 모두 통하는데, 유루에 통한 5온을 5취온(五取蘊) 또는 5수음(五受陰) 또는 순대고취(純大苦聚: 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 순수하게 큰 괴로움의 무더기)라 한다. 무루에 통한 5온을 5무루온(五無漏蘊)이라고 한다.[8][9][10][11][12] 5무루온, 즉 무루에 통한 5온은 유위 무루이며 이것은 곧 4성제 중의 도제(道諦), 즉 '열반(깨달음)에 이르는 길'이다.[13][14] 《잡아함경》 제2권 제58경 〈음근경(陰根經)〉의 고타마 붓다의 가르침에 따르면, 5온으로 하여금 5취온이 되게 하는 근본 요인은 욕탐(欲貪)이다.[15][16][17][18][19] 고타마 붓다는 "5온에 욕탐(欲貪)이 있으면 5온이 곧 5취온이 된다[能於彼有欲貪者 是五受陰]"고 말하고 있다.[20][21][22][23]
부파불교와 상좌부불교 전통에서는 고(苦, 괴로움)는 마음(6식, 즉 심왕, 즉 심법)이 5온의 개별 또는 다수에 집착 또는 갈망하기 때문에, 달리 말하면, 5온의 개별 또는 다수를 나[我]라고 여기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본다. 그리고 5온에 대한 집착 또는 갈망을 끊음에 의해 고(苦, 괴로움)가 소멸된다고 말한다.[3] (참고: 4성제, 62견)
대승불교 전통에서도 부파불교나 상좌부불교 전통과 마찬가지로 개별 자아로서의 5온에 대한 집착 또는 갈망, 즉 마음(8식, 즉 심왕, 즉 심법)이 5온의 개별 또는 다수를 나[我]라고 여기는 것, 즉 제7 말나식이 제8 아뢰야식을 나[我]라고 여기는 것, 즉 아집(我執)이 고(苦, 괴로움)의 원인이라고 보며, 또한 아집(我執)을 끊음에 의해 고(苦, 괴로움)가 소멸된다고 본다. 그러나 아집(我執)을 끊는 것만으로는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할 수 없으며, 존재 전체로서의 5온에 대한 집착, 즉 마음(8식, 즉 심왕, 즉 심법) 밖에 외계(법, 5온)가 실재한다는 집착, 즉 법집(法執)을 끊음에 의해 궁극적 자유 즉 완전한 깨달음이 성취된다고 말한다. 달리 말하면, 반야바라밀다의 지혜로써 5온이 개인과 존재 전체의 양 측면에서 무아(無我)라는 것, 연기(緣起)하여 성립된 것이라는 것, 공(空)이라는 것을 '완전하게 아는 것[證悟]'에 의해 궁극적 자유 또는 영원한 자유가 성취된다고 말한다.[24][25][26][27] (참고: 2무아 또는 2공)
불교에서는 인간의 구체적인 현실존재를 해명하기 위하여 갖가지 법체계가 설명되었는데, 5온설(五蘊說)은 이러한 법체계들 중 대표적인 것이다.[4]
온(蘊, 산스크리트어: skandha, 팔리어: khandha, 영어: aggregates, mass, heap)은 유위법(有爲法)의 화합(和合)[28] · 적취(積聚)[28] · 무더기[29]라는 뜻으로, 즉 유위법의 집합을 의미하며, 집합으로서 다른 집합과 구별되는 요소라는 의미도 된다.[4]
따라서 5온설은 원래는 인간 개인의 존재가 다음의 5개의 유위법(有爲法) 요소의 집합으로 지탱되고 형성되고 있다는 견해이다. 개인 존재는 이 5온의 어느 것인가로 분해되며, 5온 밖에 "나[我]"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아(無我)의 교의를 불교는 주장한다.[4]
5온의 각 요소는 다음과 같다.[4][30][31][32]
수(受) 이하의 4종은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과 그 작용에 관한 것으로서 색(色)인 육체와 합쳐서 5온은 몸과 마음[주해 2], 즉 개인 존재를 가리키는 것이다.[4]
초기불교 이후의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에서는 5온을 개인 존재에서 확대 해석하여 일체법의 구성요소라고 보게 되었다. 이 관점에서는 대체적으로 크게 보아 색(色)이 물질계[色: 물질적 요소]를 의미하고 수(受) · 상(想) · 행(行) · 식(識)은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과 그 작용에 관한 것으로 정신계[名: 정신적 요소, 비물질계, 비물질적 요소]를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 (참고: 명색).[4] 여기서 주의할 점은, 물질계[色: 물질적 요소]가 곧 3계 가운데 욕계(물질 우주)와 일치하고 정신계[名: 정신적 요소, 비물질계, 비물질적 요소]가 색계 · 무색계와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색계 · 무색계의 각각에도 물질적 요소[色, 물질계]와 정신적 요소[名, 비물질계]가 있다. 즉, 5온이 있다. 따라서, 물질계[色: 물질적 요소] 즉 색온은 3계 각각의 물질적 측면의 구성요소인 모든 물질적 성질들을 통칭한다. 마찬가지로, 정신계[名: 정신적 요소, 비물질계, 비물질적 요소] 즉 수온 · 상온 · 행온 · 식온은 3계 각각의 정신적 측면의 구성요소인 모든 정신적 성질들을 통칭한다.
유위법의 무더기 즉 온(蘊)은 유루에도 통하고 무루에도 통한다. 온(蘊)이 무루에 통한 경우 무루온(無漏蘊)이라 부르고 유루에 통한 경우 취온(取蘊)이라 부른다.[8][9][10][11][12]
취온(取蘊)에서 취(取, upādāna)는 번뇌(煩惱)를 뜻한다. 유루에 통한 온(蘊)을 취온(取蘊: 번뇌 상태의 무더기)이라고 이름하게 된 것에는 다음의 3가지 이유가 있다.[9][10]
요약하자면, 유루에 통한 온은 취(取: 번뇌)로 생겨나고, 취(取: 번뇌)의 부림을 받으며, 취(取: 번뇌)를 낳는다는 의미에서 취온(取蘊)이라 부른다.
마찬가지로, 색온(色蘊: 몸·물질 무더기) · 수온(受: 지각 무더기) · 상온(想蘊: 표상 무더기) · 행온(行蘊: 욕구·의지 무더기) · 식온(識蘊: 마음·의식 무더기)의 5온(五蘊, 팔리어: pañca khandha, 산스크리트어: pañca-skandha)은 유루에도 통하고 무루에도 통하며, 무루에 통한 5온(五蘊)을 5무루온(五無漏蘊) 또는 5분법신(五分法身)이라 하고,[33] 유루에 통한 5온(五蘊)을 5취온(五取蘊)이라 한다. 5취온의 각각을 색취온(色取蘊: 몸·물질 번뇌 무더기) · 수취온(受取蘊: 지각 번뇌 무더기) · 상취온(想取蘊: 표상 번뇌 무더기) · 행취온(行取蘊: 욕구·의지 번뇌 무더기) · 식취온(識取蘊: 마음·의식 번뇌 무더기)이라 한다.
또한 취온을 수음(受陰)이라고도 하며, 따라서 5취온을 5수음(五受陰)이라고 한다. 여기서의 수(受)는 '받음' 또는 '감각 또는 지각'을 뜻하지 않으며, 번뇌의 다른 말인 취(取)를 뜻한다. 구역(舊譯)에서는 번뇌의 다른 말인 취(取)를 수(受)라고도 번역하였다.[34] 따라서, 5취온의 각각을 색수음(色受陰) · 수수음(受受陰) · 상수음(想受陰) · 행수음(行受陰) · 식수음(識受陰)이라고도 한다.[35]
초기불교의 《아함경》에서는 일체를 구성하는 요소로서의 5온에 대하여 설할 때, 5온의 각각이 무아(無我)이고 무상(無常)하며 고(苦)이고 공(空)이라고 설하고 있다. 그리고 5온설을 설할 때는 거의 언제나 무아(無我)를 빼놓지 않고 설명하고 있다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36]
예를 들어, 《잡아합경》 제3권, 제61경 〈분별경(分別經)〉에서 고타마 붓다는 다음과 같이 5온, 특히 5취온(5수음)에 대해 설명하면서, 5온의 각각이 무상(無常)과 고(苦) 그리고 공(空) 즉 변역(變易)이라고 설하고 있다. 또한 5온을 지혜(智慧, 慧: 여기서는 수다원과를 성취하기 전의 지혜를 말함; 즉 《성실론》에 따르면 3혜 또는 4혜의 유루혜, 또는 《구사론》에 따르면 유루혜와 수다원향에 진입하면서 성취한 무루혜)[37][38][39][40]로써 깊이 사유(思惟)하고 관찰(觀察)하고 분별(分別)하고 체득[忍]하는 것을 통해 유신견(有身見, 身見: 몸 또는 5온의 일부 또는 전체를 '나'라고 집착하는 견해) · 계금취견(戒禁取見, 戒取: 도가 아닌 것을 도라고 집착하는 견해) · 의(疑: 의심)의 3결(三結: 3가지 결박)을 극복하고 범부의 지위를 초월하여 4향4과 중 첫 번째의 과(果)인 수다원과(須陀洹果, 豫流果)를 성취하게 될 것이며, 계속하여 수행해 가면 나아가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5취온이 완전히 극복된 상태, 즉 5무루온의 상태가 곧 열반(涅槃), 즉 완전한 깨달음, 즉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상태라고 말하고 있다.
爾時。世尊告諸比丘。
有五受陰。何等為五。謂色受陰。受.想.行.識受陰。
云何色受陰。所有色。彼一切四大。及四大所造色。是名為色受陰。
復次。彼色是無常.苦.變易之法。若彼色受陰。永斷無餘。 究竟捨離.滅盡.離欲.寂沒。餘色受陰更不相續.不起.不出。 是名為妙。是名寂靜。是名捨離一切有餘愛盡.無欲.滅盡.涅槃。云何受受陰。謂六受身。何等為六。謂眼觸生受。耳.鼻.舌.身.意觸生受。是名受受陰。
復次。彼受受陰無常.苦.變易之法。乃至滅盡.涅槃。云何想受陰。謂六想身。何等為六。謂眼觸生想。乃至意觸生想。是名想受陰。
復次。彼想受陰無常.苦.變易之法。乃至滅盡.涅槃。云何行受陰。謂六思身。何等為六。謂眼觸生思。乃至意觸生思。是名行受陰。
復次。彼行受陰無常.苦.變易之法。乃至滅盡.涅槃。
云何識受陰。謂六識身。何等為六。謂眼識身。乃至意識身。是名識受陰。
復次。彼識受陰是無常.苦.變易之法。乃至滅盡.涅槃。比丘。若於此法以智慧思惟.觀察.分別.忍。是名隨信行。 超昇離生。越凡夫地。未得須陀洹果。中間不死。必得須陀洹果。
比丘。若於此法增上智慧思惟.觀察.忍。是名隨法行。 超昇離生。越凡夫地。未得須陀洹果。中間不死。必得須陀洹果。
比丘。於此法如實正慧等見。三結盡斷知。謂身見.戒取.疑。 比丘。是名須陀洹果。不墮惡道。必定正趣三菩提。七有天人往生。然後究竟苦邊。
比丘。若於此法如實正慧等見。不起心漏。名阿羅漢。 諸漏已盡。所作已作。捨離重擔。逮得己利。盡諸有結。正智心得解脫。
— 《잡아합경》 제3권, 제61경 〈분별경(分別經)〉. 한문본
"5수음이 있다. 5수음이란 무엇인가? 색수음 · 수수음 · 상수음 · 행수음 · 식수음을 말한다.
색수음(色受陰)이란 무엇인가? 존재하는 모든 색을 말한다. 일체의 색은 4대이거나 4대로 만들어진 색(色)이니, 이것을 색수음이라 한다. 또한 이 색수음[色]은 무상(無常)하고 괴로[苦]우며 변하고 바뀌는[變易, 空] 법이다. 만일 이 색수음을 영원히 끊어 남김이 없게 하고, 그 궁극까지 버리고 떠나고, [색수음을] 완전히 멸(滅)하고, [색수음에 대한] 탐욕[欲]을 떠나고, [색수음을] 고요히 사라지게 한다[寂沒]면, 다른 색수음이 다시는 상속(相續: 이어짐, 계속됨)하지 않고, 일어나[起]지도 않으며, 나오[出]지도 않을 것이다. 이것을 묘함[妙]이라 하고, 적정(寂靜: 고요함)이라 하고, 일체의 남은 애탐[愛]을 버리고 떠나 다 소멸시킨 것이라 하고, 무욕(無欲)이라 하고, 멸진(滅盡)이라 하고, 열반(涅槃)이라 한다.
수수음(受受陰)이란 무엇인가? 6수신(六受身)을 말한다. 6수신이란 무엇인가? 안촉생수(眼觸生受: 안촉으로 생기는 수) · 이촉생수(耳觸生受) · 비촉생수(鼻觸生受) · 설촉생수(舌觸生受) · 신촉생수(身觸生受) · 의촉생수(意觸生受: 의촉으로 생기는 수)를 말하며, 이것들을 수수음이라 한다. 또한 이 수수음은 무상(無常)하고 괴로[苦]우며 변하고 바뀌는[變易, 空] 법이다.……(내지)……멸진(滅盡)이라 하고, 열반(涅槃)이라 한다.
상수음(想受陰)이란 무엇인가? 6상신(六想身)을 말한다. 6상신은 무엇인가? 안촉생상(眼觸生想: 안촉으로 생기는 상) 내지 의촉생상(意觸生想: 의촉으로 생기는 상)을 말하며, 이것들을 상수음이라 한다. 또한 이 상수음은 무상(無常)하고 괴로[苦]우며 변하고 바뀌는[變易, 空] 법이다.……(내지)……멸진(滅盡)이라 하고, 열반(涅槃)이라 한다.
행수음(行受陰)이란 무엇인가? 6사신(六思身)을 말한다. 6사신은 무엇인가? 안촉생사(眼觸生思: 안촉으로 생기는 사) 내지 의촉생사(意觸生思: 의촉으로 생기는 사)를 말하며, 이것들을 행수음이라 한다. 또한 이 행수음은 무상(無常)하고 괴로[苦]우며 변하고 바뀌는[變易, 空] 법이다.……(내지)……멸진(滅盡)이라 하고, 열반(涅槃)이라 한다.
식수음(識受陰)이란 무엇인가? 6식신(六識身)을 말한다. 6식신은 무엇인가? 안식신(眼識身: 안식의 집합) 내지 의식신(意識身: 의식의 집합)을 말하며, 이것들을 식수음이라 한다. 또한 이 식수음은 무상(無常)하고 괴로[苦]우며 변하고 바뀌는[變易, 空] 법이다.……(내지)……멸진(滅盡)이라 하고, 열반(涅槃)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만일 이 법[5온]을 지혜(智慧: 3혜 또는 4혜의 유루혜, 또는 유루혜와 수다원향에 진입하면서 성취한 무루혜; 여기서는, 증상지혜와 대비되는 말로서, 비록 뛰어나지는 않으나, 깊은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유루혜, 또는 이러한 유루혜와 수다원향에 진입하면서 성취한 무루혜를 말함)로써 깊이 사유하고 관찰하고 분별하고 체득[忍]한다면 이러한 수행을 '수신행(隨信行: 믿음에 따른 수행, 믿음에 따라 사는 것)'이라 한다. [수신행을 통해] 그는 뛰어오를 것이며, 태어남을 벗어날 것이며, 범부의 지위를 넘어갈 것이며, 아직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얻지 못한 상태일지라도 [수다원과를 얻지 못한 상태에서] 중간에 죽거나 하지 않을 것이며 반드시 수다원과를 얻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만일 이 법[5온]을 증상지혜[增上智慧: 뛰어난 3혜 또는 4혜의 유루혜, 또는 유루혜와 수다원향에 진입하면서 성취한 무루혜]로써 깊이 사유하고 관찰하고 분별하여 체득[忍]한다면 이러한 수행을 '수법행(隨法行: 법에 따른 수행, 법에 따라 사는 것)'이라 한다. [수법행을 통해] 그는 뛰어오를 것이며, 태어남을 벗어날 것이며, 범부의 지위를 넘어갈 것이며, 아직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얻지 못한 상태일지라도 [수다원과를 얻지 못한 상태에서] 중간에 죽거나 하지 않을 것이며 반드시 수다원과를 얻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수신행 또는 수법행의 수행을 계속해 간다면, 그 어느 즈음에서] 이 법[5온]을 여실정혜[如實正慧: 참다운 바른 지혜, 즉 무루혜]로써 있는 그대로 보게 되고[等見: 즉, 일부의 번뇌 즉 3결에 대해 무루혜를 증득하게 되고], 3결(三結: 3가지 결박)이 완전히 끊어진 상태[에 도달했다]라는 것을 알게(경험하게, 증득하게) 될 것이다. 3결이란 신견(身見: 유신견, 몸을 나라고 보는 소견)과 계취(戒取: 계금취견, 도가 아닌 것을 도라고 보는 소견)와 의(疑: 의심)를 말한다. 비구들이여, [3결이 완전히 끊어진] 이러한 상태를 수다원과(須陀洹果)라 한다. [수다원과를 성취한 후에는 마음은 다시는] 악도(惡道)에 떨어지지 않고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三菩提, 완전한 깨달음, 등정각, 구경각]로 곧장 바르게 나아가 일곱 번 천상계와 인간계로 왕생[七有天人往生]한 후에 완전히 괴로움을 벗어날 것이다[究竟苦邊].
비구들이여, [수신행과 수법행 단계 너머의 수행을 계속해 간다면, 그 어느 즈음에서] 이 법[5온]을 [즉, 일체법을] 여실정혜[如實正慧: 참다운 바른 지혜, 즉 무루혜]로써 있는 그대로 보게 되고[等見: 즉, 모든 번뇌에 대해 무루혜를 증득하게 되고, 즉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게 되고], 마음에 [더 이상 아무런] 번뇌[漏]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에 도달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마음에 아무런 번뇌도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이러한 상태를 아라한(阿羅漢)이라 한다. [이 상태는] 모든 번뇌가 완전히 다한 상태이며, 할 일을 완전히 마친 상태이며, 무거운 짐을 벗은 상태이며, 자리[己利, 自利]를 완전히 성취한 상태이며, 모든 결박[結]을 끊은 상태이며, 바른 지혜[正智, 즉 등정각, 구경각, 완전한 깨달음]로써 마음이 해탈을 증득한 상태이다."
— 《잡아합경》 제3권, 제61경 〈분별경(分別經)〉. 한글본
대승불교에서도 5온은 색 · 수 · 상 · 행 · 식의 5가지의 요소의 집합을 뜻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5온을 설명하는 목적은 이러한 5가지 요소의 집합이 있고 이들 5가지 집합들과 이들의 온갖 작용이 있을 뿐 거기에 별도의 나[我, 實我]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것, 즉 무아(無我)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대승불교에서는 무아론이 점차 정리되면서 최종적으로 인무아(人無我, pudgala-nairātmya, 보특가라무아)와 법무아(法無我, dharma-nairātmya)의 이무아(二無我)의 사상으로 전개되고 있다.[41]
예를 들어, 유식유가행파의 소의 논서인 《유가사지론》 제53권과 제93권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復次蘊義云何。為顯何義建立諸蘊。
謂所有色若去來今乃至遠近。如色乃至識亦爾。如是總略攝一切蘊。積聚義是蘊義。
又由諸蘊唯有種種名性諸行。當知為顯無我性義建立諸蘊。
다시, 온(蘊)의 뜻은 무엇인가? 어떤 뜻을 드러내기 위하여 모든 온[諸蘊]을 건립한 것인가?말하자면, [색온이란] 과거 · 현재 · 미래 내지 원근(遠近: 멀고 가까움)의 존재하는 모든 색을 말하는데, 이러한 점은 수온 · 상온 · 행온 · 식온도 색온과 마찬가지이다. 이와 같이 [색 · 수 · 상 · 행 · 식의 각각의 온이란] 일체의 [해당되는] 온(蘊: 쌓인 것)을 포섭하여 총괄적으로 간단히 말한 것이다. [해당되는 요소들 모두의] 적취(積聚, 집합)의 뜻이 바로 온(蘊)의 뜻이다.
또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법)는] 온갖 온(蘊)[으로 이루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오직 갖가지 명성(名性: 이름과 성품, 명칭과 명칭이 가리키는 실제의 법, 즉 能詮과 所詮)과 [이들 명성의] 온갖 작용[諸行]이 있을 뿐이다.[주해 3] 그러므로 무아성(無我性: 제행, 즉 제법, 즉 일체의 유위법의 본질이 무아라는 것)의 뜻을 드러내기 위하여 모든 온[諸蘊]을 건립한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 《유가사지론》 제53권. 한문본
復次一切無我無有差別。總名為空。謂補
特伽羅無我。及法無我。
補特伽羅無我者。謂離一切緣生行。外別有實我不可得故。
法無我者。謂即一切緣生諸行性。非實我。是無常故。
如是二種。略攝為一。彼處說此名為大空。
다시, 모든 무아(無我)는 차별이 없으므로 모두 공(空)이라고 하는데, [굳이, 무아를 차별하여 말하자면] 보특가라무아(補特伽羅無我, 인무아)와 법무아(法無我)를 말한다.보특가라무아(補特伽羅無我, 인무아)란 온갖 인연에 의해 생겨나는 [각각의] 행(行: 유위법, 즉 개인 존재로서의 5온)을 떠나서 그것의 바깥에 따로이 존재하는 실아(實我, 나, 실제의 나)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법무아(法無我)란 온갖 인연에 의해 생겨나는 일체의 행[諸行: 모든 유위법, 즉, 무위법을 제외한 존재 전체로서의 5온]의 본질[性]이 불생불멸[實我, 실체, 영원한 것]이 아니고 무상(無常, 일시적인 것)이라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2가지 무아를 하나로 포섭하여 그곳에서 이것을 대공(大空)이라고 이름한다.
— 《유가사지론》 제93권. 한문본
5온은 초기불교 때부터 널리 사용되어온 일체법의 분류체계 또는 분석방식인 5온(五蘊) · 12처(十二處) · 18계(十八界)의 3과(三科)의 하나이다.[30][42] 즉, 고타마 붓다는 가르침을 펼치는 중에 존재 전체를 한편으로는 5온을 통해 설명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12처를 통해 설명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18계를 통해 설명하기도 하였다고 전하는데, 이 3가지는 초기불교 이래 불교 전반에서 널리 사용되는 기본적인 존재 분류체계 또는 분석방식, 즉 기본적인 법체계가 되었다. 그리고 초기불교의 이 3가지 법체계들은 고타마 붓다가 반열반에 든 후의 후대에서 더욱 심화 · 발전되어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의 5위 75법의 법체계와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의 5위 100법의 법체계 등으로 나타났다.[43]
《구사론》 등의 아비달마 논서들에 따르면, 고타마 붓다가 5온(五蘊) · 12처(十二處) · 18계(十八界)의 3가지 법체계, 즉 3과(三科)의 분석방식으로 가르침을 편 것은 다음의 3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44]
첫 번째의 수행자의 어리석음의 3가지 유형과 해당 유형의 수행자들에 대해 고타마 붓다가 가르친 법체계는 다음과 같다고 한다.[45]
두 번째의 수행자의 근기(根機: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의 3가지 유형과 해당 유형의 수행자들에 대해 고타마 붓다가 가르친 법체계는 다음과 같다고 한다.[45]
세 번째의 수행자가 좋아하는 것의 3가지 유형과 해당 유형의 수행자들에 대해 고타마 붓다가 가르친 법체계는 다음과 같다고 한다.[46]
색온(色蘊, 산스크리트어: rūpa-skandha, 팔리어: rūpa-khandha, 영어: aggregates of form, aggregates of matter)은 물질(物質, 색)의 적집, 집합 또는 무더기라는 뜻으로, 육체 또는 물질 일반으로서의 색(色)을 말하는데, 《아함경》 등의 초기불교 경전과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와 대승불교의 유가유식행파와 법상종 등에서는 육체 또는 물질 일반으로서의 색온 또는 색(色)을 다음과 같이 3~4가지 방식으로 정의하고 있다.
《아함경》 등의 초기불교 경전과 부파불교와 대승불교 모두에서, 변괴(變壞, rūpyate)하기 때문에 색(色, rūpa)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47][48] 《구사론》에 따르면, 이와 관련하여 고타마 붓다는 다음과 같은 언급을 하였다고 한다.
苾芻當知。由變壞故名色取蘊。誰能變壞。謂手觸故即便變壞。
필추(苾芻: 비구)들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니, 변괴(變壞)하기 때문에 색취온(色取蘊)이라 이름한다. 무엇이 능히 변괴시키는가? 예를 들어, 손과 같은 것이 닿으면 바로 변괴한다.
그런데, 변괴(變壞)는 '변이하고 파괴된다'는 뜻인데, 이러한 성질은 색(色, 육체와 물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며 모든 유위법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성질이다.[49] 따라서, 변괴성으로 색(色)을 정의하는 경우 색(色)의 특징을 명확히 드러내지 못하며, 또한 이 정의는 색(色)의 특징들에 속하는 연장 · 장애 · 형상 등을 설명하지도 못한다.[49]
하지만, 이 정의는 변괴 · 연장 · 장애 · 형상 등의 색(色, 물질)의 본질적 속성들을 설명하기 위해서 언급되는 진술이 아니다.[49] 이 정의는 고정된 형상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색(色, 물질과 육체)이 유위법에 속한다는 것을 명확히 함으로써 색(色, 육체와 물질)은 무상(無常)한 것이며, 무상(無常)한 것이기 때문에 고(苦)이며, 따라서 집착하거나 의지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하는 실천적인 면에서 의미가 있으며, 또한 이러한 점이 이 정의의 목적이기도 하다.
즉, 변괴는 결국 뇌괴[惱壞] 즉 '허물어짐에 괴로워하게 되는 것[惱壞]'을 뜻하는데, 말하자면 색(色, 육체와 물질)을 추구하는 욕망을 가진 사람이 그 욕망을 끊지 않고 해당 색(色, 육체와 물질)을 계속 추구할 때 결국 그 욕망에 의해 시달리고 괴롭혀지게 되는 것은 색(色, 육체와 물질)이 변이하고 파괴되는 것[變壞], 즉 변하여 무너져 내리는 것[變壞]을 본질적 성질로 하기 때문이다.[50]
이러한 측면에서, 고타마 붓다는 《잡아합경》 제38권 제1079경 〈유경(喩經)〉에서 육체, 즉 색온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佛告比丘。丘塚者。謂眾生身。
麤四大色父母遺體。摶食.衣服.覆蓋.澡浴.摩飾.長養。 皆是變壞磨滅之法。
고타마 붓다는 그 비구에게 말하였다. [이 비유에서] 무덤이란 중생들의 육체[身]를 가리키는 말로서 곧 거친[麤] 4대종[四大]으로 이루어진 이 몸은 부모가 남겨주신 몸이니, 음식을 먹고 옷을 입고 목욕시키고 어루만지며 또 가꾸어 기르지만, 그것은 다 변괴(變壞: 변이하고 파괴됨, 변하여 무너져 내림)하고 마멸(磨滅: 닳아 없어짐)되는 법(法, 구체적 존재)이다.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에서는 변애성(變礙性)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색(色)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의 교학을 집대성한 《구사론》과 대승불교의 대표적 경전들인 《대반야바라밀다경》과 《유가사지론》 등에서는 다음과 말하고 있다.
變礙故名為色。
– 《아비달마구사론》, 제1권. 한문본 & 한글본[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謂變礙是色相。
변애(變礙)하는 것을 색(色)의 본질적 속성[相]이라고 한다.– 《대반야바라밀다경》, 제443권. 한문본
謂變礙故名色。
변애(變礙)하기 때문에 색(色)이라고 이름한다.變礙是色自相。
변애(變礙)는 색(色)의 본질적 속성[自相]이다.– 《해심밀경소》, 제81권. 한문본 (p0334a05)
변애성(變礙性)은 변화하는 성질을 뜻하는 변성(變性)과 공간적 점유성을 뜻하는 애성(礙性)이 합쳐진 말이다. 이것은 색(色, 물질)은 유위법으로서 변화할 뿐만 아니라 일정한 넓이를 갖고 공간을 점유하고 있어서 다른 색(色, 물질)이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을 공유할 수 없도록 장애하는 성질을 가진다는 것을 뜻한다.[49][50][51] 이와 같이 서로 저촉하고 물리치는 성질을 유대(有對)라고도 한다.[52] 색(色, 물질)의 애성(礙性)을 질량을 가지고 있으면서 다른 물질을 장애한다는 뜻에서 질애(質礙)라고도 한다.[53]
변괴성(變壞性, rūpyate)은 모든 유위법이 다함께 가지는 특성이기 때문에 설일체유부와 유식유가행파 등의 논서에서는 변애성(變礙性)이 색(色, 물질)의 본질적 속성으로 통상적으로 논의되고 있다.[47] 설일체유부의 교학에서 색(色, 물질)의 변애성(變礙性)은 곧 극미설(極微說)에 해당한다.[54]
초기불교 경전인 《아함경》 등과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의 경전 및 논서들에서는 색(色, 물질)을 지(地) · 수(水) · 화(火) · 풍(風)의 4대종(四大種, 산스크리트어: catvāri mahā-bhūtāni, 팔리어: cattāri mahā-bhūtāni, 영어: Four primary elements)과 4대종으로 만들어진 물질인 4대 소조색(四大所造色)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근원 물질인 4대종의 결합에 의해 만들어진 이차적인 물질을 4대 소조색(四大所造色) 또는 간단히 소조색(所造色)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증일아함경》에서는 색(色, 물질)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彼云何名為色耶。四大及四大所造色。是謂名為色。
그 어떤 것을 색(色)이라 하는가? 4대종[四大]과 4대 소조색(四大所造色: 4대종으로 만들어진 색)이니, 이것을 색(色)이라 한다.
색(色, 물질)을 4대종과 4대 소조색으로 정의하는 것은 근원 물질로서의 4대종을 부각시키는 정의로, 인간의 육체를 포함한 모든 색(色, 물질)이 4대종에 의해 만들어진 것임을 말한다.[55]
《아함경》 에서는 위의 인용문에서처럼 색(色, 물질)은 4대종과 4대 소조색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간단한 진술만이 있고 이 진술을 바탕으로 다른 실천적인 주제들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즉, 4대종과 4대 소조색 자체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는 것은 드문데, 1~2세기경의 설일체유부의 논사였던 세우(世友, Vasumitra)는 《아비달마품류족록》에서 색(色, 물질)이 4대종과 4대 소조색으로 구성된다고 정의하면서 또한 4대종과 4대 소조색에 대해 보다 더 자세하게 말하고 있다.
色云何。謂諸所有色。一切四大種。及四大種所造色。四大種者。謂地界水界火界風界。所造色者。謂眼根耳根鼻根舌根身根色聲香味。所觸一分。及無表色。
색이란 무엇인가? 존재하는 모든 색이란 4대종과 4대종에 의해 만들어진 소조색 모두를 통틀어 말한다. 4대종은 지계 · 수계 · 화계 · 풍계를 말하며, 소조색은 안근 · 이근 · 비근 · 설근 · 신근 · 색경 · 성경 · 향경 · 미경과 촉경의 일부와 무표색을 말한다.
위의 정의에서 세우가 "촉경의 일부[所觸一分]"라고 말한 것은 촉경(觸境)이 4대종과 4대종에 의해 만들어진 특정한 소조색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56][57] 즉, 세우는 4대종이 모든 물질을 만드는 근원 물질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 앞에서 이미 언급했으므로 다시 중복하지 않기 위해 "촉경의 일부"라고 말한 것이다. 따라서, 색(色, 물질)은 4대종과 4대 소조색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정의는 색(色, 물질)은 안근 · 이근 · 비근 · 설근 · 신근의 5근(五根)과 색경 · 성경 · 향경 · 미경 · 촉경의 5경(五境)과 무표색(無表色)의 11종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세친의 《구사론》 등에서 언급되는 정의로서, 색(色, 물질)에 포함되는 구체적인 물질적 종류 또는 범주를 모두 나열함으로써 색(色, 물질)을 정의하는 경우와 같은 말이다.[58]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와 대승불교의 유가유식행파와 법상종 등에서는 색(色, 물질)에 포함되는 구체적인 물질적 종류 또는 범주들을 모두 나열함으로써 색(色, 물질)을 정의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이 정의는 객관적 사물(5경)과 주관적 사물(5근, 감각 기관)을 합한 후, 다시 이들에 포함되지 않는 특수한 물질 1종을 합하여 물질이라고 정의한 것이다. 그리고 이 정의는 객관적 사물(5경)의 물질과 주관적 사물(5근, 감각 기관)의 물질이 서로 다른 물질이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설일체유부와 유가유식행파는 모두, 주관적 사물인 5근을 이루는 물질은, 광명이 차단됨이 없는 맑고 투명한 색인 정색(淨色, rūpa prasāda)이며 정색은 객관적 사물인 5경을 이루는 물질과는 다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60][56]
위 정의에 나타난 5근(五根)과 5경(五境)과 무표색(無表色)과 법처소섭색(法處所攝色) 중, 먼저 5근(五根)은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육체가 가진 5가지 감각 기관을 말한다. 즉, 눈·귀·코·혀·몸을 말한다. 불교 용어로는 이들을 각각 안근(眼根)·이근(耳根)·비근(鼻根)·설근(舌根)·신근(身根)이라고 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5근(五根)은 육안에 보이는 거친 살덩어리가 아니라 정색이라는 물질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육체의 눈·귀·코·혀·몸 보다 더 뛰어난 성질의 감각 기관들이다.[56]
5경(五境)은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이 5근을 통해 지각하는 5가지 외부 대상으로, 안근(눈)의 지각대상인 색깔과 형태, 이근(귀)의 지각대상인 소리, 비근(코)의 지각대상인 냄새, 설근(혀)의 지각대상인 맛, 신근(몸)의 지각대상인 감촉을 말한다. 불교 용어로는 이들을 각각 색경(色境)·성경(聲境)·향경(香境)·미경(味境)·촉경(觸境)이라고 하며, 간단히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이라고도 한다.[56][61]
무표색은 설일체유부에서 주장한 특수한 물질이다. 설일체유부의 이론에 따르면, 마음(6식, 즉 심왕, 즉 심법)이 외부로 표출된 신체적인 행위나 언어적인 행위(즉, 말소리)를 하거나 선정(禪定)에 들거나 하면 그 행위와 동시에 그 행위의 선(善)·불선(不善)에 따라 선 또는 불선의 성질을 띠는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의 특수한 물질적 실체가 생겨난다고 한다. 그리고 이 특수한 물질적 실체는 그것이 띠고 있는 선 또는 불선의 성질에 따라 항상 마음(6식, 즉 심왕, 즉 심법)에 선 또는 불선의 영향을 미치고, 다시 마음(6식, 즉 심왕, 즉 심법)이 외부로 표출된 신체적인 행위나 언어적인 행위(즉, 말소리)를 하거나 선정(禪定)에 들거나 하면 그 행위의 선·불선에 따라 이 특수한 물질적 실체의 선 또는 불선의 성질이 변화한다고 한다. 설일체유부에서는 이러한 물질적 실체를 무표색(無表色) 또는 무표업(無表業)이라고 하였다.[56][62] 이러한 이유로, 무표색은 설일체유부의 업설(業說)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56]
법처소섭색(法處所攝色)은 유가유식행파와 법상종에서 주장하는 물질로, 마음(8식, 즉 심왕, 즉 심법) 중 제6식인 의식(意識)의 경계(境界: 세력 범위이자 작용 대상)인 법처(法處), 즉 법경(法境)에 속하는 물질이다. 유가유식행파와 법상종에 따르면 법처소섭색은 5근과 5경을 제외한 다른 모든 물질을 모두 통칭한다.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에 따르면, 이에 속하는 물질로는 극략색(極略色) · 극형색(極逈色) · 수소인색(受所引色) · 변계소기색(遍計所起色) · 자재소생색(自在所生色)의 5종이 있다.[63]
예를 들어, 이들 중 극략색(極略色)은 5근과 5경의 물질을 계속 나누어 가서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극한에 이르렀을 때의 물질인 극미(極微, paramānu)를 말하는데, 설일체유부에서도 물질을 계속 나누어 가서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극한에 이르렀을 때의 물질을 극미라고 정의한다.[64][65] 이와 같이 유식유가행파와 설일체유부 모두 동일한 방식으로 극미를 정의하기는 하지만, 설일체유부에서는 극미를 물질적 실체로 보아서 안근(眼根)을 통해 지각되는 외부 대상인 색경(色境)에 소속시킨다. 반면 유식유가행파에서는 극미, 즉 극략색(極略色)을 물질적 실체가 아닌 가상(假想)의 것, 즉, (비존재물이 아니라 비물질적 영역에 존재하는) 비물질적 존재 또는 비물질적 사물이라고 보아서 제6식인 의식(意識)의 경계(境界: 세력 범위이자 작용 대상)인 법처(法處), 즉 법경(法境)에 소속시킨다.[66] 달리 말해, 유식유가행파에서 물질의 궁극을 극략색이라고 한 것은 마음이 결집을 일으켜 물질을 생겨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함의한다. 극략색은 법처소섭색의 일부인 자재소생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수온(受蘊, 산스크리트어: vedanā-skandhāh, 팔리어: vedanā-khandha, 영어: aggregates of sensation, aggregates of feeling)은 지각(知覺)의 적집, 집합 또는 무더기라는 뜻으로,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의 여러 작용 중 감수작용(感受作用)과 그 세력을 뜻한다. 지각(知覺)의 대상이라는 면에서 볼 때, 수온은 전5식을 통해 육체적 · 물질적 대상을 지각(知覺, 즉 受, 즉 느낌)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제6식(부파불교의 경우) 또는 후3식(대승불교의 경우)을 통해 정신적 대상을 지각(知覺, 즉 受, 즉 느낌)하는 것도 함께 의미한다.[30][67][68]
또한 이것은, 불교에 따르면, 수온 즉 느낌 또는 지각(知覺)은 육체(색)의 여러 작용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의 여러 작용들, 즉 마음작용(심소법) 중의 하나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합당하게,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와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은 자신들의 법체계에서 수온(受蘊) 즉 수(受)를 색법이 아닌 심소법(마음작용)에 소속시키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는 마음(즉 심왕, 즉 심법)이 6식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는데 자신의 5위 75법의 법체계에서 수온을 6식의 여러 마음작용(심소법) 가운데 대지법(大地法: 10가지)에 속한 것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리고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에서는 마음(즉 심왕, 즉 심법)이 8식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는데 자신들의 5위 100법의 법체계에서 수온을 8식의 여러 마음작용(심소법) 가운데 변행심소(遍行心所: 5가지)에 속한 것으로 분류하고 있다.[69][67][70][71][72]
대지법과 변행심소는 모두 공통적으로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이 일어날 때면 언제나 함께 일어나는 마음작용(심소법)들을 통칭한다.[70][72] 이것은, 달리 말하면, 부파불교의 대다수 부파와 대승불교는 모두 수(受), 즉 지각작용(知覺作用) 또는 감수작용(感受作用)을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으로부터 떼려야 뗄 수 없는 마음의 기본적이며 생래적인 작용들 중의 하나인 것으로 본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의 이러한 견해는, 《아함경》 등의 불교 경전에 따르면, 고타마 붓다의 가르침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수(受)의 마음작용, 즉 지각작용(知覺作用)이 어떻게 일어나는 것인지에 대해 《잡아함경》 제13권에 수록된 제306경 〈인경(人經)〉에서 고타마 붓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眼、色緣生眼識, 三事和合觸,觸俱生受、想、思,此四無色陰、眼、色, 此等法名為人,於斯等法作人想、眾生、那羅、 摩㝹闍、摩那婆、士夫、福伽羅、耆婆、禪頭。
안근[眼]과 색경[色]을 연(緣)하여 안식(眼識)이 생긴다. 이 3가지의 화합이 촉(觸)이다. 촉(觸)과 함께 수(受, 지각)와 상(想, 표상, 개념, 생각)과 사(思, 욕구, 의지, 즉 행)가 동시에 일어난다[주해 4]. [수 · 상 · 사 · 식의] 이 4가지 무색음(無色陰, 즉 무색온, 즉 색(물질)의 영역이 아닌 마음의 영역에 속하는 온)과 안근[眼]과 색경[色][으로 이루어진 색온]과 같은, 이같은 [즉 5온의, 즉 6근과 6경과 6식의] 법을 [총칭하여] 사람[人]이라고 명명하며[주해 5], 이러한 법에 대해 사람이라는 상(想, 표상, 개념, 생각)을 지어 중생(衆生) · 나라(那羅) · 마누사(摩㝹闍) · 마나바(摩那婆) · 사부(士夫) · 복가라(福伽羅) · 기바(耆婆) · 선두(禪頭)라고 부른다.
위의 내용을 인식[識, 앎]의 발생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말하면, 6근(根) 중 최소한 어느 하나와 6경(境) 중 최소한 어느 하나와 6식(識, 마음) 또는 8식(識, 마음) 중 최소한 어느 하나가 화합[觸]할 때 비로소 인식[識, 앎]이 발생하는 데, 그 순간에 지각[受]과 표상[想]과 의지(욕구)[思, 行]가 동시에 함께 발생한다는 것이다. 즉, 어떤 대상에 대한 인식[識, 앎, 지식]이 있다는 것은 반드시 대상[境]이 있고 대상을 비추는 인식기관[根]이 있고 마음[識, 즉 6식 또는 8식, 심왕, 심법]이 있고 이들 3가지의 화합[觸]이 있고 그 대상에 대한 지각[受]과 표상[想]과 의지작용(욕구작용)[思, 行]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 5온설에 따른 불교의 인식론, 즉 지식론이다. 그리고, 5온은 유루에도 통하고 무루에도 통한다고 말하는데, 따라서 이들 대상[경]과 인식기관[근]과 마음[식]과 화합작용[촉]과 지각작용[수]과 표상작용[상]과 의지작용(욕구)[행]은 그 자체로는 선(善)도 불선(不善)도 아닌 무기(無記)의 성질을 가진다는 것이다.[9][11] 그리고 불교에서는 행위 외에 별도로 행위자를 세우지 않기에, 인식(앎, 지식)외에 별도의 인식자로서의 마음(식, 6식 또는 8식)을 세우지 않는다. 즉, "인식(앎, 지식) = 마음(식, 6식 또는 8식)"이라고 본다.[77][78][79]
수온(受蘊) 또는 수(受)를 지각작용(知覺作用) 또는 감수작용(感受作用)이라고 할 때의 지각(知覺) 또는 감수(感受)는 불교에서는 단순히 육체적 또는 정신적 대상을 "느끼는 것[感覺, feeling]"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수온(受蘊) 또는 수(受)는 육체적 또는 정신적 대상을 단순히 느끼는 것뿐만 아니라 그 대상에 대해 고(苦: 괴로움) · 낙(樂: 즐거움) · 불고불락(不苦不樂: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 捨라고도 한다)을 판별하는 것도 의미한다.[80][81] 달리 말하면, 전5식의 작용대상인 육체적 · 물질적 대상이건 또는 제6식 또는 후3식의 작용대상인 정신적 대상이건,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은 그 대상을 느낄 때 단순히 느낌만으로 그치지 않으며 반드시 그 대상에 대해 그것이 괴로운 것인지, 즐거운 것인지,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것인지의 3가지 부류 중 하나로 판별하는 일을 한다. 또한 수(受)는 모두 대지법 또는 변행심소에 속한 것이므로,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이 일어날 때면 언제나 대상에 대해 고(苦: 괴로움) · 낙(樂: 즐거움) · 불고불락(不苦不樂: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을 느끼는 작용 즉 지각하는 작용이 반드시 함께 동반되어 일어난다는 것이 불교의 지각(느낌)에 대한 관점이다.
세친은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에서 고(苦) · 낙(樂) · 불고불락(不苦不樂)의 3수(三受)를 대지법 또는 변행심소에 속한 다른 마음작용인 촉(觸: 근·경·식의 3사의 화합)과 욕(欲: 욕구 또는 욕망)과의 상관관계하에서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樂謂滅時有和合欲。
苦謂生時有乖離欲。
不苦不樂謂無二欲。
즐겁다는 느낌[樂受]이란 [그 지각대상이] 사라질 때 [그것과] 다시 만나고 싶어하는 욕구[和合欲]가 있는 것을 말한다.
괴롭다는 느낌[苦受]이란 [그 지각대상이] 생겨날 때 [그것과] 떨어지고 싶어하는 욕구[乖離欲]가 있는 것을 말한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不苦不樂受]이란 이들 2가지 욕구[欲]가 없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대상에 대해 고(苦: 괴로움) · 낙(樂: 즐거움) · 불고불락(不苦不樂: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을 판별하는 수(受)의 마음작용은 십이연기(十二緣起)의 한 지분(支分)을 이룬다. 즉, 유전연기(流轉緣起)의 면에서는 수(受)의 마음작용은, 수행(도제, 즉 8정도, 37도품, 6바라밀 등)으로 단련되지 못한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의 경우, 마음으로 하여금 지각대상이 주는 낙(樂: 즐거움, 특히 전도된 즐거움)에 [생래적으로] 집착하게 함으로써 마음을 윤회의 사슬에 속박시키는 역할을 하는 주요 요인들 중 하나가 된다. 반대로, 환멸연기(還滅緣起)의 면에서는 수(受)의 마음작용은, 수행(도제, 즉 8정도, 37도품, 6바라밀 등)으로 단련된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의 경우, 마음으로 하여금 지각대상이 고(苦: 괴로움, 고제)인 것을 [생래적으로] 알게 함으로써 마음이 윤회의 사슬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역할을 하는 주요 도구들 중 하나가 된다.[82][83]
수(受)는 세분하면 다음의 6수신(六受身), 즉 6수(六受)가 있다.[80]
云何六受身?謂眼觸生受、耳觸生受、鼻觸生受、舌觸生受、身觸生受、意觸生受。
무엇을 6수신(六受身)이라고 하는가? 안촉생수(眼觸生受) · 이촉생수(耳觸生受) · 비촉생수(鼻觸生受) · 설촉생수(舌觸生受) · 신촉생수(身觸生受) · 의촉생수(意觸生受)를 말한다.
《구사론》에서 세친은 이상에서 서술된 바를 아래 인용문과 같이 잘 요약하고 있는데, 그는 수온(受蘊) 또는 수(受)를 대상을 받아들여 고(苦: 괴로움) · 낙(樂: 즐거움) · 불고불락(不苦不樂: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으로 판별하는 감수작용(感受作用) 또는 지각작용(知覺作用)으로 정의하고 있으며,[67] 수(受)는 세부적으로 6수신(六受身), 즉 6수(六受)으로 나뉜다고 말하고 있다.
論曰。受蘊謂三。領納隨觸。即樂及苦不苦不樂。此復分別成六受身。謂眼觸所生受乃至意觸所生受。
논하여 말하겠다. 수온(受蘊)은 말하자면 세 가지로서, 촉(觸)에 따라 영납(領納: 알아차리고 받아들임)하는 것이니, 고(苦) · 낙(樂) · 불고불락(不苦不樂)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이를 다시 분별하면 6수신(六受身)을 성취하게 되니, 말하자면 안촉(眼觸)에 의해 생겨난 '수(受)' 내지는 의촉(意觸)에 의해 생겨난 '수(受)'가 그것이다.
유루(有漏) 즉 번뇌에 통한 수온(受蘊)을 특히 수취온(受取蘊)이라 하며, 불교에서는 수취온을 윤회의 가장 큰 원인들 중의 하나로 꼽는다. 수취온은 고(苦: 괴로움, 고제)인 것을 고가 아니라 낙이나 불고불락이라 느끼고, 낙(樂: 즐거움)인 것을 낙이 아니라 고나 불고불락이라 느끼고, 불고불락(不苦不樂: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인 것을 불고불락이 아니라 고나 낙이라 느끼는 전도(顚倒)된 지각작용(느낌), 즉 무명(無明)에 의해 흐려진 지각작용(느낌)이다. 그리고, 부파불교의 전승에 따르면, 수취온은 윤회의 가장 큰 요인들 중의 하나가 되기 때문에 고타마 붓다는 여러 마음작용들 중 수(受)를 5온 중의 하나로 포함시켜 특히 부각시킨 것이라고 한다.[46]
상온(想蘊, 산스크리트어: saṃjñā-skandhāh, 팔리어: saññā-khandha, 영어: aggregates of conception, aggregates of discrimination, aggregates of apperception, aggregates of perception, aggregates of cognition)은 표상(表象)의 적집, 집합 또는 무더기라는 뜻으로,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의 여러 작용 중 표상작용(表象作用)과 그 세력을 뜻한다. 표상(表象)의 대상이라는 면에서 볼 때, 상온은 전5식을 통해 육체적 · 물질적 대상을 표상(表象, 즉 想, 즉 개념화)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제6식(부파불교의 경우) 또는 후3식(대승불교의 경우)을 통해 정신적 대상을 표상(表象, 즉 想, 즉 개념화)하는 것도 함께 의미한다.[30][67][84]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의 교학을 비판적으로 집대성한 《구사론》에서 세친은 상온(想蘊)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는데, 상온(想蘊) 또는 상(想)을 사물의 형상이나 상태 또는 정신적(언어적) 개념의 차별상을 수동적으로 파악하기도 하고 능동적으로 짓기도 하는 표상작용(表象作用)으로 정의하고 있다.[67]
想蘊謂能取像為體。即能執取青黃長短男女怨親苦樂等相。此復分別成六想身。應如受說。
상온(想蘊)이란 말하자면 능히 취상(取像: 상을 취함)을 본질로 하는 것으로, 능히 청(青) · 황(黃) · 장(長) · 단(短) · 남(男) · 여(女) · 원(怨) · 친(親) · 고(苦) · 락(樂) 등의 모양을 집취(執取: 잡아서 취함)한다. 이것도 다시 분별하면 6상신(六想身)을 성취하게 되니, 앞의 수온(受蘊)에서 논설한 바와 같다.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와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에서는, 수온(受蘊)과 마찬가지로, 상온(想蘊) 즉 상(想)도 여러 마음작용(심소법) 가운데 대지법(大地法: 10가지) 또는 변행심소(遍行心所: 5가지)에 속한 것으로 분류하고 있다.[67][69][70][71][72] 즉, 부파불교와 대승불교는 모두 상(想), 즉 표상작용(表象作用)을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으로부터 떼려야 뗄 수 없는 마음의 기본적이며 생래적인 작용들 중의 하나인 것으로 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견해는, 수온(受蘊) 즉 수(受)와 마찬가지로, 고타마 붓다의 가르침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다.[85][86]
수온(受蘊)과 마찬가지로, 상온(想蘊) 즉 표상작용(表象作用)도 그 자체로는 선(善)도 불선(不善)도 아닌 무기성(無記性)이다.[11][87] 하지만 상온(想蘊)이 유루에 통하였느냐 또는 무루에 통하였느냐는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므로, 불교에서는 상온(想蘊)을 수온(受蘊)과 더불어 번뇌와 윤회의 가장 큰 2가지 요인으로 꼽는다.[46]
상(想)은 세분하면 다음의 6상신(六想身), 즉 6상(六想)이 있다.[80]
有六想身。云何為六?謂眼觸生想,耳、鼻、舌、身、意觸生想,是名六想身。
6상신(六想身)이 있다. 이 6가지는 무엇인가? 안촉생상(眼觸生想) · 이촉생상(耳觸生想) · 비촉생상(鼻觸生想) · 설촉생상(舌觸生想) · 신촉생상(身觸生想) · 의촉생상(意觸生想)을 6상신이라 한다.
유루(有漏) 즉 번뇌에 통한 상온(想蘊)을 특히 상취온(想取蘊)이라 하며, 상취온은 사물의 상(相, laksana: 모양, 형상, 상태, 성격, 성질, 본질, 식별[88], mark, token, sign, characteristic, attribute[89])을 실제와는 틀리게 파악하는 전도(顚倒)된 표상작용(식별), 즉 무명(無明)에 의해 흐려진 표상작용(식별)이다. 그리고, 부파불교의 전승에 따르면, 상취온은 수취온과 더불어 번뇌와 윤회의 가장 큰 2가지 요인이 되기 때문에 고타마 붓다는 여러 마음작용들 중 상(想)을 5온 중의 하나로 포함시켜 특히 부각시킨 것이라고 한다.[46]
전도(顚倒)된 표상작용(식별), 즉 뒤집어진 표상작용(식별)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열반이 있으며 열반을 향해 나아간다는 불교의 근본입장에서 보면 다음의 것들이 가장 근본적인 것들이다.
행온(行蘊, 산스크리트어: samskāra-skandhāh, 팔리어: saṅkhāra-khandha, 영어: aggregates of volition, aggregates of volitional formations, aggregates of volitional activities, aggregates of formations, aggregates of mental formations, aggregates of impulses, aggregates of compositional factors)은 조작(造作: 만들다)하는 힘의 적집, 집합 또는 무더기라는 뜻으로,[90] 5온 중 색온(色蘊, 물질, 육체) · 수온(受蘊, 지각) · 상온(想蘊, 표상) · 식온(識蘊, 마음)을 제외한 모든 것을 통칭한다. 5온은 일체의 유위법을 말하는 것이므로, 곧 행온은 이들 4가지를 제외한 다른 모든 유위법을 뜻한다.[90][91]
여기서의 "다른 모든 유위법"이라는 표현은 막연하지만, 다음과 같이 설일체유부의 5위 75법의 법체계와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의 5위 100법의 법체계를 통해 살펴보면 행온의 범위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마음작용(심소법)이라는 면에서 보면, 행온은 설일체유부의 5위 75법의 법체계에 따르면 수(受)와 상(想)을 제외한 44가지의 마음작용들의 적집, 집합 또는 무더기를 말하고,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의 5위 100법의 법체계에 따르면 수(受)와 상(想)을 제외한 49가지의 마음작용들의 적집, 집합 또는 무더기를 말한다.
불교에서는 흔히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의 이러한 나머지 여러 마음작용 중 특히 사(思)를 가리켜 행온(行蘊) 또는 행(行)이라고도 한다. 사(思)는 욕구작용(欲求作用) · 의사작용(意思作用) · 의지작용(意志作用)과 그 세력을 말한다.[30][67][92]
한편, 욕구(欲求)와 의지(意志)의 대상이라는 면에서 볼 때, 행온은 전5식을 통해 육체적 · 물질적 대상을 욕구하고 의지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제6식(부파불교의 경우) 또는 후3식(대승불교의 경우)을 통해 정신적 대상을 욕구하고 의지하는 것도 함께 의미한다.[30][67][93]
사(思)는 세분하면 다음의 6사신(六思身), 즉 6사(六思)가 있다.[80]
有六思身。云何為六。謂眼觸生思。耳.鼻.舌.身.意觸生思。是名六思身。
6사신(六思身)이 있다. 이 6가지는 무엇인가? 안촉생사(眼觸生思) · 이촉생사(耳觸生思) · 비촉생사(鼻觸生思) · 설촉생사(舌觸生思) · 신촉생사(身觸生思) · 의촉생사(意觸生思)를 6사신이라 한다.
수(受)와 상(想)을 제외하고도 44가지 또는 49가지의 여러 마음작용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온(行蘊) 즉 행(行)을 사(思)라고도 부르는 이유는 이들 44가지 또는 49가지의 마음작용들 가운데 사(思)의 마음작용이 행(行, samskāra)의 원래 의미인 '만든다[造作]라는 성격'을 가장 강하게 띠기 때문이다.[90] 다시 말하면, 사(思)의 마음작용은 업(業, 즉 意業)을 짓는 것을 그 본질로 하는데, 이러한 본질적인 작용은 '조작(造作: 만들다)하는 힘의 적집, 집합 또는 무더기'라는 행온의 정의에 가장 잘 부합하기 때문이다.[90]
고타마 붓다는 《잡아함경》 제3권 제61경 〈분별경(分別經)〉에서 "무엇이 행수음(行受陰)인가? 6사신(六思身)을 말한다(云何行受陰 謂六思身)"라고 말하고 있다.[94][95] 유루(有漏) 즉 번뇌에 통한 행온(想蘊)을 특히 행취온(行取蘊) 또는 행수음(行受陰)이라 하는데,[96][97] 《구사론》에 따르면, 고타마 붓다의 이 진술은 무명(無明)에 의해 흐려진 사(思)의 마음작용은 능히 유루(有漏)에 통한 유위(有爲)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그것을 행취온(行取蘊)이라 부를 수 있다는 뜻이며, 마찬가지로 사(思: 의지, 의사)의 마음작용은 능히 무루(無漏)에 통한 유위(有爲)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즉 몸(즉, 5근)과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으로 하여금 도제(道諦)를 능히 실천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90] 불교 경전과 논서 등에서, 행(行)이 곧 사(思)라거나 사(思)가 곧 행(行)이라고 할 때는 이런 의미에서 하는 말이다.
云何行受陰?謂六思身。
何等為六?謂眼觸生思,乃至意觸生思,是名行受陰。
復次,彼行受陰無常、苦、變易之法,乃至滅盡、涅槃。
무엇이 행수음(行受陰)인가? [유루에 통한] 6사신(六思身)을 말한다.
이 6가지는 무엇인가? 안촉생사(眼觸生思) 내지 의촉생사(意觸生思)를 말하며, 이들을 행수음이라 이름한다.
다시, 이 행수음은 무상한 법이며, 괴로운 법이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다. [행수음을 남김없이 영원히 끊은 것을, 즉 유루에 통한 의지를 남김없이 영원히 끊은 것을]……(내지) …… [번뇌의] 완전한 소멸이라고 하며 열반이라고 한다.
5온의 체계에서 수온과 상온이 행온과는 별도로 설정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수온과 상온은 행온에 포함되는 것이며, 다만 수온과 상온의 역할이 심대하므로 고타마 붓다가 이 2가지를 별도로 설정한 것일 뿐이다.[98] 이런 의미에서는 색온은 육체와 물질을 가리키며, 식온은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을 가리키며, 행온은 불상응행법(또는 심불상응행법)과 심소법을 포괄한 더 넓은 범위의 마음작용 전체를 가리킨다.[91]
또한, 행온은 유루뿐 아니라 무루의 일체의 유위법을 만들어내고 천류(遷流)하게 한다는 뜻에 입각하여, 행온에는 수온과 상온뿐만 아니라 다른 2가지 온인 색온과 식온도 모두 행온에 포함시킬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이것은 행온을 제행무상(諸行無常, 산스크리트어: anityāh sarva-samskāra)의 경우처럼 일체의 유위법으로서의 제행(諸行)으로 보는 관점이다. 이 관점에 대해, 중국불교의 구사종에서는 색 · 수 · 상 · 식의 4온이 만들어내고 천류하게 하는 면을 지니고 있지만 행온에 비교할 때 그 작용력 즉 만들어내고 천류하게 하는 힘은 적고 각각 순서대로 질애(색) · 지각(수) · 표상(상) · 인식(식)의 성질이 뚜렷이 강하기 때문에 5온의 각각을 개별로 세워 구분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았다.[91]
요약하자면, 행온에 대해서는 다음의 3가지 관점 또는 견해가 있다.
한편, 십이연기의 2번째 지분인 행(行, 산스크리트어: 영어: samskāra, 팔리어: 영어: saṅkhāra)도 행온의 '행'과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가 동일하다.[99] 행온을 어떻게 해석하는가는 이 2번째 지분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와 깊은 관련이 있다.
식온(識蘊, 산스크리트어: vijñāna-skandhāh, 팔리어: viññāṇa-khandha, 영어: aggregates of consciousness, aggregates of discernment, aggregates of cognizance, aggregates of intelligence, aggregates of knowledge, aggregates of mind, aggregates of life force)은 요별(了別: 알다)하는 힘과 그 결과물로서의 요별(了別: 앎, 지식)의 적집, 집합 또는 무더기라는 뜻으로,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을 가리킨다.[100]
《구사론》과 《잡아함경》에서는 식온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으며 그리고 세분하고 있다.
各各了別彼彼境界。總取境相故名識蘊。此復差別有六識身。謂眼識身至意識身。
각기 그들의 경계(境界)를 요별(了別)하는 것으로서 경계(境界)의 상(相)을 전체적으로 취[總取]하기 때문에 식온(識蘊)이라 이름한다. 이것도 다시 차별하면 여기에는 6식신(六識身)이 있으니, 이를테면 안식신(眼識身) 내지 의식신(意識身)이 바로 그것이다.
有六識身。云何為六。謂眼識身.耳識身.鼻識身.舌識身.身識身.意識身。是名六識身。
6식신(六識身)이 있다. 이 6가지는 무엇인가? 안식신(眼識身) · 이식신(耳識身) · 비식신(鼻識身) · 설식신(舌識身) · 신식신(身識身) · 의식신(意識身)을 6식신이라 한다.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에서는 모두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을 한편으로는 심의식(心意識)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것은 부파불교와 대승불교는 모두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이 심(心: 집기) · 의(意: 사량) · 식(識: 요별)의 세 측면 또는 상태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는 것을 뜻한다.[101][102][103][104][105]
예를 들어, "야! 이 OST 정말 아름다운데! 어떤 가수가 불렀을까? 음원을 어디에서 구할 수 있을까?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찾아보고 음원구입처에서 다운로드를 받아야겠다"라고 할 때, 그 OST가 아름답다고 아는 것은 요별(了別), 즉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의 요별작용 또는 요별능력이고, 가수가 누군지 그리고 음원을 어디서 구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은 사량(思量), 즉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의 사량작용 또는 사량능력이고, 검색과 다운로드를 해야겠다고 마음먹는 것(즉, 의지를 가지는 것)과 실제로 몸과 마음을 움직여 인터넷 검색을 행하고 음원을 다운로드 받는 것은 집기(集起), 즉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의 집기작용 또는 집기능력이다.[106]
《구사론》에 나타난 세친의 위의 정의는 식온이라는 이름은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의 이들 세 측면 중 특히 식(識: 요별, 앎, 지식)의 측면을 들어서 이름이 지어진 것임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구사론》을 포함한 부파불교의 교학에서는, 본래 1가지인 단일한 마음(즉 심왕, 즉 심법)을 이들 세 측면 중 식(識: 요별, 앎, 지식)의 측면의 발동근거에 따라 편의상 안식 · 이식 · 비식 · 설식 · 신식 · 의식의 6식(六識)으로 나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107][108] 반면,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 등에 따르면 이러한 6식에 제7식의 말나식과 제8식의 아뢰야식을 더한 8식(八識)을 마음(즉 심왕, 즉 심법) 또는 식온이라고 본다.[100][109] 즉, 대승불교에서는 마음(즉 심왕, 즉 심법)을 8가지 또는 8측면으로 나누고 있는 데,[105][110] 8식의 체(體)가 하나인가 아니면 8식의 각각이 별도의 체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학파별로 의견이 다르다. 전자의 견해를 식체일설(識體一說) 또는 심체일설(心體一說)이라 하는데 안혜 등의 무상유식파(無相唯識派)의 견해이고, 후자의 견해를 식체별설(識體別說) 또는 심체별설(心體別說)이라 하는데 호법 등의 유상유식파(有相唯識派)와 중국 불교의 법상종의 견해이다.[111][112]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에서는 모두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이 심(心: 집기) · 의(意: 사량) · 식(識: 요별)의 세 측면 또는 상태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105][113]
그러나 부파불교에서는 이들 세 측면이 모두 마음(즉 심왕, 즉 심법)의 단순히 다른 측면 또는 상태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마음은 안식 · 이식 · 비식 · 설식 · 신식 · 의식의 6식으로 나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107][108][105][113]
반면, 대승불교에서는 이들 세 측면은 단순히 다른 측면 또는 상태가 아니라 따로 명칭을 붙일 수 있을 만큼 그 성질과 작용이 서로 뚜렷이 구별된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심(心: 집기)을 제8식인 아뢰야식이라 하고 의(意: 사량)를 제7식인 말나식이라 하고 식(識: 요별)를 제6식인 의식이라 하여 별도로 설정하고 별도의 명칭을 부여하고 있으며, 마음(즉 심왕, 즉 심법)은 안식 · 이식 · 비식 · 설식 · 신식 · 의식 · 말나식 · 아뢰야식의 8식으로 나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이, 심의식 사상에서의 견해 차이는 부파불교와 대승불교를 구분짓는 주요한 사상적 차이점들 중의 하나이다.[105][113]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에 대한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의 견해는 뚜렷이 차이가 난다. 대승불교에서는 마음(8식, 즉 심왕, 즉 심법)을 유식유가행파의 경우처럼 유위의 세계를 성립시키는 근원적 · 본질적 존재로 이해하거나 혹은 《대승기신론》에서처럼 진여심이나 일심과 같은 유위와 무위의 일체(一切)의 세계를 가능하게 하는 근원적 · 본질적 존재로 이해한다. 하지만, 부파불교에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마음(6식, 즉 심왕, 즉 심법)을 이러한 근원적 · 본질적 존재로 이해하지 않는다.[106]
예를 들어, "오늘 날씨가 좋다. 이 좋은 날 무엇을 하면 좋을까? 소풍을 가야겠다"라고 할 때, 오늘 날씨가 좋다고 아는 것은 요별(了別) 작용이고, 좋은 날씨에 무엇을 하면 좋을지 생각하는 것은 사량(思量) 작용이고, 소풍을 가야겠다고 마음먹는 것(즉, 의지를 가지는 것)과 실제로 몸과 마음을 움직여 소풍을 떠나는 것은 집기(集起) 작용이다.[106]
이와 같은 심(心: 집기) · 의(意: 사량) · 식(識: 요별)의 세 측면을 해석함에 있어서, 부파불교는 이 세 측면이 동일한 마음(6식, 즉 심왕, 즉 심법)의 다른 측면 또는 기능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예를 들어, 식(識: 요별, 지식)의 측면에서 안식(眼識) 내지 의식(意識)의 6식은 법(法), 즉 존재를 요별(了別)하는 것으로서, 어떤 한 대상[境界]의 상(相)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인식으로, 다시 말해 '식(識)'은 대상[境界]에 따라 그것과 유사하게 생겨난 앎, 인식 또는 지식일 뿐인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물질은 마음(6식, 즉 심왕, 즉 심법)과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즉 마음(6식, 즉 심왕, 즉 심법) 없이도 존재하는 것으로 본다. 그리고 대상[境界]의 형상을 영납(領納) · 취상(取像) · 판단(判斷) · 확인(確認)하는 등의 개별적인 작용은 모두 마음작용, 즉 심소(心所)의 역할인 것으로 본다.[106]
반면, 대승불교에서는 아뢰야식에 해당하는 심(心: 집기, 즉, 종자를 집합하여 일으킴, 즉, 일체종자식)을 근거로 하여 말나식에 해당하는 의(意: 사량)가 전개되고 다시 의(意: 사량)를 근거로 하여 제6식인 의식에 해당하는 식(識: 요별)이 성립된다고 본다. 그리고 물질 또한 아뢰야식의 전변에 의해 성립되는 것으로 본다. 또한 대상[境界]의 형상을 영납(領納) · 취상(取像) · 판단(判斷) · 확인(確認)하는 등의 개별적인 작용도 모두 마음(8식, 즉 심왕, 즉 심법)의 작용에 지나지 않지만, 편의상 마음작용, 즉 심소(心所)라고 하여 별도로 가설(假設: 임시로 설치함)할 수 있다는 견해를 가진다.[105][114]
법계(法界)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지만, 18계(十八界)의 법체계 중 하나의 계를 법계라고도 한다. 이러한 뜻의 법계는 6경(六境) 중 법경(法境)에 해당하며, 12처(十二處)의 법체계에서 법처(法處)에 해당한다.[115][116][117]
이러한 뜻의 법계는 마음(즉 심왕, 즉 심법), 즉 6식 또는 8식 중 전5식의 대상은 되지 못하고 오로지 제6 의식(6식을 마음이라고 보는 부파불교의 경우) 또는 후3식(8식을 마음이라고 보는 대승불교의 경우)의 대상만 될 수 있는 그러한 존재(법)들 전체를 말한다.[118][117]
5온의 경우 수온(受蘊) · 상온(想蘊) · 행온(行蘊)과 색온(色蘊)의 일부인 무표색(無表色) 또는 법처소섭색(法處所攝色)이 법계에 속한다. 이들과 5온에 속하지 않는 무위법을 합하면 (5온은 모두 유위법이다) 18계의 법계, 즉 법경 또는 법처가 된다.[90][118] 무위법에는 열반이 포함된다.[119][120]
5온은 모두 유위법(有爲法: 생멸 · 변화하는 것[1], 조작(造作)된 것[13])에 속하며, 무루법(無漏法)과 유루법(有漏法)에 모두 통한다.[121] 무위법(無爲法: 생멸 · 변화하는 것이 아닌 것, 조작(造作)된 것이 아닌 것)은 5온에 속하지 않는다.[12]
5온이 무루법에 통한 경우가 4성제(四聖諦) 중의 도제(道諦)로, 도제, 즉 8정도(八正道)는 유위(有爲)이면서 무루(無漏)이다. 5온이 유루법에 통한 경우 5온은 번뇌(煩惱)를 낳는데, 이러한 상태의 5온을 특히 5취온(五取蘊)이라 한다. 이 때의 취(取)는 번뇌의 다른 이름이다. 5취온은 유위(有爲)이면서 유루(有漏)로, 사성제의 고제(苦諦)와 집제(集諦)에 해당한다.[13][121] 5취온의 상태, 즉 5온이 유루법에 통한 상태에서는 12연기(유전연기)에 따른 생사윤회의 생멸 · 변화가 계속된다.
4성제의 멸제(滅諦), 즉 열반(涅槃)은 무위법(無爲法)이자 무루법(無漏法)으로, 유위 무루법인 도제, 즉 무루에 통한 5온에 의해 증득되는 과(果: 열매)이다. (생성되는 과보(果報) 또는 업보(業報)가 아니라 증득되는 과(果)이다.)[122]
행온(行蘊)은 실제로는 식온(識蘊)의 모든 작용, 즉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의 모든 작용인 심소법(心所法, 마음작용)을 뜻하며, 따라서 지각작용(知覺作用)인 수온(受蘊)과 표상작용(表象作用)인 상온(想蘊)은 실제로는 행온의 일부이다. 그러나, 고타마 붓다는 수온과 상온을 행온과는 별도로 설정하였는데, 《구사론》에 따르면 다음의 3가지 이유 때문이다.[46]
번뇌는 크게 온갖 유루의 욕망[欲]에 탐착하는 것과 온갖 유루의 견해[見]에 탐착하는 것의 두 가지로 나뉘는데, 유루에 통한 수온(受蘊: 지각작용), 즉 수취온(受取蘊)은 전자의 가장 큰 원인이 되며, 유루에 통한 상온(想蘊: 표상작용), 즉 상취온(想取蘊)은 후자의 가장 큰 원인이 된다.[46]
즉, 수취온(受取蘊: 유루에 통한 지각작용)은 바깥 경계의 대상을 느끼는 힘에 의해 점차 분별없이 즐거운 느낌[樂受]의 것만을 추구하게 되고 이것이 심화되면 온갖 유루의 욕망 또는 전도된 욕망에 탐착하게 되고, 상취온(想取蘊: 유루에 통한 표상작용)은 전도된 생각, 개념 또는 관념의 힘에 따라 온갖 유루의 견해에 탐착하게 된다. 이와 같이 유루에 통한 수온(受蘊: 지각 작용)과 상온(想蘊: 표상작용)은 번뇌의 가장 큰 두 가지 원인이 되기 때문에, 수온과 상온은 행온과는 별도의 두 요소[支分]로 설정되어 있다.[46]
유전연기와 환멸연기의 관련하에서 말하자면, 유전연기는 마치 강물을 따라 아래로 흘러 내려가는 것과 같고 환멸연기는 강물을 거슬러 힘을 내어 위로 올라가는 것과 같다. 3계 중 아직 욕계에 묶여 있는 삶이란 그 자체로는 유전연기의 힘이 작용하는 상태로, 무공용 즉 불환과 즉 제8지의 경지에 도달하지 않은 한 자연 상태로 내버려두면 수온은 더욱더 분별없이 즐거운 느낌[樂受]의 것만을 추구하게 되고 상온은 더욱더 온갖 유루의 견해에 탐착하게 된다. 달리 말해, 출세간을 향한 노력 즉 수행이 없으면 수온과 상온은 번뇌와 더욱더 상응하고, 혹(惑) · 업(業) · 고(苦)의 3도가 심화된다.
12연기설에 따르면 생사윤회의 출발점은 무명(無明: 인과의 도리에 미혹하는 것, 즉, 사성제를 자각적으로 실천적으로 알지 못하는 것)인데, 무명을 일으켜 생사를 윤회하게 하는 실제적인 가장 큰 두 가지 원인은 유루에 통한 수온(受蘊: 지각 작용), 즉 수취온(受取蘊)과 유루에 통한 상온(想蘊: 표상 작용), 즉 상취온(想取蘊)이다.[46]
즉, 수취온(受取蘊: 유루에 통한 지각 작용)에 의해 온갖 유루의 욕망에 탐착하고 상취온(想取蘊: 유루에 통한 표상작용)에 의해 온갖 전도된 생각, 개념 또는 관념을 일으켜 그것에 탐착하게 되면, 사성제를 망각하게 되고 생사윤회가 끝나는 지점인 무위 무루법의 열반에 이르는 길인 유위 무루법의 도제(팔정도)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이와 같이 유루에 통한 수온(受蘊: 지각 작용)과 상온(想蘊: 표상 작용)은 생사윤회의 가장 큰 두 가지 원인이 되기 때문에, 수온과 상온은 행온과는 별도의 두 요소[支分]로 설정되어 있다.[46]
5온을 색(色) · 수(受) · 상(想) · 행(行) · 식(識)의 순서로 나열하는 것에는 다음의 4가지 이유가 있다.[123]
5온은 수추차제(隨麁次第), 즉 거친 것[麁]에서 미세한 것[細]의 순서로 나열되어 있는데, 각각의 온의 거친 정도와 미세한 정도의 차별은 다음과 같다.[124]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이 A와 B 중에서 A를 더 쉽게 요별(了別) 또는 분별(分別)할 수 있는 경우, 즉 더 알기 쉬운 경우 A는 B보다 더 거친 것이다.
5온은 수염차제(隨染次第), 즉 오염(汚染)의 결과와 원인의 순서로 나열되어 있다. 5온간의 인과관계는 다음과 같다.[124]
식취온은 번뇌와 상응하고 있는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으로, 오염된 마음, 불선(不善)의 마음 또는 악(惡)한 마음이라고도 불리는데, 불교에서 선악, 즉 선과 불선은 현재와 미래에 좋은 과보를 낳을 수 있는 것인가 아닌가를 말한다.[125][126] 즉 오염된 마음, 불선의 마음 또는 악한 마음이란 현재와 미래에 좋은 과보를 낳지 못하는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 즉 열반(깨달음)으로부터 더 멀어진 상태의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을 말한다.
5온은 수기차제(隨器次第), 즉 요리의 5가지 요소인 그릇[器], 음식(飲食), 조미료[助味], 요리사[厨人], 먹는 자[食者]에 비유되어, 이 순서로 나열되어 있다.[124]
5온은 수계별차제(隨界別次第), 즉 욕계 · 색계 · 무색계의 3계가 나열되는 순서에 따라 나열되어 있다. 즉, 기세간(우주)이 나열된 순서에 따라 나열되어 있다.[127]
온(蘊)에 5가지의 종류, 즉 색온 · 수온 · 상온 · 행온 · 식온만이 있는 이유에 대해, 《대승아비달마집론》과 《잡집론》에서는 신구아사(身具我事) · 수용아사(受用我事) · 언설아사(言說我事) · 조작일체법비법아사(造作一切法非法我事) · 피소의지아자체사(彼所依止我自體事)의 5가지의 아사[五種我事]를 나타내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다.[130][131][13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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