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문화방송이 야심차게 기획한 본 드라마는, 1989년 10월부터 창사 30주년 기념 특집극으로 기획에 들어가 그 다음해인 1990년5월 3일부터 MBC 정동 스튜디오에서 실내 촬영을 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총 10권 분량의 소설가 김성종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극화한 드라마로 기획한 것이다.
1990년 6월부터 해외 촬영을 시작하여 필리핀에서 최대치가 소속된 일본군 제15사단의 부르마(버마) 행군 장면과, 하림이 근무하는 군 야전 병원의 모습을 찍기 위해 사이판의 모습 등을 촬영하였으나 현지 여건상 일본인과 비슷한 사람들을 구하기 쉽지 않아 현지 필리핀 원주민을 엑스트라로 대거 동원하여 극의 여러 장면들을 촬영한 후 성우들의 후시녹음으로 장면을 완성하였다.[2]
방송 시작 전까지 1년 5개월의 긴 사전 제작 기간을 가졌으나 정작 방송 시작 후에도 촬영을 완전히 끝맺지 못하고 마지막 회인 제36부 방송일인 1992년2월 6일 하루 전날인 2월 5일에서야 마지막 장면인 최대치와 윤여옥의 최후 장면을 촬영하고 방송 시작 10분 전에서야 편집 작업이 마무리되어 제작·촬영의 2년 4개월 간의 일정을 끝맺었다.[3]
극중 최대치가 뱀을 뜯어먹는 장면은 실제로 배우 최재성이 살아있는 뱀을 뜯는 법을 배워서 직접 껍질을 벗기면서 먹는 장면을 촬영하였으며, 그 후 뱀의 비린내로 고생하였다 한다.
최대치와 윤여옥이 난징에서 헤어지기 전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나눈 키스신, 소위 '철조망 키스신'은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로부터 명장면으로 꼽힌다.[10][11]
1992년 2월 25일 채시라는 모교 동국대학교 졸업식에서 '여옥 역을 맡아 학교의 명예를 드높인 점'을 인정받아 민병천 당시 동국대 총장으로부터 공로상을 받았다.[12]
한 고등학교에서는 시청을 권장하는 내용의 훈화가 있었으며, 일부 학교에서는 역사교육 자료의 일환으로 녹화테이프 제공 요청이 있었다.[13]
4·3항쟁을 다룬 내용이 방영된 뒤 문화방송에 제주도민들로부터 “이 사건을 TV에서 다루어준 것만으로도 감사한다”라는 격려의 전화가 쇄도하였다.[14]
극 중 일본어, 중국어, 영어가 나올 때 자막처리를 함으로써 ‘국제적 수준의 드라마로구나’라는 쾌감을 느끼게 했다는 평가도 있다.[14] 당시 《여명의 눈동자》 스페셜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인터뷰를 한 중앙대학교 영화학과 김정옥 교수는 시간에 쫓기지 않고 미리 3분의 2 이상의 분량을 만들어서 완벽성을 추구하려 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었다고 말했다.
구성에 있어서는 몇 가지 상투적 기법이 사용되었고, 또한 위안부의 모습을 너무 감상적으로 그렸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또한 당시 흔하지 않았던 드라마 속의 키스신, 731부대의 잔인한 생체실험 장면이나, 뱀을 산 채로 뜯어먹는 등의 자극적이고 참혹한 장면이 과연 안방드라마로 적합한가에 대한 논란이 있었으며 방송위원회가 각종 제재조치를 가하기도 했다.[14]
소설가김성종의 《여명의 눈동자》를 원작으로 제작되었다. 총 36부작으로 회당 50분 내외로 방영되었지만 중국과 필리핀 등에서 현지 로케이션으로 총 제작비 72억 원, 회당 제작비 2억 원이 들었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