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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신수근(愼守勤, 1450년 ~ 1506년)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외척이다. 신승선과 중모현주의 아들로, 세종대왕 이도의 4남인 임영대군 이구의 외손이자 연산군의 처남이며, 중종의 장인이다. 따라서 왕실과는 이중 인척관계를 형성하였으며, 그 외에도 그의 부인은 권남의 여섯째 딸로 남이의 처제가 된다. 또한 두번째 부인은 인수대비의 친정 사촌 형제였던 한충인의 딸이다. 1506년 중종반정 직전 반정 참여를 권유받았으나, 도의상 반정에 참여하기를 거절했다가 살해되었다. 본관은 거창(居昌), 자는 근중(勤仲) 또는 경지(敬之), 호는 소한당(所閒堂)이며, 시호는 신도(信度)이다.
신승선의 아들로 어머니 중모현주는 임영대군의 딸이자 조선 세종대왕의 손녀딸이었다. 성종 때 음서를 통해 장령이 되어 조정에 입문하였고, 누이동생이 연산군의 비가 된 뒤로 우승지, 도승지, 이조 판서, 우찬성, 우의정, 좌의정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또한 진성대군(중종)이 그의 사위가 되었다.
최종 관직은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우의정 겸 영경연 춘추관 관상감사이고, 익창군(益昌君)에 봉해졌다. 1506년 가을 박원종, 성희안 등은 그에게 꾸준히 사람을 보내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진성대군을 추대할 것을 권고했으나 신수근은 자신의 사위를 위해 누이를 배신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1506년 음력 9월 2일 성희안, 박원종 등이 일으킨 중종반정 때 박원종 일파가 보낸 이심, 신윤무 등에게 수각교에서 격살(擊殺)되었다.
1739년(영조 15년) 음력 3월 28일에야 김태남 등의 건의로 익창부원군으로 추증되었다.[1] 영의정으로 추증되었다.
《중종실록》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영조실록>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와 그의 동생은 처형되었지만 아들 신홍조와 손자 신사헌은 연좌되지 않고 관직에 나갈수 있었다.
중종의 장인이며, 연산군의 처남이다. 또 세종대왕의 외증손자로, 사돈인 성종은 그의 외재종형이 된다. 성종은 두 아들들을 신수근의 누이와 딸에게 각각 장가들게 해 이중으로 사돈 관계를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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