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모현주(中牟縣主, 1435년 ~ ?)는 조선 전기의 왕족으로 세종의 넷째 아들인 임영대군의 딸이다. 연산군의 왕비인 폐비 신씨의 어머니이며, 중종의 첫번째 왕비인 단경왕후의 할머니이다.
간략 정보 중모현주中牟縣主, 출생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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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족 |
신상정보 |
출생일 |
1435년 |
사망일 |
미상 |
부친 |
임영대군 |
모친 |
제안부부인 최씨 |
배우자 |
거창부원군 신승선 |
자녀 |
3남 4녀
신수근 · 신수겸 · 신수영 이형의 처 · 남경의 처 · 안환의 처 · 폐비 신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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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과 가계
1435년(세종 17년), 세종과 소헌왕후의 넷째 아들인 임영대군 이구의 장녀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최승녕의 딸인 제안부부인 전주 최씨이다. 외조부인 최승녕의 누이들은 각각 태종의 서자인 함녕군과, 세종의 여섯째 아들이자 중모현주에게는 숙부가 되는 금성대군과 혼인하였다. 외숙부인 최도일의 딸 최씨는 예종의 후궁인 공빈 최씨이다.
대군(大君)의 딸에게 주어지는 '현주(縣主)'의 작호를 받아 중모현주(中牟縣主)에 봉해졌다. 조선 초기에는 대군의 적녀에게도 현주의 작호를 주었으나, 《경국대전》 반포 이후 왕세자의 서녀에게만 부여하였다.
혼인 이후
신승선과 혼인하여 3남 4녀를 낳았으며, 이 중 막내딸이 연산군의 왕비인 폐비 신씨이다. 왕비의 어머니이므로 부부인에 봉작되었을 것이나 이와 관련한 기록은 없고, 일부에서는 흥안부부인(興安府夫人)에 봉작되었다고는 하는데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알 수 없다.
왕족으로 태어나 그 자녀들 또한 왕실과 중첩된 혼인을 맺었다.
언제 사망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중종반정이 일어나면서 막내딸 신씨는 폐위되었으며, 아들인 신수근과 신수겸, 신수영은 모두 살해되었다.[1] 신수근의 둘째 딸이자 중모현주의 손녀가 되는 신씨는 성종의 아들 진성대군(중종)과 혼인하였는데, 중종반정 이후 박원종 등이 중종을 핍박하여 내쫓을 것을 청하였다. 중종은 이를 거절했으나 반정 공신들의 압력에 못이겨 신씨를 내쫓았다.[2] 신씨는 폐위된지 230여년 후인 1739년(영조 15년), 영조에 의해 단경왕후(端敬王后)로 추증되었다.[3]
- 조부 : 세종(世宗, 1397~1450)
- 조모 : 소헌왕후 심씨(昭憲王后 沈氏, 1395~1446)
- 아버지 : 임영대군(臨瀛大君, 1420~1469)
- 외조부 : 최승녕(崔承寧) - 예종의 후궁 공빈 최씨의 조부
- 외조모 : 평산 신씨(平山 申氏)
- 어머니 : 제안부부인(齊安府夫人) 전주 최씨(全州 崔氏)
- 남동생 : 오산군 주(烏山君 澍, 1437~1490)
- 남동생 : 귀성군 준(龜城君 浚, 1441~1479)
- 남동생 : 정양군 순(定陽君 淳, 1442~1492)
- 남동생 : 팔계군 정(八溪君 淨, 1445 ~1521)
- 여동생 : 청하현주(淸河縣主, 1447년 ~ ?)
- 남동생 : 환성군 징(懽城君 澄, 1450년 ~ ?)
배우자와 자녀
- 남편 : 거창부원군(居昌府院君) 신승선(愼承善, 1436~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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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녀 : 신씨(愼氏, 1466년) - 승평부정(昇平副正) 이형(李泂, 1479년)[5]의 처
- 차녀 : 신씨(愼氏, 1467년) - 남경(南憬, 1467년)의 처
- 삼녀 : 신씨(愼氏, 1469년) - 안환(安煥, 1469년)[6]의 처
- 사녀 : 폐비 신씨(廢妃 愼氏, 1476~1537) - 연산군(燕山君)의 왕비
- 외손녀 : 휘신공주(徽愼公主, 1491~ ?) - 길안현주의 아들 구문경과 혼인
- 외손자 : 폐세자 황(廢世子 𩔇, 1497~1506)
- 외손자 : 창녕대군(昌寧大君, 1500~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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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일기》 63권, 연산 12년(1506년 명 정덕(正德) 1년) 9월 2일 (기묘)
중종이 경복궁에서 즉위하고 연산군을 폐하여 교동현에 옮기다
금상(今上, 중종)이 경복궁에서 즉위하고 왕(연산군)을 폐(廢)하여 교동현(喬桐縣)으로 옮겼다.
(중략)
용사들을 임사홍과 신수근과 신수영의 집에 보내어 퇴살(椎殺)하고, 또 사람을 보내어 신수겸을 개성부에서 베니,
이를 들은 도중(都中)의 대소인들이 기약도 없이 모여 들어 잠깐 동안에 운집하자 즉시 모든 장수들을 편성하고 용구마(龍廐馬)를 내어 주어 각기 군사를 거느리고 궁성을 에워싸고 지키게 하였으며,
또 모든 옥에 있는 죄수들을 놓아 종군하게 하니, 밤이 벌써 3경이었다.
《중종실록》 1권, 중종 1년(1506년 명 정덕(正德) 1년) 9월 9일 (을유)
신수근의 딸을 궁밖으로 내치다
유순, 김수동, 유자광, 박원종, 유순정, 성희안, 김감, 이손, 권균, 한사문, 송일, 박건, 신준, 정미수 및 육조 참판 등이 같은 말로 아뢰기를,
"거사할 때 먼저 신수근을 제거한 것은 큰 일을 성취하고자 해서였습니다. 지금 수근의 친딸이 궁궐 안에 있습니다.
만약 궁곤(宮壼, 중전)으로 삼는다면 인심이 불안해지고 인심이 불안해지면 종사에 관계됨이 있으니, 은정(恩情)을 끊어 밖으로 내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아뢰는 바가 심히 마땅하지만, 그러나 조강지처인데 어찌하랴?" 하였다.
모두 아뢰기를,
"신 등도 이미 요량하였지만, 종사의 대계(大計)로 볼 때 어쩌겠습니까? 머뭇거리지 마시고 쾌히 결단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종사가 지극히 중하니 어찌 사사로운 정을 생각하겠는가. 마땅히 여러 사람 의논을 좇아 밖으로 내치겠다." 하였다.
얼마 뒤에 전교하기를,
"속히 하성위(河城尉) 정현조(鄭顯祖)의 집을 수리하고 소제하라. 오늘 저녁에 옮겨 나가게 하리라."
하였다.
《영조실록》 49권, 영조 15년(1739년 청 건륭(乾隆) 4년) 3월 28일 (갑술)
신비(愼妃)를 단경왕후로 추숭하다
중모현주의 여동생인 청하현주와 안우건 부부의 양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