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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법지인(苦法智忍, 산스크리트어: duḥkha-dharma-jñāna-kṣānti, duhkhe dharma-jñāna-ksāntih,[1][2] 영어: tolerance of the dharma of suffering[3]) 또는 줄여서 고법인(苦法忍)은 다음의 분류, 그룹 또는 체계의 한 요소이다.
고법지인(苦法智忍) 즉 고법인(苦法忍)은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의 번뇌론과 수행론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특히 견도(見道)의 증득과 관련하여 사용된다.[9][10][11] 견도는 4성제를 관찰하여 견혹(見惑)을 끊는 계위로 이 이상의 계위에 이른 유정을 성자 또는 성인이라고 한다.[23][24] 즉, 부파불교의 수행계위인 성문의 4향4과에서는 수다원향(須陀洹向) 즉 예류향(預流向)에 해당하고,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의 5위(五位)의 수행 계위에서는 제3위인 통달위(通達位)에 해당하고, 대승불교 일반의 52위(五十二位)의 보살 수행계위에서는 초지(初地), 즉 10지(十地) 가운데 첫 번째 계위, 즉 환희지(歡喜地)에 해당한다.[25]
고법지인(苦法智忍) 즉 고법인(苦法忍)은 현대의 불교사전들과 문헌들에서 다음과 같이 내용은 동일하지만 그 표현은 여러 형태로 정의되고 있다.
고법지인(苦法智忍) 즉 고법인(苦法忍)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전제 사항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사실상 이것은 불교의 번뇌론 전반에 대한 이해에 해당한다.
고법지인(苦法智忍) 즉 고법인(苦法忍)은 고법지(苦法智)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데, 고법인(苦法忍)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고법지(苦法智)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앞의 단락에서 언급된 '고법지(苦法智)는 일단 한 번 증득되면 다시는 상실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사항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리고, '고법지를 가리는 번뇌 또는 고법지의 반대가 되는 어떤 번뇌'는, 전통적인 표현으로는, 욕계의 고제에 대해 미혹하게 하는 욕계계(欲界繫: 욕계에 메인, 욕계에 속한)의 번뇌로 욕계의 고제의 관찰[觀]에 의해 끊어지는 번뇌라는 뜻에서 욕계의 견고소단(見苦所斷)이라고 한다. 견고소단(見苦所斷)은 견혹(견소단)에 속한다.
앞 단락에서 고법지(苦法智)를 '욕계의 견고소단(見苦所斷)을 끊는 무루지'라고 했는데,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틀린 말이다.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의 번뇌론에 따르면, '번뇌가 끊어지는 것'과 '해당 번뇌에 대응되는 지혜가 나타나는 상태'는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별개의 사항이다. 즉, '고법지(苦法智)의 해당 번뇌가 끊어지는 것'과 '고법지(苦法智)가 현행하는 것'은 별개의 사항이다. 즉 '욕계의 견고소단이 끊어지는 것'과 '고법지를 증득한 상태'는 기본적으로 별개이다. 이러한 이유로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의 번뇌론에서는 '고법지의 해당 번뇌 즉 욕계의 견고소단이 끊어지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지혜가 있고, 실제의 '현행하는 고법지'가 있다고 구분한다. 그리고 이에 따라 '고법지의 해당 번뇌 즉 욕계의 견고소단'을 실제로 끊는 지혜를 고법지(苦法智)의 인(忍)이라는 뜻에서 또는 고제[苦]의 법지(法智)의 인(忍)이라는 뜻에서 고법지인(苦法智忍)이라고 부르고, 줄여서 고법인(苦法忍)이라고 부른다.[9][10][11]
하지만,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의 번뇌론에서는 고법인과 고법지는 원인과 결과라는 긴밀한 관계에 있으며, 그것도 서로 간에 1찰나의 간격이 있을 뿐이라고 본다. 즉, 현재 찰나에 고법인이 증득되었다면 그 찰나에 '고법지의 해당 번뇌 즉 욕계의 견고소단이 모두 끊어지고' 이것이 원인이 되어 그 결과로서 바로 그 다음 찰나에 반드시 고법지가 현행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이 일반적인 용어로 확대되어,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위 번뇌론에서 인(忍, 산스크리트어: ksānti)은 한편으로는 인내(忍耐)를 뜻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내가 동반된 바른 수행, 즉 바른 정진(精進), 즉 정정진(正精進)을 통해 마침내 번뇌를 끊는 지혜를 말하고,[39] 지(智, 산스크리트어: jñāna, 즈냐나)는 인(忍)이 원인이 되어 일어난, 번뇌로부터 벗어난 상태의 지혜를 말한다.[13][40] 하지만, 인(忍)과 지(智) 사이에는 1찰나의 간격만이 있고 또한 인(忍)이 현재 찰나에 있으면 반드시 다음 찰나에 지(智)가 있게 되므로, 통상적인 표현으로, 지(智)를 '번뇌를 끊는 지혜' 또는 '번뇌를 끊는 무루지'라고 흔히 표현한다.
그리고, 번뇌로부터 벗어나 있는[解脫] 상태[道] · 도정[道] 또는 단계[道]를 전통적인 용어로 해탈도(解脫道)라고 한다.[41][42] 이런 의미에서 '고법지가 현행하고 있는 상태', 즉 간단히 줄여서 고법지(苦法智)는 '욕계의 고제에 대한 견혹' 즉 '욕계의 견고소단'으로부터 벗어나 있는[解脫] 상태[道] · 도정[道] 또는 단계[道]이므로 해탈도의 일종이다.
그리고, '찰나 A와 '찰나 B' 사이에 아무런 간격이 없고 '찰나 A' 다음에 바로 '찰나 B'가 이어지는 경우를 전통적인 용어로 '간격이 없다'는 뜻의 무간(無間)이라고 한다. 고법인과 고법지는 무간(無間)의 관계에 있는데, 이러한 이유로 전통적으로 고법인이 고법지와의 관계에서 무간의 상태[道] · 도정[道] 또는 단계[道]에 있다는 뜻에서 또는 고법인이 고법지의 무간의 원인[道]이라는 뜻에서, 고법인(苦法忍)을 '고법지(苦法智)의 무간도(無間道)'라고 표현하며 혹은 '고법지(苦法智)의 무간도지(無間道智)'라고도 표현한다.[31] 무간도를 걸림[礙] 즉 간격[間]이 없다는 뜻에서 무애도(無礙道) 라고도 한다.[43][44]
고법지인(苦法智忍) 즉 고법인(苦法忍)은 현대의 불교사전들과 문헌들에서 다음과 같이 여러 형태로 정의되는데 모두 위에 기술된 설명의 취지를 따른 서술로, 어떤 경우는 매우 생략된 형태의 서술이다. 그리고 지혜를 비롯한 모든 마음작용(심소법)은 마음이라는 활동공간[地, 산스크리트어: bhūmi]에 현행하는 것이므로, 고법인(苦法忍)이 현행하고 있는 상태도 마음이고 고법지(苦法智)가 현행하고 있는 상태도 마음이다. 이런 뜻에서 아래의 정의들 중 몇몇에서는 고법인이라는 지혜를 무루심 또는 마음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이들 정의들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바는 '현재 찰나의 마음에 고법인(苦法忍)이 현행하여서 욕계의 고제에 대해 미혹하게 하는 번뇌 즉 욕계의 견고소단을 끊고, 이것이 원인이 되어 바로 그 다음 찰나의 마음에 고법지(苦法智)가 현행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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