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B.C. 37년부터 668년까지 존재했던 한국의 고대 국가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고구려(高句麗)는 한국의 고대 왕조국가 중 하나이다.[6] 국성은 고씨(高氏)이다.[7] 본래의 국호는 고구려였으나 당시의 금석문과 역사 기록을 토대로 장수왕대에 고려(高麗)로 개칭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8][9][10][11] 왕건이 건국한 고려와 구분하기 위해 고구려로 통칭되고 있다.
고구려 (5세기 이전) 고려 (5세기 이후) | ||||
---|---|---|---|---|
高句麗 高麗 | ||||
| ||||
표어 | 天帝之子[1] 천제지자 | |||
476년경 고구려 강역. | ||||
수도 | 졸본성(기원전 37년 ~ 3년) 국내성(3년 ~ 427년) 평양성(427년 ~ 668년)[2] | |||
정치 | ||||
정치체제 | 군주제 | |||
왕 기원전 37년 ~ 기원전 19년 371년 ~ 384년 392년 ~ 413년 413년 ~ 491년 642년 ~ 668년 | 동명성왕(초대) 소수림왕 광개토대왕 장수왕 보장왕(말대) | |||
국상 166년 ~ 179년 294년 ~ ? 대막리지 642년 ~ 665년 666년 ~ 668년 | 명림답부(초대) 창조리(말대) 연개소문(초대) 연남건(말대) | |||
국성 | 고씨 | |||
입법부 | 제가회의 | |||
역사 | ||||
역사적 시대 | 삼국 시대 | |||
• 건국 • 충주 고구려비 축조 • 광개토대왕비 축조 • 살수 대첩 • 막리지의 난 • 주필산 전투 • 안시성 전투 • 사수 대첩 • 평양성 함락 | 기원전 37년 5세기 414년 612년 7월 642년 음력 10월 645년 6월 23일 645년 8월 10일 662년 668년 10월 21일 | |||
인문 | ||||
공통어 | 고구려어 한문[lower-alpha 1] | |||
데모님 | 고구려인 | |||
민족 | 예맥, 한, 말갈, 거란, 선비, 실위 | |||
인구 | ||||
668년 어림 | 69만호[3][4][5] | |||
종교 | ||||
국교 | 불교 | |||
기타 종교 | 유교, 도교, 무속신앙 | |||
기타 | ||||
현재 국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한민국 중화인민공화국 러시아 |
기원전 37년 부여의 주몽이 졸본 지역에 나라를 건립한 것을 시초로 보고 있다. 고구려는 이후 만주 일대와 한반도 북부를 정복하였고, 이 과정에서 후한, 위, 후연 등 중국 여러 왕조와 말갈, 동예, 옥저 등 주변국들과 전쟁을 치렀다. 동천왕 시기 수도인 국내성이 위나라에 함락되기도 하고, 이후 고국원왕 때 다시 수도가 함락되고 고국원왕은 백제의 대외정복 전쟁 중 평양성에서 전사하는 등 3세기에서 4세기 사이 고구려의 국력은 위축되기도 하였으나 소수림왕 시기에 내치를 다짐으로써 국력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후 광개토왕과 장수왕 시기에 고구려는 전성기를 맞이하였고 동북아시아의 강국으로 성장한다. 5세기 남진 정책을 추진하여 수도를 국내성에서 지금의 평양성으로 옮겼고, 5세기 후반 백제의 수도인 위례성[lower-alpha 2]를 함락하고 백제, 가야, 신라를 공격하여 큰 성과를 올렸다. 이 시기 고구려는 오늘날 평안도, 랴오닝성, 지린성을 주무대로 삼으며 한반도 중부와 남부, 만주 일대를 자신의 세력권으로 삼았다. 6세기부터 정치적 불안정과 주변 국가들의 성장으로 쇠퇴하였고, 7세기 수나라 및 당나라와 전쟁을 겪으면서 국력이 더욱 쇠퇴했다. 668년 정치 세력의 내분과 나당 연합군의 공격으로 멸망했다.
고구려 문화는 한민족 전통문화의 뿌리 중 하나로, 각저총[12]의 씨름도에 근거해 전통스포츠 씨름의 기원이 된 시대로 추정되고 있다.[13] 또한 난방 방식인 온돌[14], 현악기 거문고의 기원으로도 여겨진다.[15] 한반도 남부와 풍습과 언어가 같다는 기록이 존재한다.[1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