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란
남만주와 내몽골의 시라무렌 강 유역에 나타나 거주하던 동호 민족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거란(거란대자: , 거란소자: Kitai, 한국 한자: 契丹 글단) 또는 키탄(Khitan)은 4세기 중엽부터 남만주와 내몽골의 시라무렌 강 유역에 나타나 거주하던 동호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생활 방식은 주로 정주 농경과 목축을 하고 유목도 하였다. 언어와 문화는 기록이 적어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일단 언어적이나 문화적으로 볼 땐 투르크나 고구려에 가깝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치 않으며 고구려어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자신들이 사용한 명칭은 '키탄'이며, '키타이'라고도 알려져 있는데 이는 이란식 이름이다. 지금은 사라진 민족이며, 중국의 소수민족 중 하나인 다우르족(達斡爾族, Daur)이 거란족의 후예로 추정된다. 남몽골, 몽골, 랴오닝성, 헤이룽장성, 지린성, 연해주, 사할린에 거주하였다.
일찍이 378년 가을 9월에 거란이 고구려의 북쪽 변경을 침범하는 등 노략질하였으나, 고구려는 거란의 여덟 부락을 정복하였다. [1] 광개토대왕 때는 거란족 대부분을 고구려에 복속시켰다. 395년 고구려는 염수(鹽水)[2]로 진출하여 거란족인 패려(稗麗)를 정벌하여 6~700영을 쳐부수고 수없이 많은 소, 말, 양떼를 노획하였다. 일부 학자들은 《삼국사기》의 거란 정벌(392년)과 광개토왕릉비의 비려 정벌(395년)을 동일한 사건에 대한 기록으로 보기도 한다.[3] 거란은 광개토왕의 공격을 받고 거의 대부분 복속했다. 거란족은 오랜 세월 고구려인에 동화되었다. 이후 거란은 돌궐과 위구르에서도 활동하였다. 916년 야율아보기가 거란의 여러 부족을 통합하여 요나라를 세우고 송나라와 대립하였다. 요나라는 993년부터 1019년까지 고려에 쳐들어왔으나 고려가 승리하여 요나라는 패퇴했다. 거란 문자를 만들기도 하였으며, 여진족의 금나라에게 멸망했다. 12세기 이후부터는 몽골족과 위구르족에 편입되었다. 거란인들은 정주 목축, 농경을 하였다. 현대 몽골이 농경지가 부족하고 평원이 많아 유목을 많이 해서 오해가 있지만 거란, 선비족, 퉁구스 등 이민족들은 정주하며 농경과 유목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