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빈 장씨
조선 숙종의 후궁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희빈 장씨(禧嬪 張氏, 1659년[1] 11월 3일(음력 9월 19일)[2][3][4][5][6] ~ 1701년 11월 9일(음력 10월 10일[7])), 장희빈(張禧嬪) 또는 옥산부대빈 장씨(玉山府大嬪 張氏)는 조선 숙종의 빈(嬪)으로, 제20대 왕 경종의 어머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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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 정보 희빈 장씨禧嬪 張氏, 재위 ...
희빈 장씨 禧嬪 張氏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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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빈묘 | |
조선 숙종의 후궁 | |
조선 숙종의 왕비 | |
재위 | 1690년 10월 22일 ~ 1694년 4월 12일 (음력) |
전임 | 인현왕후 민씨 |
후임 | 인현왕후 민씨 |
이름 | |
휘 | 장옥정(張玉貞) |
이칭 | 장희빈(張禧嬪) · 대빈궁(大嬪宮) |
존호 | 옥산부대빈(玉山府大嬪) |
신상정보 | |
출생일 | 1659년 11월 3일(1659-11-03) (양력) |
출생지 | 조선 한성부 상평방 |
사망일 | 1701년 11월 9일(1701-11-09)(42세) (양력) |
사망지 | 조선 한성부 창경궁 취선당 |
가문 | 인동 장씨 |
부친 | 장형 |
모친 | 파평 윤씨 |
배우자 | 숙종 |
자녀 | 2남
경종 · 이성수(조졸) |
능묘 | 대빈묘(大嬪墓)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로 334-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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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은 장옥정(張玉貞)[8],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아버지는 역관 출신인 장형이며, 어머니는 장형의 계실인 윤씨이다. 역관(驛官) 장현의 종질녀이다. 조선 왕조 궁녀 출신으로 왕비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여인이다.
산림숭용과 국혼물실을 당의 제1강령으로 추구했던 서인, 특히 인현왕후 민씨의 배경 세력이었던 노론의 강력한 적으로 규정되었다. 1701년(숙종 36년) 숙빈 최씨의 발고로 인현왕후의 죽음을 기원하는 저주굿을 한 혐의를 받고 숙종에게 자진을 명받았다. 인현왕후전이나 수문록 등의 소설 야사에서는 사약을 마시고 사사된 것으로 묘사하고 있으나 숙종실록 등 정사기록은 주례의 규정에 따라 사사할 수 없음을 언급하고 목을 매어 자결하였음을 알 수 있는 기록들이 존재한다. 그녀의 아들인 경종이 사망하고 숙빈 최씨의 아들인 영조가 즉위하자, 인현왕후의 오빠 민진원을 위시한 노론은 그녀를 인현왕후 폐위와 죽음의 범인이자 3대 환국(기사환국, 갑술환국, 신임사화)의 원흉이라며 비난하였다. 또한, 이 시기에 집필되어 민간으로 보급된 인현왕후전, 수문록 등의 언문 소설과 야사집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역사 서적과 드라마 등에 중요 사료로 활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