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
1979년~1992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과 싸운 이슬람 반군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아랍어: افغان مجاهدين)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과 뒤이은 아프가니스탄 내전에서 소련과 아프가니스탄 민주공화국에 맞서 싸운 다양한 이슬람주의 단체들이다. "무자헤딘"이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지하드를 일컫는 이슬람교를 위한 어떤 종류의 투쟁에라도 종사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은 이념을 넘어 서로 다른 수많은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반공과 친이슬람이라는 목표로 통합했다.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을 지원한 서구에서는 아프간 저항군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서구 언론들은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을 "이슬람 반군", "게릴라", "산사람"이라고 불렀다.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 مجاهدين | |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제1차 아프가니스탄 내전에 참전 | |
1983년 2월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국경에서 레이건과 만남을 가지는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의 지도자들. | |
활동기간 | 1979년~1992년 (반군) 1992년~1996년 (충성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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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 | 이슬람주의 반공 반소련 |
지도자 | 부르하누딘 라바니/아흐마드 샤 마스우드 (자미아트) 시브가툴라 모자데티 (JNMA) 굴부딘 헤크마티아르 (HIG) 압둘 하크 이스마일 칸 압둘 라술 사야프.... |
활동지역 | 아프가니스탄 및 파키스탄 |
하위단체 | 테헤란 8 (시아파) 페샤와르 7 (수니파) |
이후단체 | 북부동맹 |
동맹국가 | 파키스탄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영국 중화인민공화국 이란 (시아파) |
적대국가 | 소련 아프가니스탄 민주공화국 |
참여한 전투 |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의 무장세력은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직후 조직되었다. 초창기에는 아프가니스탄의 정규 주민과 아프가니스탄 군대의 탈영병들을 모집했고, 1978년 사우르 혁명 이후 권력을 차지한 아프가니스탄 인민민주당을 지지하고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소련에 대한 무장투쟁을 목표로 삼았다.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에는 다양한 이념을 가진 파벌이 있었으며, 그 중 가장 영향력이 컸던 파벌은 자미아티 이슬라미와 헤즈비 이슬라미 굴부딘이었다.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은 크게 2개의 동맹 세력으로 나뉘었는데, 하나는 파키스탄의 지원을 받는 수니파 이슬람 동맹인 "페샤와르 7"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란의 지원을 받은 시아파 이슬람 동맹인 테헤란 8이었다. 이 중 페샤와르 7은 미국, 영국, 사우디아라비아, 중화인민공화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와 민간 국제 기부자들의 지원을 받았다.
무자헤딘의 기본 부대는 아프가니스탄 사회의 고도로 분산된 특성과 경쟁하는 파슈툰 부족 집단의 발원지라는 것을 반영했으며, 이들은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의 압력으로 다른 아프가니스탄 무장단체와 연합했다.[1][2] 그 동맹은 국제 사회를 향한 통일된 외교 전선의 기능을 추구했으며, 유엔과 이슬람 협력 기구에서 대표로서의 기능을 추구했다.[3] 여러 이슬람 국가들에서 온 사람들이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에 자원해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의 저항을 도왔다. 자원군 중 대다수는 아랍권에서 왔으며, 이들 중 다수는 아프가니스탄 아랍인으로 알려졌다. 이 시기에 무자헤딘의 가장 유명한 아랍 금융가이자 호전적인 사람은 2001년 9·11 테러를 기획한 오사마 빈 라덴이 있다. 인도아대륙에서 온 여러 자원군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끝난 후인 1990년대에 카슈미르, 미얀마와 방글라데시 일대에서 테러 활동을 벌였다.[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