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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집
조선의 문신, 정치가 (1842~1896)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김홍집(金弘集, 1842년~ 1896년 2월 11일[1])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사상가, 정치인이다. 자(字)는 경능(敬能), 호는 도원(道園)·이정학재(以政學齋), 시호는 충헌(忠獻), 본관은 경주이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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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 정보 김홍집金弘集, 임기 ...
김홍집 金弘集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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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80년 도쿄의 우치다 사진관에서 수신사의 신분으로 촬영한 사진 | |
조선의 내각총리대신 겸 대리집정공 | |
임기 | 1895년 12월 17일 ~ 1896년 2월 11일 |
군주 | 고종 이형 |
이름 | |
별명 | 김굉집(金宏集) (아명) 경능(敬能) (자) 도원(道園)·이정학재(以政學齋) (아호) 충헌(忠獻) (시호) |
신상정보 | |
출생일 | 1842년 |
출생지 | 조선 한성부 |
거주지 | 조선 한성부 |
사망일 | 1896년 2월 11일(1896-02-11)(53세) |
사망지 | 조선 한성부 |
국적 | 조선 |
학력 | 1867년 진사시 합격 1868년 알성문과 급제 |
경력 | 문관, 총리대신, 문필가 |
정당 | 온건개화파 세력 |
본관 | 경주(慶州) |
부모 | 아버지 김영작(金永爵) 어머니 창녕 성씨 부인(昌寧 成氏 夫人) |
형제자매 | 김항집(형) 김승집(형) |
배우자 | 남양 홍씨 부인 |
자녀 | 1남 1녀 |
친인척 | 이시영(사위) |
종교 | 유교(성리학) |
웹사이트 | 김홍집 - 두산세계대백과사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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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 수신사 일행으로 일본을 방문한 뒤, 신문물을 견학하고 돌아와 개화, 개항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3] 한편으로 위정척사파 계열 인사들도 중용하는 등의 정책을 펼쳤으나 급진 개화파로 몰렸고, 1884년 갑신정변(甲申政變) 진압 후 우의정, 좌의정 등으로 전권대신(全權大臣)이 되어 한성조약(漢城條約)을 체결하였다.[4] 그 뒤 1896년 관제 개정 이후 동학 농민 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끌어들인 일본측의 지원으로 총리대신이 되었으며, 총리대신 재직 중 신분제 폐지, 단발령 등을 강행하는 한편, 함께 일본의 도움으로 개혁, 개방을 단행한 뒤에는 친일파로 몰려 아관파천 때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분노한 백성들에게 뭇매를 맞아 죽었다.[5]
원래 이름은 김홍집(金弘集)이었으나, 청 고종(高宗) 건륭황제의 휘가 ‘홍력’(弘歷)이었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해 김굉집(金宏集)으로 가운데 자(字)를 바꾸었다.[6] 조선말기의 문신이자 독립운동가, 대한민국의 부통령을 지낸 이시영은 그의 사위였다. 박규수, 오경석, 강위의 문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