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
조선의 유학자, 철학자, 시인, 외교관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강위(姜瑋, 1820년 5월 2일 ~ 1884년 4월 5일)는 조선 말기의 한학자, 개화 사상가, 시인이자 금석학자다. 김정희, 오경석과 함께 조선 후기에 금석문을 연구하였다. 그는 김택영(金澤榮), 황현(黃玹)과 함께 조선말의 3대 시인으로 불렸으며, 영재 이건창을 포함해서 4대 시인으로도 부른다. 김삿갓 등과 함께 조선의 방랑 시인의 한 사람으로도 꼽힌다.
여러번 과거 시험에 응시하였으나 과거 부정과 문벌상의 제약으로 여러번 낙방하자 과거를 단념하고 민노행에게서는 경사와 학문을, 김정희의 문하에서는 시문과 서화를 배웠다. 1876년(고종 13년) 강화도 조약(江華島條約)에 참석하였으며, 이후 일본과 청에 왕래하면서, 해외의 실태를 파악하여 국운 회복에 힘썼다. 《한성순보》를 간행했다. 《황성신문》의 발기인 중 한 사람이며 국문 연구에도 전력하였다. 김홍집, 어윤중, 변수, 이건창, 윤웅렬, 윤영렬, 김윤식, 유길준 등은 그의 문하에서도 수학하였다. 또한 매천 황현 역시 그의 문하생 중 한 사람이다.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초명은 성호(性澔), 문위(文瑋), 다른 이름은 호(浩), 위(瑋)라고도 한다. 자(字)는 중무(仲武), 요장(堯章) 또는 위옥(韋玉), 유성(惟聖), 요초(堯草)이고, 호는 추금(秋琴), 고환(古懽), 별호로는 자기(慈屺), 고환자(古懽子), 고권당(古權堂), 추금자(秋琴子), 당호는 청추각(聽秋閣), 고환당(古懽堂) 등이다. 1883년(고종 20년) 언론기관인 박문국(博文局)을 설치하고, 《한성순보 (漢城旬報)》를 발간하였다. 그는 김정희의 제주도와 북청 유배지까지 따라가면서 스승으로 섬겼다.[1] 기원 민노행(紀園 閔魯行),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의 문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