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호 전차 판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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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 전차 판터(독일어: Panzerkampfwagen Ⅴ Panther[1], Sd.Kfz. 171)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중형전차이다. 판터는 군수품 목록상 171번 특수목적차량(Sonderkraftfahrzeug 171; 줄여서 Sd.Kfz. 171)이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었다.
종류 | 중형전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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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국가 | 나치 독일 |
개발사 | MAN AG |
배치년도 | 1943년~1945년 |
역사 | |
개발년도 | 1943년 |
생산기간 | 1943년~1945년 |
사용국가 | 나치 독일 |
사용된 전쟁 | 제2차 세계 대전 |
개량형 | 야크트판터 |
생산 대수 | 6,000여 대 |
일반 제원 | |
승무원 | 5명(전차장, 포수, 장전수, 조종수, 무전수) |
길이 | 6.87 m, 8.66 m(주포 포함) |
높이 | 2.99 m |
폭 | 3.42 m |
중량 | 44.8 t |
공격력 | |
주무장 | 7,5 cm KwK 42 L/70 1문, 79발 |
주포개발사 | 크루프(Krupp) |
사용 포탄 | APCBC-HE, HE, APCR |
사통 장비 | 수동 조준 |
유효사거리 | 1.5~2 km |
장전 방식 | 수동 |
부무장 | 7,92 × 57 mm MG 34 2~3정 4,800~5,100발 |
기동력 | |
엔진 | V-12 마이바흐 HL 230 P30 700 PS |
마력 | 700마력 |
출력/중량 | 15.39 PS/t |
현가장치 | 더블 토션 바, 교차 로드휠 |
노상 속도 | 55 km/h(초기형), 46 km/h(후기형) |
야지 속도 | 25~30 km/h |
기동 가능 거리 | 도로 260 km, 야지 100 km |
장애물 통과 | 가능 |
방어력 | |
전면 장갑 | 차체 80 mm 55도 경사, 포탑 100 mm(포방패 최대 120 mm) |
측면 장갑 | 40~45 mm(초기형), 45~50 mm(후기형) |
장갑 방식 | 균질압연장갑 |
전자전 | 불가능 |
5호 전차 판터의 설계와 계발은 1941년 6월 22일 발발한 독소전쟁에서 독일 기갑부대에 큰 충격을 준 소련군의 T-34-76 중형전차와 KV-1 등의 중전차들과의 전투에서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던 기존 독일의 주력 중형전차인 4호 전차를 완전히 대체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터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4호 전차와 중(重)전차인 6호 전차 티거 1과 함께 생산되고 운용되었다. 판터의 생산은 적절한 타협책이었다. 판터는 티거 1의 엔진과 동일한 700마력의 마이바흐 V-12 가솔린 엔진을 사용했지만 티거 1에 비해 무게가 12톤이나 더 가볍고 전진 속도가 더 빠르며 거친 지형을 더 잘 횡단할 수 있었다. 그러나 티거 1에 비해 판터의 측면 장갑은 얇아 약점이었다. 판터는 티거 1보다 주포의 관통력과 명중률이 더 좋았기 때문에 평지전과 장거리 교전에서 중전차인 티거 1보다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매우 강력한 전차로 입증되었다.[2]
판터는 매우 뛰어난 공격력, 방어력, 전술기동성을 고루 갖추고 있었지만 기계적 신뢰성은 그다지 인상적이지 못했다.[3] 판터는 티거 1보다 생산 비용이 훨씬 저렴했다. 장갑, 변속기, 최종 구동장치와 같은 판터 설계의 핵심 요소는 생산 속도를 향상하고 원자재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단순화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학자들은 판터의 전체적인 설계가 여전히 "과도하게 설계됐다"고 묘사했다.[4][5]
판터는 T-34의 가장 특징적인 경사장갑을 채택한 독일의 첫 번째 전차이고, 판터 이후부터 경사장갑은 야크트판터, 티거 2, 야크트티거, 헷쳐, 야크트판처 등 독일의 거의 모든 신형 기갑전투차량들에도 채택된다.
히틀러는 1943년 7월 쿠르스크 전투에 판터를 처음으로 실전에 투입시키기 위하여 성채 작전 전체를 연기시킬 만큼 판터에 큰 기대를 걸었으나, 성채 작전에 맞추기 위해 판터 초기 생산분의 기계적인 결함이 해결되기 전에 너무 급하게 투입하였고 성채 작전에 투입된 184대의 판터 중 160대에 설계 결함으로 인한 화재가 발생하여 큰 손실이 발생했다. 이는 성채 작전의 장애를 초래하여 독일군이 전략목표 달성을 실패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으며 소련군이 T-34-85, IS-2 등의 신형 전차를 개발하는 계기를 만들어주게 되었다. 판터의 초기 설계 결함은 대부분 1943년 말과 1944년 초에 수정되었지만 생산 공장 폭격, 중요 부품에 대한 고품질 합금 부족 증가, 연료 부족 및 품질 저하, 훈련 공간 부족, 숙련된 승무원 수 감소 등이 모두 전차의 효율성에 영향을 미쳤다.
독일군은 판터를 공식적으로 중형전차로 분류하고 운용하였지만, 판터의 무게는 44.8톤으로 당대에는 타국의 중전차에 더 가까웠다. 당대 중형전차 중에서 가장 무거운 판터의 무게로 인해 특정 다리를 건너지 못하는 등의 물류 문제가 가끔 발생했다. 그러나 판터의 중량 대비 출력 비율이 매우 높아 전술기동성이 매우 뛰어났다. 또한 2차 세계 대전 내내 판터의 전투력은 연합군의 중전차들보다도 뛰어났고 가성비도 매우 좋았기 때문에 이후에도 판터는 2차대전이 끝날 때까지 티거 1과 함께 독일 기갑부대의 주력으로 활약했다.
특이하게도 판터 생산형별 기호는 대부분의 독일 전차와 달리 알파벳 순서를 따르지 않았다. 가장 초기형인 판터 'D형(Ausf. D)' 뒤에는 'A형', 다음 'G형' 순서로 변종이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