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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식민지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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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식민지 전쟁(포르투갈어: Guerra Colonial Portuguesa)은 1961년에서 1974년까지 포르투갈과 포르투갈의 아프리카 식민지 독립 세력 간에 벌어진 전쟁이다. 포르투갈에서는 해외전쟁(포르투갈어: Guerra do Ultramar), 옛 식민지 국가에서는 해방전쟁(포르투갈어: Guerra de Libertação)이라고도 부른다. 넓은 의미에서는 인도의 고아 합병도 이 전쟁에 포함된다.
포르투갈 식민지 전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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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탈식민지화의 일부 | |||||||
![]() 철수하는 포르투갈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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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앙골라 기니비사우 (1963년부터) 모잠비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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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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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골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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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력 | |||||||
아프리카: 총 1,400,000명[47] 포르투갈령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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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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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규모 | |||||||
아프리카: 29,000명
포르투갈령 인도 |
아프리카: 26,000명 이상 인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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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사망자: 최대 110,000명 사망 |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1950년대와 1960년대 동안 포르투갈의 이스타두 노부 정권은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철수하지 않았으며, 1951년부터 그 지역들을 공식적으로 프로빈시아 우트라마리누(Províncias Ultramarinas)라고 불렀다. 1960년대 동안 다양한 무장 독립 단체들이 활동을 시작했는데, 앙골라에서 앙골라 해방인민운동, 앙골라 민족해방전선, 앙골라 완전독립 민족동맹, 포르투갈령 기니에서 기니비사우-카보베르데 아프리카 독립당, 그리고 모잠비크에서 모잠비크 해방전선이 이러한 독립운동 단체였다. 포르투갈 식민지 전쟁 기간 동안 포르투갈군과 독립운동 단체들 모두가 잔학 행위를 저질렀다.[65]
이 기간 동안 포르투갈은 일부 서방 국가들을 포함한 국제 사회로부터 전쟁에 대한 반대와 무기 금수 조치 및 기타 제재를 간헐적 또는 지속적으로 받았다. 포르투갈령 아프리카의 반식민지 게릴라와 독립 단체들은 소련을 주도로 공산권으로부터 자금과 무기를 지원받았고 군사 훈련과 외교적 로비를 받았다.[66] 1973년까지 포르투갈 식민지 전쟁은 포르투갈 내에서 길어지는 시간과 지나친 비용으로 인해 점점 더 인기가 없어졌으며, 다른 유엔 회원국들과의 외교 관계 악화로 인해 에스타도 노부 정권은 더욱 고립되었다.
포르투갈 식민지 전쟁은 1974년 4월 25일 포르투갈 본토에서 발생한 군사 쿠데타인 카네이션 혁명으로 끝이 났다. 이 전쟁의 결과 수십만 명의 포르투갈 시민들[67]과 유럽계, 아프리카계 또는 혼혈인 포르투갈 군인이 옛 포르투갈 식민지와 새로 독립한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추방되었다.[68][69][70] 포르투갈 주민들의 이주는 세계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강제 이주 중 하나로 간주되지만, 대부분의 이주자들은 빈곤한 난민으로서 포르투갈 영토를 떠났다.[71]
독립 후 포르투갈의 옛 식민지에서는 심각한 사회 문제가 대두했다. 앙골라와 모잠비크에서는 수십 년 동안 지속된 파괴적인 내전이 발생하여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많은 난민이 발생했다.[72] 앙골라와 모잠비크는 독립 후 계획 경제를 수립했으나[73] 비효율적인 사법 체계와 관료제, 부패,[74][75] 빈곤과 실업[74] 등의 문제에 시달렸다. 독립한 새 정부는 포르투갈 통치 시기, 그 중에서도 식민지 전쟁 기간 동안 존재했던 수준의 사회 질서와 경제 발전을 목표로 삼게 되었다.[76]
1974년 전쟁이 끝난 이후 포르투갈은 민주정을 수립했다.[77] 그러나 전쟁 이후 옛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귀환하는 포르투갈인들을 사회에 다시 정착시키는 문제, 그리고 전쟁 기간 동안 썼던 비용에 대한 재정 건전성 문제로 포르투갈은 수십 년 동안 경제 침체를 겪어야 했다.[78] 1974년 9월 7일 새 포르투갈 정부는 모잠비크 해방전선과 루사카 협정을 체결해 모잠비크의 독립을 보장했고,[79] 1975년 1월 14일 포르투갈 정부와 앙골라 정부는 알보르 협정을 체결했지만 내전의 불씨를 남겼다.[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