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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씨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조양 임씨(兆陽林氏)는 전라남도 보성군 조성면을 관향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 임세미(林世味)는 평성부원군(平城府院君) 임언수(林彦脩)의 넷째 아들로 고려 말 광정대부(匡靖大夫) 이부상서(吏部尙書) 등을 역임하고 조양군(兆陽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시조 묘소는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낙성리에 있다.
조양(兆陽)은 전라남도 보성군 조성면 일원의 옛 지명이다. 백제시대에는 동로현(冬老縣)이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조양(兆陽)으로 고쳐 분령군(分嶺郡)의 영현이 되었다가 고려 현종 때 보성현(寶城縣)에 속하였다. 1395년(태조 4) 고흥현(高興縣)에 편입되었고, 1441년(세종 23)에 다시 보성군에 환속되었다. 1442년(세종 23년) 폐현(廢縣)되어 조양면(兆陽面)에 편입되었다. 1911년 조양면(兆陽面)과 대곡면(大谷面)을 합하여 조성면(鳥城面)으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조양 임씨는 평택 임씨에서 분관되었다고 한다. 조양 임씨는 시조 임세미의 증손 임천봉(天鳳)과 임난봉(鸞鳳)의 대에 전주에 터를 잡고 살게 되었으니 이곳이 곧 조양임씨(兆陽林氏)의 집성촌이 되고 6세 임각(恪)의 대에 이르러 중종이 크게 번창하니 7세를 파조(派祖)로 하여 군사공파, 주부공파, 생원공파, 참의공파, 부사공파, 군수공파, 현감공파, 별시공파의 8개파로 분파되었다.
임세미의 손자인 임인성(仁成)의 후손이 안동 임씨로 되고, 임세미의 증손 임실 후손이 전주 임씨로, 임세미의 셋째 아들 임총의 후손이 임하 임씨(臨河林氏), 임세미의 7대손 임연(然)의 후손이 보성 임씨(寶城林氏), 임세미의 7대손 임사순(士栒)의 후손이 임천 임씨(林川林氏)로 각각 분관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한 사료(史料)나 문헌은 없다.
조양 임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3명, 무과 급제자 7명을 배출하였다.[2]
임기(林) 임숭회(林崇檜) 임을손(林乙孫)
임수(林守)
임광달(林光達) 임대춘(林大春) 임순재(林順才) 임재무(林梓茂) 임종신(林宗信) 임태장(林泰長) 임희복(林希福)
임관(林瓘) 임변(林忭) 임숭괄(林崇栝) 임숭회(林崇檜) 임익방(林益芳) 임익번(林益蕃) 임정준(林廷俊) 임지재(林之梓) 임후생(林厚生)
임상후(林相厚) 임숭백(林崇栢) 임재환(林在煥) 임찬(林璨) 임협(林恊)
전라남도 장흥군 부산면 유량리에 조선조 양주목사를 역임한 임계을(林桂乙)을 비롯해 조양 임씨 선조를 모시는 구양재(龜陽齋)가 있다.
임세미의 증손 임천봉과 임란봉의 이래로 전라북도 무주군 일대에 자리 잡았다. 4세 임천봉의 자손들은 김제군 일대에 옮겨가 살았다. 임천봉의 동생 임란봉의 자손들 가운데 7세 임사수의 후계인 주부공파는 전주와 보성군에 뿌리를 내렸다. 임사수의 동생 임사부를 파조로 하는 생원공파는 익산에 뿌리를 내린다. 임사강의 후계인 참의공파는 전주, 정읍, 장흥군에서, 부사공파는 김제, 부안에, 군수공파는 고창군에 많이 살았다. 7세 임사명의 후계인 현감공파는 전라도 각지에 퍼졌으며, 임한손의 후계인 별시공파는 부안군에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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