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인노첸시오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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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인노첸시오 3세(라틴어: Innocentius PP. III, 이탈리아어: Papa Innocenzo III, 1160년경 ~ 1216년)는 제176대 교황(재위: 1198년 1월 8일 ~ 1216년 7월 16일)이다. 본명은 로타리오 데이 콘티 디 세니(이탈리아어: Lothario dei Conti di Segni)이다.
인노첸시오 3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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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 1198년 1월 8일 |
전임자 | 첼레스티노 3세 |
후임자 | 호노리오 3세 |
개인정보 | |
출생이름 | 로타리오 데이 콘티 디 세니 |
출생 | 1161년 2월 22일 교황령 가비냐노 |
선종 | 1216년 7월 16일 교황령 페루자 |
인노첸시오 3세는 ‘교황은 태양, 황제는 달’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교황권의 전성기를 이룩하여 중세의 교황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교황으로 손꼽힌다. 그는 유럽의 모든 군주들을 대상으로 우위를 차지하여 유럽의 기독교 국가들에 대해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는 교령들을 반포하여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를 소집해 가톨릭교회를 쇄신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 결과 서방 교회의 교회법이 크게 개선되었다. 비록 이러한 조치들이 항상 성공한 것은 아니었으나 인노첸시오 3세는 성무 금지와 견책 등을 적절히 이용하여 군주들이 자신의 뜻에 따르게 만들었다. 인노첸시오 3세는 알안달루스와 거룩한 땅의 무슬림들을 몰아내기 위한 십자군 원정과 프랑스 남부 카타리파를 진압하기 위한 알비 십자군 원정을 촉구하였다.
인노첸시오 3세가 내린 중대한 결정들 중의 하나는 제4차 십자군을 조직한 것이었다. 당초 이집트를 통해 예루살렘을 공략하려고 했던 십자군은 일련의 예기치 않은 상황으로 인해 1204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격하였다(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 처음에 인노첸시오 3세는 자신의 지시를 명백히 위반한 것이었기 때문에 십자군을 파문했지만, 나중에는 이를 동서 교회의 재일치를 위한 하느님의 뜻으로 보고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이 일로 인하여 가톨릭교회와 동방 정교회 간의 적대감이 커지게 되었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