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1517년)
조선의 무신 (1517~ ?)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이전(李戩, 1517년 1월 21일 ~ ?)은 조선 중기의 무신, 군인, 정치인으로 조선 중종, 명종, 선조 때의 장군이다. 자(字)는 언우(彦祐), 언점(彦漸), 초명은 언석(彦晳), 다른 이름은 이전(李戬), 본관(本貫)은 우계(羽溪)이다. 임진왜란 때 피난가는 선조왕의 가마를 의주까지 호종(扈從)하였다.
이전 (李戩) 이전(李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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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무신, 군인, 정치인, 작가, 외교관 | |
이름 | |
별명 | 초명은 언석(彦晳), 자(字)는 언우(彦祐), 언점(彦漸) |
신상정보 | |
출생일 | 1517년(중종 12) 1월 21일 ~ ? |
출생지 | 조선 강원도 강릉부 |
거주지 | 조선 강원도 강릉부->조선 경기도 광주군 |
사망일 | ? |
국적 | 조선 |
학력 | 1539년(중종 34) 무과 급제 |
부모 | 이광식, 함안이씨 |
배우자 | 고성이씨, 하빈이씨 |
자녀 | 이준헌, 이경헌, 이봉헌, 이승헌, 한강의 처 이씨 |
직업 | 무신, 군인, 정치인, 작가, 외교관 |
종교 | 유교(성리학) |
군사 경력 | |
복무 | 조선군 |
복무기간 | 1540년 - 1598년 |
지휘 | 조선 국군(경기수영, 함경북도병영, 전라도병영, 경상우수영, 전라도병영, 경상우병영, 함경북도병영, 경상좌병영, 충청병영, 평안도병영) |
주요 참전 | 임진왜란 |
상훈 | 1604년(선조 37) 호성원종공신3등(扈聖原從功臣三等) |
1539년(중종 33) 무과에 급제, 이후 선전관, 1540년 훈련원 판관, 1546년 호조좌랑과 정랑, 1553년 사도시첨정 등을 거쳐 장흥부사와 경흥부사 등을 거쳐 1560년 승정원좌부승지, 1561년 동부승지와 좌승지, 공조참판(工曹參判) 등을 지내고 그 해 북병사가 되었다. 1566년(명종 21) 대호군으로 동지사가 되어 명나라에 갔다가 현지에서 공조참판직과 정조사에 임명되었다. 이후 경기도수군절도사, 1567년(명종 22) 경상우도수군절도사, 전라도 병마절도사를 거쳐 1568년(선조 1년) 6월 12일 제주목사(濟州牧使)로 부임하였다. 1571년(선조 4) 1월 체직되어 행 사직(司直)으로 전임되고 1573년(선조 6) 5월 2일 그는 경상우도병마사(慶尙右道兵馬使)에서 형문을 가하던 중 사람이 죽어, 형장을 남용하여 사람을 죽였다며 순무 어사(巡撫御史)에게 탄핵받아 파직되었다가 다시 복관되었다.1573년(선조 6) 첨지중추부사가 되었다가 전임지인 경상 좌병사(慶尙左兵使)로 있을 때 분양마(分養馬)가 여윈 일로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체임되었다. 1573년(선조 6) 충청도병마절도사가 되고, 이후 평안도병마절도사, 오위도총부부총관 등을 거쳐 1583년 경연특진관, 1584년 평안병사 등을 지냈다.
1587년(선조 20) 경기도수군절도사로 있을 때 도성을 나서자마자 바로 교자에 올라탔다는 이유로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이후 포도대장, 군기시제조, 비변사당상 등을 역임하였다. 1592년(선조 25) 4월 임진왜란 발발 직후 수성좌위장을 맡아 성곽을 수축했으며, 임금에게 전략 12조를 헌책하였다. 4월 말 어가의 파천이 정해지자, 피난가는 선조의 어거를 의주까지 호종한 공로로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로 승진하였다. 1604년(선조 37) 호성원종공신3등(扈聖原從功臣三等)에 책록되다.
이지방의 손자이고, 이광식의 아들이다. 이감의 친동생이었다. 이복남, 이인남의 할아버지였다. 임진왜란 당시 그의 두 아들 경헌과 승헌, 손자 인남은 탄금대 전투때 신립 휘하에서 싸우다 전사했고, 다른 손자 이덕남은 김화현감으로 있다가 올라오는 왜군과 교전하다 전사했다. 강원도 강릉부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