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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복(李元馥, 1946년 10월 3일 ~ )은 대한민국의 만화가, 삽화가, 대학 교수 출신의 대학 총장이었다. 본관은 한산(韓山)이다. 덕성여자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석좌교수 등을 역임했고, 2015년 3월 동 총장으로 취임하였다.[1] 2018년 8월 이후 현재는 덕성여대 총장 직을 사임한 상태이기도 하다.[2]
1946년 3남 4녀 중 막내로 충청남도 대전에서 출생하였으며 지난날 한때 충청남도 서천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다. 한국 전쟁으로 인해 집안이 가난해져 1955년 가족이 전부 서울로 올라왔다. 열 살 때 어머니가, 스무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1962년 경기고 1학년부터 아버지 친구인 조풍연 당시 소년한국일보 주간의 권유로 어린이신문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미군부대에서 돌아다니던 만화를 베껴 그리다가 스스로 창작한 만화도 연재했다. 서울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에 불합격하여 1965년 재수했다.(당시는 고등학교 동기 480명 중 360명이 서울대에 합격하던 시절이었으니 좀 이례적이다.) 재수 기간 중 연재는 쉬었으나 소설책과 외국 영화를 즐겨 보았다.[3][4]
1966년 재수끝에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 합격, 입학했으나 수업을 거의 듣지 않고 주로 만화를 그리거나 만화 원고료로 친구들과 명동에서 술을 마셨다. 1966년부터 1972년까지 6년간 재학했다. 결국 수석으로 졸업했다.
먼저 서독(독일)에서 유학 중이던 형의 도움으로 이원복 역시 1975년 독일 뮌스터대학 디자인학부[5] 학사 과정으로 유학을 갔다. 한국인들과 지내기보다 오히려 술집에서 아무리 독일인들과 집중적으로 대화하며 지내도 1-2년이 걸려야 통과하는 어학 코스를 순전히도 불과 6개월 만에 통과했다.
무종교자이기도 하지만 특정 종교 기관에서 준 장학금 수령과[6] 아울러 소년한국일보 연재, 일러스트 아르바이트 등을 각종 병행하여 충분한 돈을 모았고 낡은 차를 여러 차례 사 가며 여행도 많이 했다. 이 시기에 《먼나라 이웃나라》를 구상하였고, 81년부터 소년한국일보에 《먼나라 이웃나라》 유럽편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반응은 좋은 경우도 있었으나, 도대체 엘리트 코스까지 밟을대로 밟은 인재가 고작 만화나 그린다며 비난하는 이도 있었다. 만화를 그릴 땐 대부분의 시간을 자료 수집과 정리에 보냈다.
1981년부터 1984년까지 서독 뮌스터 응용학문대학교 대학원 상업디자인학과를 거쳐 동 대학원 서양미술사철학과에서 디플롬 디자이너(Dipl. Designer) 학위(1983)와 철학 석사 학위 등을 취득하였다.[3][4]
1998년부터 2000년까지 한국만화·애니메이션 학회장, 1999년부터 2001년까지 미국 캘리포니아 어바인 대학 객원 교수를 하였다.[3]
덕성여대에서는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예술대학장을 지내다가[4] 2012년 덕성여대 석좌교수, 2015년 2월 12일 10대 덕성여대 총장이 되었다.[8]
여유로운 성격이며 혼자서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은 잘 하지 않는 스타일이라고 한다.[4]
학습 만화를 주로 그리고 있으며, 삽화가로도 활동한다. 그의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는 2010년 기준 대한민국에서 누적 1500여만 부[3]가 팔렸다.
만화 내용 중 일부가 보수 편향적이라는 비판이 있다.[11]
그의 작품은 대부분 장편만화 ('먼나라 이웃나라' 이후는 논픽션) 형식에 해당하며, 사회 풍자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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