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 (1533년)
조선의 육군, 해군 군인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이용(李𢧳, 1533년 - 1591년 1월)은 조선 중기의 무신, 군인으로 본관은 우계(羽溪), 자는 언선(彦善), 처음 이름은 이규(李戣)이다. 병조참판 이광식(李光軾)의 아들이자 이감, 이전의 동생이며, 임진왜란 때의 전라병사 이복남(李福男)의 종조부이다. 중호(重湖) 윤탁연(尹卓然)은 그의 처남이면서, 동서간도 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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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 정보 자, 출생지 ...
![]() 李𢧳 | |
자 | 언선(彦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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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조선 강원도 강릉부 |
사망지 | 조선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현재의 서울특별시 서초구) |
본관 | 우계 |
복무 | 조선군 |
복무기간 | 1555년 ~ 1591년 |
근무 | 선전관, 전라좌도병영, 함경북도병영, 함경남도병영 |
최종계급 | 병마절도사 |
지휘 | 경상우수영, 전라좌수영, 함경북도병영, 함경남도병영 |
주요 참전 | 이탕개의 난 |
기타 이력 | 1555년(명종 11년) 무과 급제 기타 길주목사, 인천군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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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0년(명종 15년) 무과(武科)에 급제, 선전관, 형조좌랑을 거쳐 1560년 순회세자의 세자 책봉을 기념하는 별시 무과의 시험관이 되었다. 1567년 형조정랑, 1580년 길주목사 등을 거쳐 1581년 전라좌도수군절도사로 부임했다. 전라좌수사 재임 시, 전임자 서익(徐益)의 말을 듣고 이순신을 미워하였으나 함께 근무하다 이순신의 인품에 탄복하여 뜻을 바꾸었으며, 나중에는 이순신을 자신의 군관으로 추천하기도 했다. 함경북도병마사를 거쳐 도순찰사 재직 중 1583년 이탕개의 난이 발생, 방어사에 임명되었다가 급히 남병사로 바뀌어 교전에 참여하였다. 강원도 강릉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