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언군
조선 장조의 서자 (1754–1801)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은언군 이인(恩彦君 李䄄, 1754년 2월 1일 ~ 1801년 6월 30일)은 조선 후기의 왕족으로, 조선 영조의 손자이자 사도세자의 셋째아들로 정조의 이복동생이다.
간략 정보 은언군恩彦君, 휘 ...
은언군 恩彦君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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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장조의 왕자 | |
이름 | |
휘 | 이인(李䄄) |
별호 | 자 : 명흥(明興) |
시호 | 충정(忠貞) |
신상정보 | |
출생일 | 1754년 2월 1일(1754-02-01) (음력) |
사망일 | 1801년 6월 30일(1801-06-30)(47세) (음력) |
사망지 | 조선 경기도 강화 |
부친 | 사도세자 (장조) |
모친 | 양제 임씨 (숙빈 임씨) |
배우자 | 상산군부인 송씨, 전산군부인 이씨 |
자녀 | 상계군 이담, 이창덕, 이창순, 풍계군 이당, 전계대원군 이광, 이성득, 이철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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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의 아들 중 정조, 은전군과 함께 성년기까지 살아남았다. 철종의 할아버지로, 25대 왕 철종은 그의 서자 전계대원군의 서자이자 셋째 아들이었다. 본관은 전주, 자는 명흥(明興),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1771년 은언군과 은신군 형제의 빚을 홍봉한 등이 대신 갚아주자, 영조에 의해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1776년 석방되어 돌아와 원릉 수릉관, 종부시제조, 가덕대부 수릉관, 수덕대부 등을 역임하였다. 1778년(정조 2) 그의 아들 상계군이 홍국영에 의해 원빈 홍씨의 양자로 내정되었으나 1786년 상계군을 추대하려던 구선복(具善復)의 계획이 발각되면서 강화도로 유배되었다. 이후 노론벽파는 여러 번 그를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요구하였으나 정조는 상소를 물리치고 그를 보호하였다. 정조 사후 그를 죽이라는 상소는 계속되었다. 1801년 그의 정실 상산군부인 송씨와 며느리 상계군부인 신씨가 천주교를 신봉하는 사실을 알고 배소에서 탈출하려다가 붙잡혀 사사되었다.
철종 즉위 후 복권되고, 그와 상계군에 관련된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의 기사는 대량 세초되었다. 양주 신혈면 진관리(현. 서울시 은평구 진관외동) 북한산의 지산 이말산에 안장된 그의 분묘는 6.25 전쟁 중 유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