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르 수보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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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바실리예비치 수보로프(러시아어: Алекса́ндр Васи́льевич Суво́ров, 문화어: 알렉싼드르 쑤워로브, 1729년 11월 24일 - 1800년 5월 18일)는 러시아 제국의 군인이다. 근세기에서 가장 뛰어난 군사 지휘관 중 한 명[1][2]이자, 러시아에서 국민적 영웅으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그는 림니크 백작, 신성 로마 제국의 백작, 이탈리아 공작, 그리고 러시아 제국의 마지막 대원수였다.
알렉산드르 수보로프 Александр Суворов | |
출생일 | 1729년 11월 2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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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러시아 제국 모스크바 |
사망일 | 1800년 5월 18일(1800-05-18)(70세) |
사망지 | 러시아 제국 상트페테르부르크 |
복무 | 러시아 제국 신성 로마 제국 |
복무기간 | 1742년 - 1800년 |
근무 | 러시아 제국 육군 |
최종계급 | 대원수 |
주요 참전 | 7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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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훈 | 상트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훈장 상트 블라디미르 훈장 |
수보로프는 1729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그는 소년 시절 군사 역사를 공부했고, 17살에 러시아 제국 육군에 입대했다. 7년 전쟁 중인 1762년 전투에서의 승리 덕택에 그는 중령으로 진급했다. 바르 동맹과의 전쟁 당시 수보로프는 크라쿠프를 점령하고 폴란드 봉기군을 란츠코로나와 스토요비체에서 격퇴시켰고 이는 폴란드 분할의 시작을 알렸다. 그는 대령으로 진급한 뒤 러시아-튀르크 전쟁 (1768년-1774년)에 참전해 코츠루자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보병사령관으로 1786년 진급한 이후, 그는 러시아-튀르크 전쟁 (1787년–1792년)을 지휘했고 림니크 전투와 이즈마일 포위전에서 대승했다. 이러한 업적으로 인해 그는 러시아 제국과 신성 로마 제국 양국의 백작이 되었다. 1794년 수보로프는 마치에요비체 전투와 프라가 전투에서 폴란드 봉기군을 패배시킴으로써 코시치우슈코 봉기를 진압할 수 있었다.
예카테리나 2세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수보로프는 그녀의 아들이자 러시아의 왕위 계승권자인 파벨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1796년 예카테리나 2세의 사망 이후 전러시아의 황제로 파벨 1세가 즉위했으며, 파벨 1세는 수보로프가 자신의 명령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그를 해임했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 전쟁의 동맹군을 돕기 위해 그는 수보로프의 직위를 복귀시킬 수 밖에 없었으며, 파벨 1세는 그를 육군원수로 임명했다.[3] 오스트리아-러시아 연합군을 이끌게 된 수보로프는 밀라노를 점령한 이후 카사노 전투, 트레비아강 전투, 노비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축출했다.[4] 수보로프는 이러한 업적을 인정받아 이탈리아 공작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그가 지휘하는 러시아군이 연합군을 구원하러 갔다가 프랑스군에 의해 스위스 알프스산맥에 포위되었을 때, 그는 4배나 많은 프랑스군을 상대로 전략적 철수를 성공시켰다. 철수 과정에서 러시아군의 피해는 소소했으며, 그는 이 업적을 인정받아 제4대 대원수가 되었다. 그는 1800년 질병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사망했다.
수보로프는 러시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령관 중 한 명으로 고려된다.[5] 그는 러시아를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훈장과 칭호를 받았다. 수보로프는 승리의 과학이라는 그의 군사적 매뉴얼로도 유명하다.[6] 몇몇 사관학교와 기념물, 마을, 박물관과 훈장이 그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는 그가 지휘한 전투에서 패배한 적이 없었다.[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