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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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전투는 1683년 9월 11일과 9월 12일에 빈에서 발발했다.[9] 이 전투는 오스만 제국이 2달간 비엔나를 포위한 이후 발발한 전투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과 신성 로마 제국의 크리스트교 연합군이 오스만 제국의 침공 및 포위 부대와 맞서 싸웠다. 비엔나 교외의 칼헨부르크 언덕이 주요 전장이었다. 이 전투는 신성 로마 제국과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처음으로 오스만 제국에 맞서 협력한 전투였으며, 이것은 오스만 제국이 기독교 세계로 진격하는 것을 저지하였다는 점에서 역사적 전환점으로 여겨지기도 한다.[10]
빈 전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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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튀르크 전쟁, 폴란드-오스만 전쟁, 오스만-합스부르크 전쟁의 일부 | |||||||
1683년 빈 전투 묘사화 중 하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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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폴란드-리투아니아 왈라키아 공국 헝가리 왕국 베네치아 공화국 스웨덴 제국 | |||||||
지휘관 | |||||||
얀 3세 소비에스키 |
메흐메트 4세 | ||||||
병력 | |||||||
비엔나 방어 |
90,000[2]–140,000~170,000[5][6][7][8] |
1698년까지 이어진 전쟁의 여파로 오스만 제국은 레오폴트 1세에게 대부분의 헝가리 영토를 내주어야 했다.[10] 신성 로마 제국 및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연합 병력이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으며,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주력군은 폴란드 군임이 후에 밝혀졌다. (리투아니아 군의 행군이 지연되어 비엔나가 포위에서 풀린 후 이들이 도착했다.)[11]
비엔나 방어전은 에른스트 뤼디게르 그라프 폰 스트람베르크 장군이 이끌었으며, 그는 레오폴트 1세의 신하 중 한 명이었다. 전반적인 사령은 폴란드 왕인 얀 3세 소비에스키가 맡았으며, 그는 폴란드 군의 사령관도 겸임했다. 오스만 제국의 군대는 그랜드 비지어인 카라 무스타파 파샤가 총사령관이었다. 오스만 제국의 총 병력은 약 9만 명에서[2]– 30만 명[5][6][7][8]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었다. 1683년 7월 14일 오스만 제국군이 비엔나 포위를 시작했으며 오스만 제국군은 60개의 예니체리 부대와 7만 명의 감시군이 있었다.[12] 결정적인 전투는 1683년 9월 11일에 시작되었으며, 구원군 46,000명이 비엔나에 도착한 직후에 일어났다.
이 전투로 오스만 제국은 비엔나에 대한 점령을 포기해야 했으며, 로마 교황청을 비롯한 기독교 세력들은 오스만 제국의 침공으로부터 안전해질 수 있었다. 역사가들은 300년간의 신성 로마 제국 및 오스만 제국의 전투인 오스만-합스부르크 전쟁에서 이 전투가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이 전투 이후 16년 동안 오스트리아 대공국은 차근차근 헝가리와 트란실바니아를 탈환하여 완전히 지배하게 되었고 오스만 제국을 이 지역에서 완전히 몰아내게 되었다. 이 전투는 또한 역사상 가장 큰 기병전이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