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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 지씨(鳳山智氏)는 황해북도 봉산군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 지채문(智蔡文)이 1010년(현종 1) 중랑장(中郞將)으로서 거란족의 침입을 격퇴하고, 1026년(현종 17) 상장군(上將軍) 우복야(右僕射)에 올랐으며, 1032년(덕종 1) 일등공신(一等功臣)으로 추록되었다.
봉주 지씨(鳳州 智氏)의 시조 지채문(智蔡文)은 1010년(현종 1) 중랑장(中郎將)이 되어 거란이 침입하자 화주(和州)를 중심으로 동북 방면을 방비하다가 동북면도순검사 탁사정(卓思政)과 합세해 서경에 들어가 거란군을 격퇴하였다. 왕이 남으로 피란할 때 위기에 처한 왕의 신변을 여러 번 막아내며 왕을 나주까지 무사히 호종하여 거란군이 철수한 뒤 전공으로 전토 30결(結)을 하사받았다. 1016년(현종 7년) 우상시(右常侍)를 겸했고, 1026년(현종 17년)에 상장군(上將軍) 우복야(右僕射)에 올랐다. 1031년(덕종 즉위년) 현종 때 남행을 호종한 공으로 1등공신으로 추록되었다.[1]
“ | 고 상장군(上將軍)·좌복야(左僕射) 지채문은 선왕께서 남쪽으로 파천하셨을 때 홀로 충절을 온전히 지켜 으뜸가는 공훈을 세웠으니 이제 그 공훈을 조목별로 기록하여 후세 사람들에게 권장하노라. | ” |
봉산(鳳山)은 고구려 때 휴암군(鵂嵓郡) 또는 조파의(租坡衣)·휴류성(鵂鶹城) 등으로 불렸다. 신라 때에는 서암군(栖巖郡)으로 고쳤다. 고려 초에 봉주(鳳州)로 개칭하였고, 충렬왕 때에 봉양군(鳳陽郡)으로 고쳐 지사(知事)를 두었다가 후에 다시 봉주로 개칭하였다. 조선 개국 후 1413년(태종 13)에 봉산군으로 고쳤다. 1947년 군청 소재지인 사리원읍이 시로 승격되었고, 1952년과 1954년 지방 행정 체제를 개편할 때 남북으로 분리되면서 각각 은파군(銀波郡)과 봉산군으로 편성되어 황해북도에 속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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