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카타카 왕조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바카타카(산스크리트어: वाकाटक)는 3세기 중반 데칸에서 시작된 고대 인도 왕조이다. 이들의 국가는 북쪽의 말와와 구자라트의 남쪽 가장자리에서 남쪽의 퉁가바드라강까지, 서쪽의 아라비아해에서 동쪽의 차티스가르 가장자리까지 확장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들은 데칸에서 사타바하나의 가장 중요한 후계자였으며 북인도의 굽타와 동시대에 있었다.
간략 정보 바카타카 왕조, 수도 ...
바카타카 왕조 | ||||
---|---|---|---|---|
| ||||
350년경 바카타카 왕조의 최대강역.[2] | ||||
수도 | 밧사굴마 | |||
정치 | ||||
정치체제 | 전제군주제 | |||
마하라자 250년 ~ 270년 270년 ~ 330년 475년 ~ 500년 | 빈디야샤크티(초대) 프라바라세나 1세 하리셰나(말대) | |||
역사 | ||||
• 건국 | 250년 | |||
• 멸망 | 500년 | |||
지리 | ||||
위치 | 데칸고원 | |||
인문 | ||||
공통어 | 산스크리트어, 마하라슈트라어 | |||
종교 | ||||
종교 |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
닫기
빈디야샤크티(c. 250 – c. 270 CE)가 이 왕조의 개창자로 여겨진다. 영토 확장은 그의 아들 프라바라세나 1세 때부터 시작되었다. 일반적으로 바카타카 왕조는 프라바라세나 1세 이후 4개의 분파로 나뉘었다고 여겨진다. 알려진 분파는 프라바라푸라-난디바르다나 분파와 밧사굴마 분파이다. 굽타 황제 찬드라굽타 2세는 그의 딸을 바카타카 왕가와 결혼시켰고 이들의 지원으로 서기 4세기에 사카 사트라프에서 구자라트를 합병했다. 바카타카 권력은 데칸에서 찰루키아의 권력으로 이어졌다.[3] 바카타카는 예술, 건축 및 문학의 후원자였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들은 공공 사업을 주도했고 그들의 기념물은 눈에 보이는 유산이다. 아잔타 석굴(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바위를 깎아 만든 불교 비하라와 차티야는 바카타카 황제 하리셰나의 후원 아래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