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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다라(산스크리트어: गान्धरः, 힌디어: गन्धार, 우르두어: گندھارا)는 오늘날 파키스탄 북서부와 아프가니스탄 북동부를 중심으로 존재했던 고대 인도아리아인 문명이다.[1][2][3][4] 간다라 지역의 핵심은 동쪽 멀리 포토하르 고원까지 뻗어 있는 페샤와르 계곡과 스와트 계곡이었지만, 간다라의 문화적 영향력은 서쪽으로 아프가니스탄의 카불 계곡까지, 북쪽으로는 카라코람산맥까지 확장되었다.[5][6] 이 지역은 많은 중국인 불교 순례자들이 이 지역을 방문하면서 중앙아시아와 동아시아로 불교를 전파하는 중심지였다.[7]
카로슈티 문자로 표기된 인도아리아어인 간다라어는 불교를 통해 이 지역의 링구아 프랑카 역할을 했으며, 간다라 불경을 기반으로 중국까지 퍼져나갔다.[8] 이 지역은 독특한 간다란 양식의 예술로 유명한 쿠샨 제국 하에서 1세기부터 5세기까지 절정을 이루었고, 팍스 쿠샤나로 알려진 시대를 열었다.
간다라의 역사적 이야기는 독특한 매장 관행을 특징으로 하는 간다라 무덤 문화에서 시작된다. 그 후 베다 시대에 간다라는 십육대국 중 하나로 성장하였다. 기원전 6세기에 푸쿠사티 왕이 간다라 왕국을 통치하면서 아반티를 정복한 것으로 유명해졌고, 비록 간다라는 결국 굴복했지만, 추정상 아케메네스 제국의 팽창에 대한 방어벽 역할을 했다.[9][10] 간다라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전쟁 동안 두 개로 나뉘었다. 간다라는 둘로 나뉘었다. 스와트 계곡을 중심으로 아슈바카족으로 대표되는 서부 간다라 부족은 팽창의 움직임에 저항했고,[11] 탁샤실라의 왕인 암비는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동맹을 맺었다.[12]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죽음 이후, 역시 간다라 출신이었던 그의 지도자 차나키야의 도움으로 탁샤실라에서 교육을 받은 찬드라굽타 마우리아가 권력을 잡으면서 간다라는 마우리아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13] 그 후 간다라는 인도-그리스, 인도-스키타이, 그리고 인도-파르티아에 의한 연속적인 합병을 목격했다. 그러나 이 시기 동안, 아프라차라자라고 불리는 간다라 지역의 왕국은 쿠샨 제국이 등장할 때까지 통치를 유지했다. 쿠샨 시대에는 간다라의 문화적·정치적 영향력이 절정에 달했으나, 이후 후나족의 침략으로 파괴되기도 했다.[14] 그러나 튀르크 샤히와 힌두 샤히의 지배로 이 지역은 다시 부흥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침략으로 인하여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받은 미술로 그리스-불교미술 혹은 로마-불교미술이라고도 칭하였다. 이 미술은 대월지족이 세운 쿠샨 왕조에서 카니슈카 왕의 통치 아래서 가장 번성하였다.
간다라 미술은 인물의 생김새가 사실적이고 개성적이며 매우 자연스럽고, 감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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