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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기 인도의 왕국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팔라바 왕조는 서기 275년부터 897년까지 톤다이만달람이라고도 알려진 데칸의 상당 부분을 지배했던 왕조이다. 팔라바는 특히 남인도의 역사와 유산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팔라바 왕조는 사타바하나 제국이 멸망하기 전까지 봉건 세력으로 활동했다.[1][2]
팔라바 왕조는 마헨드라바르만 1세(600–630 CE)와 나라심하바르만 1세(630–668 CE)의 통치 기간 동안 주요 남인도 세력이 되었고, 9세기 말까지 약 600년 동안 텔루구 남부 지역과 타밀 지역 북부 지역을 지배했다. 그들의 통치 기간 동안, 그들은 북쪽으로는 찰루키아와 남쪽으로는 촐라와 판디아 같은 타밀 왕국들과 지속적인 갈등을 겪었다. 팔라바 왕조는 마침내 서기 9세기에 촐라 통치자 아디티야 1세에게 패배했다.[3]
팔라바인들은 힌두교의 비슈누 사원 건축을 후원한 것으로 가장 유명한데, 가장 좋은 예는 마말라푸람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쇼르 사원이다. 칸치푸람은 팔라바 왕국의 수도의 역할을 했다. 그 왕조는 웅장한 조각들과 사원들을 남겼고, 일부 학자들은 고대 힌두 논문 마나사라가 영감을 주었다고 믿는 중세 남인도 건축의 기초를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4] 그들은 궁극적으로 팔라바 문자를 개발했다. 이 문자는 결국 크메르 문자를 포함한 다른 동남아시아 문자를 낳았다. 당나라의 구법승 현장은 팔라바 시대 동안 칸치푸람을 방문했고 그들의 선량한 통치를 칭찬했다.
팔라바국을 건국한 팔라바인들의 정체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데, 파르티아인들의 후예라는 설,[5] 사타바하나를 건국한 안드라인들과 같은 민족이라는 설,[6][7] 타밀인 계통이라는 설 등 여러 가지 설들이 있지만 아직 정설로 굳혀진 것은 없는 실정이다.
팔라바국은 기원후 3세기 중엽 심하바르만 1세(275년 ~ 300년)에 의해 건국되었다. 이후 6세기 후반 심하비슈누 왕(570년 ~ 600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흥기하기 시작하였다. 심하비슈누는 팔라바국의 본격적인 기반을 이룬 왕으로서, 정통 힌두교도였던 그는 힌두교를 거부한 칼라브라를 포함해 다수의 적들을 무찌르고 촐라국을 정복하면서 영토를 넓혀 나갔다. 그 결과 팔라바국의 영토는 카베리강과 크리슈나강 사이의 지역으로 확장되었다. 심하비슈누의 후계자 마헨드라바르만 1세(600년 ~ 630년)의 치세부터는 사타바하나 이후 데칸 지역을 지배하던 국가인 찰루키아와의 대를 이은 전쟁이 시작되었다. 시인이며 음악가이기도 했던 마헨드라바르만은 학문과 예술을 보호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트리치노폴리, 발람, 마헨드라바디 등에 시바와 비슈누를 위한 힌두교 사원들을 세우기도 하였다. 마헨드라바르만의 후계자는 나라심하바르만 1세(630년 ~ 668년)로, 이 기간 동안 팔라바 왕국의 주요 항구였던 마하발리푸람은 중요한 교역 중심지가 되어 이곳으로부터 팔라바의 문화적 영향이 동님아시아로 확산되었다. 이 시기에는 팔라바 시대 건축물의 최고작으로 평가받는 라트 사원이 마하발리푸람에 세워졌다. 난디바르만 2세 이후 팔라바국은 계속해서 이웃 나라들의 공격을 받으면서 점차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880년 아파라지타 왕 때에는 촐라국의 아디트야 1세의 도움으로 간신히 판디아국의 침략을 물리치기도 했지만, 결국 893년 촐라국에 흡수되면서 팔라바국은 멸망하였다.
팔라바국은 굽타 제국과 유사한 행정조직을 지니고 있었다. 군주는 절대적인 권력을 지녔지만 전제군주처럼 무제한으로 권력을 휘두르진 않고 재상들의 도움을 받으며 법에 따라 통치를 시행하였다.
팔라바국에서는 팔라바 문자라고 하는 고유 문자를 사용했는데, 이 문자들이 후에 동남아시아에 전파되며 크메르 문자,[8] 자와 문자,[9] 라오 문자,[10] 타이 문자,[11] 버마 문자[12] 등 오늘날 동남아시아에서 사용되는 문자들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팔라바의 건축 양식은 대개 네 단계로 구별된다. 첫번째는 600년 ~ 625년까지의 마헨드라 양식, 두번째는 625년 ~ 647년까지 유행한 마말라 양식으로 마말라푸람(마하발리푸람)에 있는 라트 사원이 대표적인 건물이다. 세번째는 8세기에 유행한 라자싱하 양식으로, 이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칸치에 있는 카일라샤나타 시바 사원이 있다. 마지막 시기는 팔라바의 마지막 왕 아파라지타 시대(880년 ~ 897년)에 유행한 아파라지타 양식으로, 바하사라 사원이 이 양식으로 지어진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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