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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태종(天台宗, Tiantai · Tendai · Lotus School)은 《법화경》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불교 종파이다.[1] 중국의 천태종 · 한국의 천태종 · 일본의 천태종이 있다.
중국에서 천태학은 북제의 혜문과 혜사(慧思, 515-577[2])에 의해 연구되었는데, 종파로서의 천태종은 천태지자대사(天台智者大師) 지의에 의해 수나라 시대인 594년[3][4]에 개창되었다.[1] 중국의 천태종은 중국 불교의 대표적인 종파들 중 하나이다.[1] 한국에서 천태학은 삼국 시대인 6세기부터 연구되었는데,[5] 종파로서의 한국의 천태종, 즉 해동 천태종은 대각국사 의천에 의해 고려 숙종 2년(1097년)에 개창되었다.[6][7] 일본의 천태종은 전교대사(傳敎大師) 사이초[8]에 의해 805년에 개창되었다.[9]
천태종의 교학을 천태교학(天台敎學)이라고 하며, 천태교학은 《법화경》을 근본 경전으로 하여 천태지자대사 지의가 대성한 중국 불교의 대표적인 교학 중 하나이다.[10] 천태교학은 실상론(實相論)이라고도 불리는데, 주요 교의 및 수행 체계로는 삼제원융(三諦圓融), 일념삼천(一念三千), 사종삼매(四種三昧), 일심삼관(一心三觀), 교관이문(敎觀二門)이 있다.[10]
오시팔교(五時八敎)는 천태지자대사 지의가 주장한 천태종의 교판으로, 오시팔교 교판은 한 종파로서의 천태종을 확립하는 기초가 되었다.[1][11]
천태종은 인도의 용수(龍樹, Nāgārjuna, 150?-250?)로부터 발단되어, 북제의 혜문(慧文, ?-?)과 혜사(慧思, 515-577[2])를 거쳐 수나라(581-618)의 천태대사 지의(智顗, 538-597)로 계보가 이어진 것으로 본다.[1]
혜문은 용수의 저작인 《대지도론(大智度論)》 제27권에서 일체지(一切智) · 도종지(道種智) · 일체종지(一切種智)의 삼지(三智: 세 가지 지혜)를 한 마음 가운데서 얻는다는 "삼지일심중득(三智一心中得)"의 일심삼지(一心三智) 또는 일심삼관(一心三觀)[12]의 묘리를 깨우치고 또한 용수의 《중론(中論)》 제24장 〈관사제품(觀四諦品)〉에 나오는 아래에 인용한 "인연소생법(因緣所生法: 법은 인과 연에 의해 생겨난다)"의 게송 등을 보고 공제(空諦) · 가제(假諦) · 중제(中諦)의 삼제(三諦)의 이치를 깊이 깨우쳤다.[13] 혜문은 이러한 깨우침을 혜사에게 전함으로써 천태종이 일어날 기초를 열었다.[13]
諸法有定性。則無因果等諸事。如偈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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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법이 고정된 성품을 지니고 있다면 곧 원인과 결과 등의 모든 일이 없어질 것이다.
때문에 나는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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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사는 15세에 출가하여 《법화경》만을 전공하고 혜문의 가르침을 받아 일심으로 정진하여 법화삼매(法華三昧)를 얻었다.[2]
지의는 혜사의 문중에 들어가 지관법문(止觀法門) · 삼론계(三論界)의 교리와 선관(禪觀) · 달마선(達磨禪) 등 소위 북방계의 교리를 이어받고 법화삼매에 의하여 대오(大悟)하였다.[4]
지의는 《법화경》을 최고위로 하는 5시8교(五時八敎)의 교판을 세움으로써 천태종이 중국 불교의 한 종파로 성립될 수 있는 기반을 확립하였다.[1] 지의는 공제(空諦) · 가제(假諦) · 중제(中諦)의 삼제(三諦)가 서로 떨어지지 않고 무애자재하다는 삼제원융(三諦圓融)이라는 심원한 교리체계를 세움과 동시에, 상좌삼매(常坐三昧) · 상행삼매(常行三昧) · 반행반좌삼매(伴行半坐三昧) · 비행비좌삼매(非行非坐三昧)의 사종삼매(四種三昧)[14]와 삼제원융(三諦圓融)을 관하여 3관상(觀相)이 일심(一心) 중에 성립함을 관찰하는 일심삼관(一心三觀)[15]의 지관(止觀)을 수행함으로써 성불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이론과 실천을 교관2문(敎觀二門)으로 정리하여 천태교학(天台敎學)을 대성하였다.[1][16]
지의(538-597)의 천태교학은 지의의 제자인 관정(灌頂: 561-632)에 의해 기록되어, 천태3대부(天台三大部)라 불리는 《법화현의(法華玄義)》·《법화문구(法華文句)》 · 《마하지관(摩訶止觀)》과 다른 기타 논서들이 편찬되었다.[1][17] 지의 이후로, 천태교학은 지위(智威: ?-680[18]) · 혜위(慧威: 634-713, 천태종 제7조[19][20]) · 현랑(玄朗: 673-754[21]) · 담연(湛然: 711-782[22])에게 계승되었다.[1] 담연은 천태3대부에 주석을 달고 한때 천태종을 부흥시켰다.[1]
담연(湛然: 711-782)에 의해 일시적으로 천태종이 부흥하기는 하였으나, 당나라 무종(840-846년) 때의 회창의 폐불이라고 불리는 극심한 불교 탄압과 당 말기와 오대 십국 시대의 전란을 거치면서 천태종의 많은 논서들이 상실되었다.[1] 후에 송나라(960-1279) 시대 때 천태종(조송천태 · 趙宋天台)의 부흥이 있었으나 차차 쇠퇴하였다.[1]
《법화경》을 소의경전으로 하고 선정(禪定)과 지혜(智慧)의 조화를 근본 교의로 하는 삼국 시대와 남북국 시대의 천태학은 고려 시대의 승려인 대각국사 의천에 의해 한국의 천태종, 즉 해동 천태종으로 성립되었다.[23]
의천에 의해 종파로서의 천태종이 성립되기 이전부터, 천태학은 백제의 현광(玄光: 6세기), 신라의 법융(法融), 고구려의 파야(波若: ?-613), 고려의 제관(諦觀: ?-970?) 등에 의해 연구되었다.[5] 의천은 개성의 국청사(國淸寺)에 주석하면서 고려 숙종(재위 1095-1105) 2년(1097)에 해동 천태종을 창시하였다.[6][7]
의천은 화엄종 출신이었으나 천태종의 소의경전인 《법화경》과 천태종의 교학인 사교삼관(四敎三觀)을 내세웠다.[24] 의천의 제자 중 원묘(圓妙)국사가 백련결사(白蓮結社)를 구성하여 적극적인 교단으로 발전하였다.[24] 의천의 문하에 덕린(德麟) · 익종(翼宗) · 경란(景蘭) · 연묘(連妙)가 있었다.[24]
천태종의 총본사는 국청사(國淸寺)였다.[24] 남숭산 선봉사(僊鳳寺) · 북숭산 신광사(神光寺) 등의 6본사가 있었는데 이 사찰들은 천태 6파의 근본도량이었다.[24]
해동 천태종의 특징은 천태종(天台宗) · 조계종(曹溪宗) · 화엄종(華嚴宗) · 정토종(淨土宗)의 교의와 실천 체계가 혼융되어 있다는 점이다.[24] 의천은 중국 송나라에 가서 천태종의 종지를 배우고 돌아와 1097년에 해동 천태종을 개창했는데, 중국에서는 교종(敎宗)의 한 종파였던 천태종이 한국에서는 선종(禪宗)에 가까운 불교로 성립되었다는 점이 또한 해동 천태종의 특징이다.[25]
천태종 성립 이후, 당시 선종의 구산선문(九山禪門)은 조계종(曹溪宗)이라는 이름으로 총칭되면서 천태종과 조계종은 선종 계열의 양종(兩宗)으로 불리게 되었다.[23] 이에 따라 5교 9산(五敎九山)은 5교 양종(五敎兩宗)이 되었다.[23] 천태종의 성립으로 선종 9산, 즉 조계종은 큰 타격을 입어 겨우 종세(宗勢)를 유지했다.[23]
의천은 교(敎)만 닦고 선(禪)을 없애거나 선만 주장하고 교를 버리는 것은 완전한 불교가 못되고 교와 선을 함께 닦아야 한다는 교관겸수(敎觀兼修)를 주장하였다.[26]
고려에서 선종은 태조의 옹호를 받아 그 세력이 당당하였다.[26] 그러나 현종(재위 1010-1031) 이후에 이르러서는 화엄종(華嚴宗) · 법상종(法相宗) 등의 교종이 세력을 얻어 선종에 대항하였으며, 교종과 선종은 서로의 장점을 주장하고 상대를 배척하기에 이르렀다.[26] 이때 의천은 천태종과 화엄종 양종을 통화(統和)한 종합적 불교관을 세워 교(敎)와 관(觀)을 겸수하는 것이 불교 수행의 바른 길이라고 주장하였다.[26] 의천은 교만 닦고 선을 없애거나 선만 주장하고 교를 버리는 것은 완전한 불교가 못된다고 결론을 내렸다.[26] 이리하여 선 · 교가 자아(自我)만 주장하는 폐단을 타파하고 모든 불교가 대동단결하는 이론적 체계를 수립하였는데 이 체계가 교관겸수 사상이다.[26] 교관겸수 사상은 조계종의 창시자인 지눌(1158-1210)의 정혜쌍수(定慧雙修) 사상과 함께 한국 불교의 전통이 되었다.[26]
의천이 주장한 교관겸수의 "교관"과 천태교학의 교관이문(敎觀二門)의 "교관"은 말은 같지만 그 뜻은 다르다. 교관겸수의 교(敎)는 천태종의 교학과 더불어 화엄종 · 법상종 등의 교종의 가르침 전반을 의미하고, 교관이문의 교(敎)는 삼제원융 · 일념삼천 · 사종삼매 등과 같은 천태교학의 특징적인 가르침을 의미한다. 교관겸수의 관(觀)은 선종9산의 선과 천태종의 지관 수행법인 일심삼관을 포괄하는 의미의 수행이고, 교관이문의 관(觀)은 천태교학의 일심삼관의 수행이다.
천태종은 고려 시대(918-1392) 말에 천태법사종(天台法事宗)과 천태소자종(天台疏字宗)으로 나뉘었다.[23] 그 후 조선 시대(1392-1897)에서는 억불정책에 따라 천태종은 폐합의 과정을 겪었다. 조선 태종 7년(1407년)에 두 종파는 다시 천태종으로 통합되었다.[23] 그 후 다시 세종 6년(1424년)에 불교 종단 전체가 선교 양종(禪敎兩宗)으로 폐합될 때, 천태종은 조계종(曹溪宗) · 총남종(摠南宗)과 함께 선종(禪宗)으로 폐합되었다.[23]
현대 한국의 천태종인 대한불교 천태종은 세종 6년의 종파 폐합에 의해 없어진 해동 천태종을 대한민국의 강원도 삼척지방에서 주술을 배우던 박종각이라는 사람이 스스로 원각대조사(圓覺大祖師) 상월(上月: 1911-1974)이라고 개명하여 1966년에 만들었다.[27] 대한불교 천태종은 1967년 1월 24일에 정부에 등록하면서 공식적으로 발족되었다.[27] 대한불교 천태종에서는 3명의 종조를 모시는데, 중국의 승려 천태지자대사(天台智者大師) 지의(智顗: 538-597)를 천태종의 개조로 하고, 고려의 승려 대각국사 의천(義天: 1055-1101)을 개창조로 하고, 박종각 원각대조사 상월(上月: 1911-1974)을 중창조로 한다.[28] 2003년 충청남도 논산시에 금강대학교를 설립하였다. 현재 대한불교 천태종의 총본산 사찰은 충청북도 단양군에 있는 구인사(救仁寺)이다. 종무행정기관인 총무원을 2018년까지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위치한 광수사로 이전할 예정이라고 발표되었다.[29]
일본 천태종의 창시자 사이초(最澄, 767-822[8])는 12세에 국분사(國分寺)에 들어가 행표(行表)를 스승으로 모시고 유식의 교의를 배웠다.[9] 14세에 출가하여 18세에 행표에게서 구족계를 받았다.[9] 후에 사이초는 히에이산에 들어가 12년간 수행하면서 근본중당(根本中堂)을 건립하고, 574년(천평승보 6)에 중국의 승려 감진(鑒眞)이 일본에 올 때 들여왔던[30] 중국 천태종의 서적들과 《대승기신론》·《화엄오교장(華嚴五敎章)》 등을 학습하였으며, 법화강경회(法華講經會) 등을 개최하였다.[9]
804년에 사이초는 구카이(空海, 774-835)와 함께 당나라로 들어갔다.[9] 805년 9월에 그는 9개월 동안의 구법(求法) 유학을 마치고 230부 460권의 천태종과 밀교의 경전을 가지고 귀국하였다.[9] 그리고 그는 정식으로 일본 천태종을 개창하였다.[9]
818년에 그는 《산가학생식(山家學生式)》을 써서 조정에 상주(上奏)하고, 히에이산에 대승 교단을 설립할 것을 요구하였으며, 자신이 19세 때 동대사에서 받았던 소승 252계를 폐기한다고 선포하였다.[9] 이것은 나라 시대의 육종(六宗)과 결별한다는 의미였다.[9] 820년 《현계론(顯戒論)》을 저술하여 천태산 원돈계(圓頓戒)의 종지를 설명하였다. 사이초는 822년 히에이산에서 입적하였다.[9] 후에 전교대사(傳敎大師)란 시호를 받았는데, 이것은 일본에서 대사 시호를 하사한 최초의 사례였다.[9]
일본의 천태종은 한국이나 중국의 천태종과는 다르다.[9] 일본의 천태종은 중국 천태종에다 밀종과 선종 및 보살원계(菩薩圓戒)를 부가하여 형성된 종파이다.[9] 나라 시대(710-794)의 불교와 달리 헤이안 시대(794-1185)와 그 이후의 종파는 단순한 중국 불교가 아니라, 다원적인 일본 불교로 발전하였다.[9]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천태종은 여전히 천태종이라 불렸다.[9]
일본의 천태종은 중국 천태종의 개조 지의의 천태법계를 전파하고 일념삼천(一念三天)과 삼제원융(三諦圓融) 등의 이론을 내세웠다.[9] 그리고 이 기초 위에서 원교(천태) · 선 · 원계(대승계) · 밀교의 4교를 합일하는 사종겸학(四宗兼學)을 주장하였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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