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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禪)이란, 중국 대륙에서 5세기에 발전하기 시작한 대승불교의 한 조류이다. 선의 조류는 중국 대륙에서 한 종파로 성립되어 한국과 일본 등지로 전파되었는데, 이 계통의 여러 분파를 선종(禪宗)이라고 통칭하고 이 계통의 불교를 선불교(禪佛敎)라고 한다. 선종(선불교)은 도교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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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禪)이라는 낱말은 산스크리트어의 디야나(ध्यान)를 중국 대륙에서 음역한 선나(禪那)의 준말이다. 디야나는 대체로 정려(靜慮: 고요히 하는 생각) · 내관(內觀: 내부상으로 찰관) · 내성(內省: 내부상 성찰) · 침잠(沈潛: 내면으로 깊숙히 몰입)의 뜻이 있다. 이런 뜻을 좇아 한역하여 선을 정(定) · 정려(靜慮) · 기악(棄惡)이나 사유수(思惟修)라고도 한다.[1] 또한 음을 좇아 한역한 선(禪)과 뜻을 좇아 한역한 낱말인 정(定)을 합하여 선정(禪定)이라고도 한다.[1] 선은 근본불교의 수행 체계인 팔정도 중 정정(正定)에 해당한다.[2] 대승불교에서 선은 보살행의 실천 덕목인 육바라밀 중 선정 바라밀(禪定波羅蜜)에 해당하며, 선정 바라밀은 반야 바라밀(般若波羅蜜)이 발현되게 하는 직접적인 수단 또는 원인이다.[3][4][5]
이 문서는 중국 대륙에서 5세기부터 발전한 대승불교의 한 흐름으로서 불교의 한 종파로 성립된 선종(禪宗)을 주로 다룬다.
선종의 최대 목적이자 핵심인 교의는 견성성불(見性成佛)이다. 즉 선종은 모든 인간이 내면에 본래 불타("본성 · 本性 · 불성 · 佛性")가 있다고 믿고 수행을 이용해 자기 내면에 있는 본래 불타를 발견하여("견성 · 見性") 열반에 도달(성불)하는 것을 최대의 목적으로 한다.
수행 면에서는 좌선이나 참선을 중요한 수행 방법, 즉 선종의 특징은 정진(精進: 힘써 전진)을 수단으로 삼는다.
선종의 교의 성격을 띠며 실천하는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는 문구는 "이심전심 · 견성성불 · 불립문자 · 교외별전"이다.[6] 이런 문구는 선종이 교종과 판이한 독자성이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6]
선종은 정려(靜慮) · 좌선(坐禪)으로 내관(內觀) · 내성(內省)하여 불성(佛性)을 찾고 설교 · 문자를 떠나 즉시 불타의 마음(佛心)을 중생에게 전하는 종파, 즉 불심종(佛心宗)이다.[6][7]
선종의 전통을 보면, 선종의 기원은 고타마 붓다가 영산회(靈山會)에서 말없이 꽃을 꺾어 보였을 때 제자들 중 오직 마하가섭만이 그 뜻을 이심전심으로 이해하고 미소지었다는 염화미소(拈華微笑)나 염화시중(拈華示衆)의 고사에서 찾는다.[7][8] 영가현각(永嘉玄覺: 647~713, 제6조 혜능의 제자[9])의 《증도가(證道歌)》 에서 보듯이, 선종의 전통에서는 마하가섭을 선법(禪法)을 받아 이어준 제1조로서 숭배한다.[10]
후한 시대(25~220)에 인도의 좌선(坐禪) 방법을 설법한 선경(禪經)이 번역되었으나 선종으로서 발전하지는 못하였다.[11]
그 뒤 470년경[11] 이거나 520년[7] 에 보리달마(?~528[12])가 남인도에서 중국 대륙 남방으로 가서 전파한 선(禪)이 선불교에 직결되는 시초이다.[7] 달마는 달마선(達摩禪), 즉 달마 계통의 선법(禪法)의 전통의 제1대 조사로 불린다. 흔히 선종이라고 하면, 달마선을 뜻하므로 달마는 선종의 제1조이다. 《증도가(證道歌)》에 나타났듯이, 선종[달마선] 전통을 보면, 보리달마는 마하가섭에서 전승한 선종의 제28조이고 중국 대륙 선종의 제1조이다.[10]
보리달마의 선법(禪法)은 제2조 혜가(487~593[13])를 거쳐 제3조 승찬(僧璨: ?~606[14])으로 전하여졌는데 혜가와 승찬은 북주파불(北周破佛: 574~577의 북주 무제에 의한 불교 탄압)을 피해 서주(舒州)의 완공산(完公山)에 숨어 지냈다.[11][15] 이후 선법(禪法)은 제3조 승찬으로부터 제4조 도신(道信: 580~651[16])으로 전해졌는데 기주(蘄州) 황매산(黃梅山)에서 많은 문하생을 거느리고 선법을 설법한 제4조 도신과 제5조 홍인(弘忍: 601~674[17])의 동산법문(東山法門)에서 다수의 탁월한 선자(禪者)들이 배출되어 선종으로서 기초가 확립되었다.[11]
제5조 홍인을 대표할 정도로 전형이 될 만한 특징이 있는 제자로서 신수(神秀: ?~706[18])와 혜능(惠能: 638~713[19])이 있었는데 이 사람들은 선종을 크게 발전시켰다.[7] 신수는 북종(北宗)이라고 불리는 북종선(北宗禪)을 개종했고 홍인의 뒤를 이어 선종의 제6조가 된 혜능(惠能)은 남종(南宗)이라고도 불리는 남종선(南宗禪)을 개종했다.[15]
일변 보리달마(?~528)에서 제5조 홍인(601~674)을 거쳐 신수(?~706)의 북종선과 제6조 혜능(638~713)의 남종선으로 이어지는 달마선 계통과 별도로, 우두(牛頭) 법융(法融: 594~658)은 삼론(三論) 계통의 우두선(牛頭禪)을 개종했는데[15][20] 하루는 선종 제4조 도신(道信: 580~651)이 법융에게 갔는데 법융에게서 교시(敎示)받고서 심요(心要)를 깨달았다고 한다.[21]
남종선 · 북종선 · 우두선 계통의 많은 선자(禪者)가 활약하여 선종 전체는 사상과 실천 모두 크게 발전하였다.[15]
중국 대륙에서, 우두선에서는 법융의 뒤를 이어 지암(智巖) · 혜방(慧方) · 법지(法持) · 지위(智威) · 혜충(慧忠) · 현소(玄素) · 도흠(道欽) · 도림(道林) 등 고승이 많이 배출됐다.[20] 이들은 대체로 우두산에서 법융의 종풍(宗風)을 크게 떨쳤다.[20] 그러나 우두선의 선법(禪法)은 계속 이어지지 못하고 당(618~907) 초기에 끊어졌다.[20]
남종선과 북종선은 그 분열은 당 초기에 일어났는데 제6조 신수(神秀: ?~706)의 북종선은 점오(漸悟)를 표방하고 제6조 혜능(慧能: 638~713)의 남종선은 돈오(頓悟)를 표방하였다.[22] 신수는 당의 수도였던 장안과 당 시대 동방의 수도라는 의미로 동도(東都)라고 불린 낙양 양경(兩京)을 중심으로 중국 대륙 북부에 북종선을 보급하고 혜능은 장강 이남 지역인 강남(江南)에 남종선을 선양(宣揚)했다.[11] 초기에는 북종선이 성했으나 후에는 남종선이 유력해져 남종선 계통이 중국 대륙선(中國禪)의 주류를 차지하였다.[15]
북종선은 빨리 쇠퇴했지만,[11] 남종선의 혜능(慧能: 638~713)의 문하에는 회양(懷讓: 677~744[23]) · 행사(行思: ?~740[24]) · 신회(神會: 685~760[25]) 등이 배출되어 후난 성과 장시 성을 중심으로 교세를 확장하였다.[22]
남종선의 회양(懷讓: 677~744)의 계통에 백장회해(百丈懷海: 749~814[26])가 선원에어서 집단생활 규범이 된 후대에 《백장청규(百丈淸規)》라고 불린, 청규(淸規)를 만들었다.[11][22] 그리고 이 계통에서 임제의현(臨濟義玄: ?~867[27])을 시조로 하는 임제종(臨濟宗)과 위산영우(潙山靈祐: 771~853[28])와 앙산혜적(仰山慧寂: 815~891[29])의 두 선승을 시조로 하는 위앙종(潙仰宗)이 성립했다.[11]
남종선의 행사(行思: ?~740)의 계통에서는 동산양개(洞山良价: 807~869[30])와 조산본적(曹山本寂: 839~901[31])의 두 선승을 시조로 하는 조동종(曹洞宗), 운문문언(雲門文偃: ?~949[32])을 시조로 하는 운문종(雲門宗), 그리고 법안문익(法眼文益: 885~958[33])을 시조로 하는 법안종(法眼宗)이 성립되었다.[11]
이로써 5대에 걸쳐서 위앙종(潙仰宗) · 임제종(臨濟宗) · 조동종(曹洞宗) · 운문종(雲門宗) · 법안종(法眼宗)의 5가(五家) 또는 선가 5종(禪家五宗)이 성립되었다.[22]
후에 임제종에서 갈라진 황룡혜남(黃龍慧南: 1002~1069[34])의 황룡파(黃龍派)와 양기방회(楊岐方會)의 양기파(楊岐派: 996~1046[35])의 두 파를 더하여 오가칠종(五家七宗)이라고 부르게 되었다.[11]
오가칠종으로 분화 · 발전한 남종선은 정토교(淨土敎)와 함께 송나라(960~1279) 시대 이후 불교의 주류를 이루었다.[22] 특히 임제종이 중심이 되었으며 이윽고 선정쌍수(禪淨雙修: 선종과 정토교을 함께 수행하다가 참선과 염불 수행을 함께하다)의 길로 들어섰다.[11]
남송(南宋: 1127~1279) 초기에 모두 남종선에 속하는 임제종(臨濟宗)과 조동종(曹洞宗)에서 각각 간화선(看話禪)과 묵조선(默照禪)이 성립되었다. 간화선은 화두(話頭)를 이용하여 득도하려는 선풍(禪風)으로서 임제종의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가 주창하였다.[36] 묵조선은 망상과 잡념을 없애고 고요히 좌정하여 득도하려는 선풍(禪風)으로서 조동종의 굉지정각(宏智正覺: 1091~1157[37])이 주창하였다.[38]
선종의 한국 전래는, 당나라의 서당 지장(西堂 知藏)에게서 법을 받아 784년(선덕왕 5년)에 신라로 귀국한 도의를 시조로 하는 가지산문(迦智山門)에서 시작되었다.[7] 이후 남북국시대 말기와 고려 초기에 9산문이 성립되어 한창 번성했으나 점차 쇠퇴하였다.
고려 시대(918~1392)의 명종 때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이 조계산에 수선사(修禪寺)를 세우고 정혜결사(定慧結社)를 설립했으나 그 뒤부터 승행(僧行)이 타락하면서 차차 쇠퇴하기 시작하였다.[7] 고려 말기에 이르러 태고 보우(1301~1382)는 중국 호주 하무산(霞霧山)의 석옥 청공(石屋淸珙)의 법을 받아 왔고 나옹 혜근(1320~1376)은 강서(江西)의 평산 처림(平山處林)의 법을 받아 와서 두 파로 갈리었다.[7] 그러나 나옹의 법계(法系)는 얼마 안 되어 없어지고 태고의 법계만 지금까지 전래한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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