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의 역사
생물학에 관한 역사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생물학의 역사(영어: history of biology) 또는 생물학사(生物學史)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살아있는 것들의 연구에 대해 기술한다. 단일 학문으로서의 생물학은 19세기에 정립되었지만, 그 기원은 고대 인도의 아유르베다, 고대 이집트의 의학,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아리스토텔레스와 갈레노스의 연구와 같은 고대의 의학과 자연과학의 전통에서 찾을 수 있다. 이와 같은 고대의 연구는 중세의 이븐 시나와 같은 무슬림 의사와 학사들에 의해 보다 더 발전하였다. 유럽의 르네상스 시대와 근대 초기에 경험주의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많은 새로운 생물들의 발견으로 유럽에서 생물학적 사고의 혁명이 일어났다. 이런 움직임에서 두드러진 것은 생리학 분야에서 실험과 면밀한 관찰을 이용한 베살리우스와 하비, 생물의 발달과 행동, 화석 기록, 생물의 다양성을 분류하기 시작한 린네와 뷔퐁 같은 박물학자들이었다. 로버트 훅, 안톤 판 레이우엔훅에 의한 현미경의 사용은 이전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미생물의 세계를 밝혀내어, 세포설의 토대를 마련했다. 부분적으로 기계론적 세계관의 부상에 대한 대응으로 자연신학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박물학의 발달을 촉진하였다.
18세기와 19세기에 식물학과 동물학과 같은 생물학은 점점 더 전문적인 과학 분야가 되었다. 라부아지에와 다른 물리학자들은 물리학과 화학을 통해 생물의 세계와 무생물의 세계를 연결하기 시작했다. 알렉산더 폰 훔볼트 같은 탐험가, 박물학자들은 생물과 환경의 상호작용이 지리학에 의해 좌우되는 것을 연구하여 생물지리학, 생태학 및 동물행동학의 기반을 마련했다. 박물학자들은 본질주의를 거부하고 멸종의 중요성과 종의 변이 가능성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세포설은 생물의 기본 단위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 이러한 학문적 발전과 발생학과 고생물학의 성과들은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설에 의한 진화론으로 종합되었다. 19세기 말에는 자연 발생설이 부정되고 질병의 세균설이 부상되었지만, 유전 현상의 메커니즘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있었다.
20세기 초 멘델 유전 법칙의 재발견은 토머스 헌트 모건과 그의 제자들에 의해 유전학의 급속한 발전을 가져왔고, 1930년대에 신다윈주의자들은 집단 유전학과 자연선택론을 결합시켜 현대 종합설을 탄생시켰다. 새로운 분야는 특히 왓슨과 크릭이 DNA 구조를 제안한 후에 급속도로 발전했다. 분자생물학의 중심 원리의 확립과 유전 암호가 해독됨에 따라 생물학은 크게 개체생물학(개체와 개체군을 다루는 분야)과 세포 및 분자생물학으로 나뉘었다. 20세기 후반에 유전체학 및 단백체학(프로테오믹스)과 같은 새로운 학문 분야는 분자적인 기술을 이용하는 개체생물학자나 집단 유전학 뿐만 아니라 유전자와 환경 사이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세포생물학자나 분자생물학자처럼 개체생물학과 세포 및 분자생물학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19세기에는 피어리뷰 시스템이 잘 갖추어지지 않았고, 이로 인해 과학계의 데이터 출판이 더뎠으나, 20세기부터는 과학계의 피어리뷰 시스템이 정립되면서 생물학을 비롯한, 모든 과학적 논쟁은 피어리뷰 논문을 통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는 현재 진행형으로서 지금 진행되는 모든 연구와 논쟁에는 반드시 관련 논문이 존재한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