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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헤 라파엘 비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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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헤 라파엘 비델라 레돈도(스페인어: Jorge Rafael Videla Redondo, 1925년 8월 21일 ~ 2013년 5월 17일)는 아르헨티나의 군인 출신 정치인이다. 1976년 쿠데타로 이사벨 페론 대통령을 축출하고 군사정권의 첫 번째 대통령이 됐다.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 레돈도 Jorge Rafael Videla Redondo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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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 | |
아르헨티나의 제43대 대통령 | |
임기 | 1976년 3월 29일~1981년 3월 29일 |
전임: 이사벨 마르티네스 데 페론(42대) 후임: 로베르토 비올라(4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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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정보 | |
출생일 | 1925년 8월 21일(1925-08-21) |
출생지 |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주 메르세데스 |
사망일 | 2013년 5월 17일(2013-05-17)(87세) |
사망지 | 아르헨티나 마르코스파스 교도소 감방 |
배우자 | 알리시아 라켈 아르트리드헤 |
부에노스아이레스주에서 태어났다. 아르헨티나 육군사관학교 졸업 후 여러 직책을 거치며 군장성으로 승진했고, 1973년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됐다. 1975년 이사벨 페론 대통령은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를 육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이사벨 페론 정부의 실정을 빌미로 군부는 1976년 3월 쿠데타를 단행해 이사벨 페론 대통령을 몰아내고 군사평의회(Junta militar)를 구성하고, 그 자신을 대통령으로 추대했다. 그는 취임하면서 정치·경제·사회적 혼란이 수습되면 민정으로 복귀하겠다고 약속했다.
군사평의회는 국회 기능을 정지시키고 법관의 70%를 교체했다. 또한 좌익 게릴라 소탕을 이유로 많은 사람들을 체포했다. 당시 3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납치·불법구금되고 일부는 실종되거나 살해됐다. 이러한 인권탄압 사건은 더러운 전쟁으로 불린다. 더러운 전쟁과 인권 탄압으로 국내외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그는 계속 정권을 유지했다. 한편 페론주의 대신 시장개방 정책을 추진하여 약간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으나 외채가 급격히 불어나고 인플레이션 문제도 더욱 심각해졌다.
1983년 라울 알폰신 민간정부가 들어선 후 군사정부 인사들에 대한 재판이 이루어졌는데, 1985년 비델라는 살인·납치·고문 등에 관여한 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아 수감됐다가 1990년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의 사면으로 풀려났다. 1998년 더러운 전쟁 중의 새로운 죄가 밝혀져 다시 기소되어 형을 선고받고 수감됐으나, 고령으로 형이 정지되고 가택 연금에 처해졌다. 2003년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대통령 취임 후 과거사 청산 작업이 다시 진행되면서 군사정권 인사들에 대한 사법처리가 이루어졌으며, 그에 대해서도 30건의 살인과 555건의 납치, 264건의 고문 행위에 연루된 혐의가 인정돼 사법처리가 다시 이루어질 가능성이 열렸다.[1] 2010년 12월 22일 아르헨티나 코르도바 법원은 그에게 납치·구금·살해의 책임을 물어 종신형을 선고했다.[2] 2013년 5월 17일 마르코스파스 교도소에서 수감되던 중에 향년 89세를 일기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