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부루왕(解夫婁王, ? ~기원전 60년)는 부여의 2대 국왕으로 해모수왕의 아들이며, 금와왕의 아버지이다.
해모수의 아들로 부여의 왕위를 계승한 해부루는 재상 아란불(阿蘭弗)이 천제(天帝)의 계시를 받아 도읍을 옮길 것을 청하자, 그에 따라 동쪽 바닷가의 가섭원(迦葉原)이라는 곳으로 나라를 옮겨 이를 동부여라고 하였다.[1][2] 해부루가 옮겨간 뒤에 원래 도읍지에는 동명제(東明帝)가 나라를 세웠다는 기록 이 있으며, 다른 전승에 따르면, 해부루의 아버지에 대한 기록은 없고, 옮겨간 뒤에 해모수가 하늘에서 내려와 왕이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따르면 부여는 해부루대에 동해의 바닷가에 있는 ‘가섭원(迦葉原)’으로 천도를 하고, 국호를 동부여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하여, 현재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단순한 설화로만 보거나 두만강 하류에 위치했던 하나의 독립된 세력으로 보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통설이다.[3] 하지만 일반적으로 도읍을 옮기는 것은 자국의 영역 내에서만 가능한 일이라는 점을 들어, 해부루왕이 영역 내 동쪽의 가섭원으로 도읍을 옮긴 것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3][4]
해부루는 아들이 없었는데, 하늘에 제사를 올려 아들을 낳기를 기원하였다. 어느날 곤연(鯤淵) 부근에서 큰 바위를 보고 말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바위를 치웠더니 금빛이 나는 개구리 모양의 어린아이가 있었다. 이 아이를 아들로 삼고 형상을 따서 금와(金蛙)라고 이름지었다.[5][6][7]
해부루의 이름인 부루(夫婁)는 단군왕검의 아들로 알려져 있는 부루와 이름이 같아 《삼국유사》나 《세종실록》〈지리지〉에 해부루와 부루를 동일 인물로 파악한 기록이 전하기도 한다. 그러나 단군왕검의 아들 부루와 해부루의 관계를 정확히 밝혀진 것이 없어 구분하여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 부왕 : 해모수왕(解慕漱王)
- 모후 : 미상
- 국왕 : 해부루왕(解夫婁王)
- 왕비 : 미상
- 국왕 : 금와왕(金蛙王, 기원전 89년?~기원전 24년 재위:기원전 60년경~기원전 24년경)
- 왕비 : 미상
- 증손 : 대소왕(帶素王, 기원전 73년?~서기 22년, 재위:기원전 24년~서기 22년) 동부여 마지막 왕
- 증손 : 갈사왕(曷思王, 생몰년 미상, 재위:22년~ ?)갈사부여의 왕
김부식 (1145) “後其相阿蘭弗曰 日者天降我曰 將使吾子孫立國於此 汝其避之 東海之濱有地 號曰迦葉原 土壤膏腴宜五穀 可都也 阿蘭弗遂勸王 移都於彼 國號東扶餘” (후에 그 재상 아란불이 말하기를 “어느 날 하느님이 나에게 내려와 말하기를 장차 나의 자손이 이곳에 나라를 세울 것이니 너는 이곳을 피하거라. 동쪽 바닷가에 가섭원이라고 하는 곳이 있는데, (그곳은) 토양이 비옥하고 오곡을 기를 만하니 도읍으로 삼기 적당하다”라고 했다. 아란불이 왕께 권하자 도읍을 이곳으로 이동하고 국호를 동부여라 하였다.)
일연 (1281) 북부여조, “北扶餘王解夫婁之相阿蘭弗。夢天帝降而謂曰。將使吾子孫立國於此。汝其避之謂東明將興之兆也[...] 移都於彼。國號東扶餘。” (북부여의 왕 해부루의 재상 아란불의 꿈에, 천제가 내려와서 말했다. “장차 내 자손으로 하여금 이곳에 나라를 세우게 할 터이니 너는 다른 곳으로 피해 가도록 하라”.이것은 동명왕이 장차 이곳에서 흥할 징조였다. [...] 이곳으로 도읍을 옮기고 국호를 동부여라 했다.”
李強, 〈沃沮·北沃沮考略〉 (《北方文物》 1981-1, 1981) ; 匡瑜, 〈全國至兩漢的北沃沮文化〉(《黑龍江文物叢刊》 1982-2, 1982) ; 노태돈, 〈5세기 금석문에 보이는 고구려인의 천하관〉(《한국사론》 19호, 1988) ; 공석구, 《고구려 영역확장사 연구》, (서울: 서경문화사, 1999) ; 池內宏, 〈夫餘考〉 (《滿鮮史硏究》 上世 제1책, 1932) ; 노태돈, 《고구려사연구》, (파주: 사계절출판사, 1999).
나하나,〈부여의 변천과 동부여 문제〉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 제23집, 2009.12. 311쪽.
《삼국사기》에는 ‘금와 얻음 → 동부여 천도’의 순서인 반면, 《삼국유사》에는 ‘동부여 천도 → 금와 얻음’의 순서이다.
김부식 (1145) “扶餘王解夫婁老無子 祭山川求嗣 其所御馬至鯤淵 見大石 相對流涙 王怪之 使人轉其石 有小兒 金色蛙形 · 王喜曰 此乃天賚我令胤乎 乃收而養之 名曰金蛙” (부여왕 해부루가 늙도록 아들이 없었으므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 아들 낳기를 기원하였다. 그가 탄 말이 곤연(鯤淵)에 이르렀는데, 그 곳에 있던 큰 바위를 보고 말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왕이 이를 기이하게 여겼다. 왕이 바위를 굴려보게 하였더니, 금빛이 나는 개구리개구리는 또는 달팽이라고도 한다. 모양의 어린아이가 있었다. 왕이 기뻐하여 “이는 하늘이 내게 준 아이로다.”라고 말하며 아들로 삼으니, 이가 곧 금와(금빛이 나는 개구리)이다.)
일연 (1281) 북부여조, “夫婁老無子。一日祭山川求嗣。所乘馬至鯤淵。見大石相對俠流。王怪之。使人轉其石。有小兒金色蛙形。王喜曰。此乃天賚我令胤乎。乃收而養之。名曰金蛙。”(부루는 늙도록 아들이 없었다. 하루는 산천에 제사를 지내어 후사를 구하였다. 〔부루가〕 탄 말이 곤연에 이르러, 큰 돌을 마주하고 의기롭게 우는 것을 보았다. 왕이 이를 기이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그 돌을 굴리게 하니, 어린 아이가 있었는데, 금빛 개구리 모양이었다. 왕이 기뻐하여 말하기를, “이것은 하늘은 나에게 내려준 자식이로구나!” 하였다. 이에 맡아서 그를 키웠다. 이름하여 금와라 부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