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제3공화국
1870년부터 1940년까지 존속한 프랑스의 공화정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프랑스 제3공화국(프랑스어: Troisième République française)은 1870년부터 1940년까지 약 70년간 프랑스에서 존속한 가장 안정적이었던 공화정 체제이다. 또한 1789년 이후 프랑스의 체제 가운데서 처음으로 안정적으로 돌아가던 체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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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공화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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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épublique français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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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어 | 자유, 평등, 우애 (프랑스어: Liberté, égalité, fraternité) | ||||||||||||||||||||||
국가 | 마르세유의 노래 | ||||||||||||||||||||||
1939년의 프랑스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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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 파리 북위 48° 52′ 13″ 동경 02° 18′ 59″ | ||||||||||||||||||||||
최대도시 | 수도 | ||||||||||||||||||||||
정치 | |||||||||||||||||||||||
정치체제 | |||||||||||||||||||||||
대통령 1871-1873 1932-1940 | 아돌프 티에르 (초대) 알베르 르브륑 (마지막) | ||||||||||||||||||||||
역사 | |||||||||||||||||||||||
• 스당 전투 패배 공화국 선언 | 1870년 9월 4일 | ||||||||||||||||||||||
• 파리 코뮌 붕괴 | 1871년 3월부터 5월 | ||||||||||||||||||||||
• 헌법 제정 | 1875년 | ||||||||||||||||||||||
• 언론의 자유 | 1881년 7월 29일 | ||||||||||||||||||||||
• 쥘 페리 법 (무상,의무,세속 교육) | 1881년부터 1882년 | ||||||||||||||||||||||
• 발데크-루소 법 (노조 결사의 자유) | 1884년 3월 21일 | ||||||||||||||||||||||
• 드레퓌스 사건 (정교분리) | 1894년부터 1906년 1905년 12월 9일 | ||||||||||||||||||||||
• 베르사유 조약 | 1919년 6월 28일 | ||||||||||||||||||||||
• 독일과 휴전 체결 국회, 페탱에게 전권 위임 | 1940년 6월 22일 1940년 7월 10일 | ||||||||||||||||||||||
• 프랑스 개헌 국민투표 | 1945년 10월 21일 | ||||||||||||||||||||||
인문 | |||||||||||||||||||||||
공용어 | 프랑스어 (공식), 그 밖의 기타 | ||||||||||||||||||||||
데모님 | 프랑스인 | ||||||||||||||||||||||
인구 | |||||||||||||||||||||||
1938년 어림 | 41,560,000명 | ||||||||||||||||||||||
경제 | |||||||||||||||||||||||
통화 | 프랑스 프랑 | ||||||||||||||||||||||
종교 | |||||||||||||||||||||||
국교 | |||||||||||||||||||||||
종교 | |||||||||||||||||||||||
기타 | |||||||||||||||||||||||
현재 국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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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혁명 이후로 프랑스는 80년간 세 차례의 입헌 군주정, 짧은 두 번의 공화정(각기 12년과 4년씩)과 두 번의 제정, 총 일곱 개의 정치 체제를 겪었다. 이러한 혼란은 1870년부터 1879년까지 왕정 철폐와 제3공화국 헌법 제정을 위해 생긴 9년간의 국회의 우유부단을 보여 준다. 헌법 제정의 타협으로, 1875년 헌법은 양원제 의회를 확립했고, 공화파들은 프랑스 제2공화국의 선출된 대통령 나폴레옹 3세의 1851년 쿠데타를 떠올리며 국가 수장의 대의적 역할에 동의한다.
제3공화국은 필립 노드가 말한 것처럼 "공화주의자들의 시대", 말하자면 교육과 정교분리, 동맹파업과 노조결성의 자유를 명시한 위대한 법들이 설명하는, 강력한 민주주의로 대표되는 시대에 설립되었다. 이 시대는 프랑스인의 삶이 '혁명이 없는 때에 살고 있는듯 정치에 열광적이던' 시대이기도 하다. 이것은 뱅상 뒤클레르가 "정치국가로서 프랑스 정신의 탄생"이라고 정의한 것이다. 대중들이 원하던 잇따른 사회개혁들, 특히 피고용인을 위한 법률의 제정이 이 시대의 특징이었다.
더욱이 제3공화국은 프랑스 정치사에서 12년밖에 지속되지 않은 제1공화국(1792년-1804년)과 4년만에 소멸된 제2공화국 (1848년-1852년)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공화정 체제를 장기간에 걸쳐 자리잡도록 했다. 보불전쟁의 패배로 건국된 제3공화국은 독일과의 대립이라는 맥락속에서 발전했다.
제3공화국에는 65년 동안 93개의 내각이 수립되었지만, 내각 구성원들이 새 내각에서 그대로 남는 방법으로 정책의 연속성이 보장되었다. 새 내각이 출범할때 평균적으로 전 내각 장관의 약 50%는 같은 자리를 지켰고, 25%는 다른 부처로 옮겨갔으며, 나머지만 새 정치인이 입각했다.[1]
1940년 7월 10일, 나치 독일의 프랑스 침공으로 국회는 페텡에게 권력을 위임했다. 다음날인 11일에 페텡은 마침내 "프랑스 국가원수(비시 프랑스)"가 되었고, 제3공화국은 실질적으로 막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