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 추이코프
소련의 군인 (1900-1982)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바실리 이바노비치 추이코프(러시아어: Васи́лий Ива́нович Чуйко́в, 러시아어 발음: [vɐˈsʲilʲɪj t͡ɕʉjkof] ( 듣기), 1900년 2월 12일(구력 1월 31일)~1982년 3월 18일)는 소련의 군인, 소비에트 연방원수이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있었던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제62군을 이끈 것으로 유명하다.
바실리 추이코프 Васи́лий Чуйко́в | |
1950년의 추이코프 | |
본명 | Васи́лий Ива́нович Чуйко́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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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자 표기 | Vasily Ivanovich Chuikov |
출생일 | 1900년 2월 12일 |
출생지 | 러시아 제국 툴라현 세레브랴니예 프루디 |
사망일 | 1982년 3월 18일(1982-03-18)(82세) |
사망지 | 소련 러시아 SFSR 모스크바 |
학력 | 미하일 프룬제 군사 대학 |
충성 대상 | 소련 |
복무 | 붉은 군대 |
복무기간 | 1918년~1982년 |
최종계급 | 소비에트 연방원수 |
지휘 | 제4군 제62군 |
주요 참전 | 러시아 내전 |
서훈 | 소비에트 연방영웅 |
툴라의 빈농 가문에서 태어난 추이코프는 12살의 나이에 공장 노동자로 근무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끝난 후 추이코프는 붉은 군대에 들어가 러시아 내전 당시 훌륭한 업적을 이룩했다. 내전 이후 추이코프는 프룬제 군사 대학을 졸업한 이후 연해주와 중화민국에서 군사 고문관으로 근무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던 1939년 9월, 바실리 추이코프는 소련의 폴란드 침공 당시 제4군을 지휘했다. 이후 1940년 12월 추이코프는 중일 전쟁 당시 일본 제국과 맞서 싸우던 국민혁명군과 장제스를 지원하기 위해 다시 중화민국에 파견되어 군사 고문으로서 활동했다.
1942년 3월 나치 독일의 침공을 막기 위해 소련 정부는 추이코프를 본국으로 소환했다. 1942년 9월 추이코프는 스탈린그라드를 방어하는 제62군을 지휘하게 되었다. 상부에게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스탈린그라드를 지키라는 명령을 받은 추이코프는 독일군과 물리적으로 최대한 가깝게 방어선을 만들었다. 제병합동전술을 추구하던 독일군에게 추이코프의 작전은 주효했지만 1942년 말까지 독일군은 스탈린그라드를 거의 장악했다. 천왕성 작전을 통해 다른 소련군 부대와 합류한 추이코프는 반격 작전을 통해 1943년 초 스탈린그라드를 포위한 독일 제6군의 항복을 받아냈다. 이후 추이코프는 바그라티온 작전과 비스와-오데르 공세로 폴란드를 점령했고, 1945년 4월 베를린 공방전에서도 참전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추이코프는 주동독 소련군의 사령관이 되었고, 이후 키예프 군관구 사령관, 소련군 참모총장, 국방부 차관, 소련 민방위 사령관을 역임했다. 추이코프는 1944년과 1945년 두 차례에 걸쳐 소비에트 연방영웅의 칭호를 받았으며,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보여준 공로로 미국으로부터 수훈십자장을 받았다. 1955년 추이코프는 소비에트 연방원수에 임명되었다. 1982년 모스크바에서 사망했으며, 추이코프의 사망 이후 그의 시신은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격전지였던 마마예프 쿠르간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