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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프나 왕국(타밀어: யாழ்ப்பாண அரசு, 싱할라어: යාපනය රාජධානිය, 서기 1215년 ~ 1619년) 또는 아리야차크라바르티 왕국은 오늘날 스리랑카 북부 지역에 존재했던 타밀계 힌두 왕국이다. 오늘날 자프나 반도에 있는 자프나 마을의 교외에 있는 날루르에 수도를 두었으며, 전통적으로 인도 칼링가의 칼링가 마가 침공 이후에 세워진 것으로 여겨졌다.[1][2][3][4] 섬의 북쪽, 북동쪽, 서쪽에서 강력한 세력으로 자리 잡은 이 왕국은 결국 1258년 판디아 제국의 조공국이자 봉신국이 되었고, 1323년 델리 술탄국의 육군 장군인 말리크 카푸르에 의해 마지막 판디아 통치자가 패배하고 추방되면서 독립을 얻게 되었다.[1][5][6] 14세기 초중반의 짧은 기간 동안 이 왕국은 스리랑카섬에서 모든 지역 왕국이 종속을 받아들인 신흥 강국으로 군림했으나, 1450년경 파라크라마바후 6세의 명령에 따라 사푸말 왕자의 침략을 받아 라이벌이었던 코테 왕국에 의해 제압당했다.[5][1][2][3][4]
1467년 코테 왕국의 지배에서 독립한 후,[7] 자프나 통치자들은 진주, 코끼리 수출, 토지 수입을 극대화하여 경제적 잠재력을 강화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8][9] 당시 스리랑카 섬의 다른 지역 왕국들보다 덜 봉건적이었다.[9] 이 기간 동안 중요한 지역 타밀어 문학이 생산되었고 언어 발전을 위한 아카데미를 비롯하여 여러 힌두교 사원들이 세워졌다.[10][11][12][13] 현재의 형태로 기원전 14세기 또는 15세기에 작성된 싱할라어 남포타에 따르면 현대 트링코말리구의 일부를 포함한 자프나 왕국 전체가 데말라-파타나마(타밀 도시)라는 이름의 타밀 지역으로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다.[14] 이 작품에서는 현재 자프나, 물라이티부, 트링코말리구에 위치한 여러 마을이 데말라-파타나마의 장소로 언급된다.[15]
1505년 포르투갈인들이 스리랑카 섬에 도착하고, 내륙의 모든 싱할라 왕국들과 남인도를 연결하는 팔크 해협에 위치한 전략적 위치로 인해 정치적 문제가 발생했다. 많은 왕들이 포르투갈과 대립했고 결국 포르투갈과 화해했다. 1617년 왕위를 찬탈한 칸킬리 2세가 포르투갈과 대치했지만 패배하여 1619년 왕국의 독립은 막을 내렸다.[16][17] 미가풀레 아라치 같은 반군은 탄자부르 나야크 왕국의 도움을 받아 왕국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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