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image](https://wikiwandv2-19431.kxcdn.com/_next/image?url=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4/45/%25EC%259E%2584%25EA%25B2%25BD%25EC%2597%2585.jpg/640px-%25EC%259E%2584%25EA%25B2%25BD%25EC%2597%2585.jpg&w=640&q=50)
임경업
조선의 무신 (1594–1646)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임경업(林慶業, 1594년 12월 13일(음력 11월 2일) ~ 1646년 8월 1일(음력 6월 20일))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친명배청파(親明排淸派) 무장이었다.
![]() | 이 문서의 내용은 출처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2015년 8월) |
간략 정보 별명, 시호 ...
![]() 林慶業 | |
![]() | |
별명 | 호: 고송 |
---|---|
시호 | 충민공(忠愍公) |
출생지 | 조선 충청도 충주목 남변면 달천촌 |
사망지 | 조선 한성부 |
부모 | 임황(부) |
친척 | 임사업(아우) |
종교 | 유교(성리학) → 불교 → 유교(성리학) |
충성 대상 | 명나라 → 조선 |
복무 | 조선 육군 |
복무기간 | 1618년 ~ 1642년 |
최종계급 | 조선국 관군 차석조방장(朝鮮國 官軍 次席助防將) |
지휘 | 조선국 육군 조방장(朝鮮國 陸軍 助防將) |
주요 참전 | 병자호란, 정묘호란 |
닫기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영백(英伯), 호는 고송(孤松)이다. 충청도 충주(忠州) 달천촌(達川村) 출생[1]이다.(평안도 개천(价川)에서 태어났다는 기록[2]도 있음) 판서(判書) 임정(林整)의 7대손이다.
충청도 충주에서 출생하여 지난날 한때 평안도 개천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1602년 충청도 충주 향리에 귀향하여 그 후 충청도 충주에서 줄곧 자랐고 1612년(19세 시절) 진사시에 합격 후 1618년(25세 시절) 2살 아래의 친아우 임사업(林嗣業)과 함께 때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624년(인조 1) 이괄의 난 때에는 반란군을 토벌하여 1등 공신에 책록되었다. 1633년 청북 방어사 겸 영변부사에 등용되어 북방 경비를 튼튼히 하기 위해 의주에 있는 백마 산성을 다시 쌓았다. 당시 누르하치가 만주 대륙을 통일하여 나라 이름을 후금이라 칭하고 명나라와 조선에 싸움을 자주 걸어왔다. 후금의 소규모 부대가 국경을 넘어오자 이를 여러 번 격퇴하여 되돌려보냈다. 시호가 충민(忠愍)이다.
조선 조정 내 친명 인사의 한 사람으로, 명나라는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 주었으며, 임경업은 명나라를 위하여 오랑캐를 무찌르는 것으로 보답하여, 명나라와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