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image](https://wikiwandv2-19431.kxcdn.com/_next/image?url=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0/0b/Lee_Jin-ho_%25281867-1946%2529.jpg/640px-Lee_Jin-ho_%25281867-1946%2529.jpg&w=640&q=50)
이진호 (1867년)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이진호(李軫鎬, 일본어: 李家軫鎬리노이에 진고, 1867년 음력 8월 2일 ~ 1946년 9월 3일)는 조선 후기의 개화파 무관이다. 1867년 8월 7일(양력) 서울에서 출생했다.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895년 11월 28일에 발생한 '춘생문사건'을 함께 공모한 일원이었으나 변절, 배신하여 밀고함으로 고종을 도피시키고자 했던 거사가 실패하는데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했다.[1]
![Thumb image](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0/0b/Lee_Jin-ho_%281867-1946%29.jpg/320px-Lee_Jin-ho_%281867-1946%29.jpg)
대한제국기에 중추원 부찬의, 평안남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 학무국장, 중추원 부의장, 제1대 경상북도 도장관을 역임하였고, 제1대 전라북도 도지사를 역임하였으며, 일본제국의회 귀족원의 칙선의원 등을 지냈다. 아호는 성재(星齋). 본관은 전의[2]. 3.1 만세 운동 당시 시위를 진압하는 자제단 창립에 참여하였다. 1946년 9월 3일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