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겸
고려의 문신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이자겸(李資謙, 1050년 ~ 1127년 1월 19일(1126년 음력 12월 5일[1]))은 고려시대 중기의 문신이자 정치인, 섭정이자 시인이었다. 권신(權臣)이자 척신(戚臣)으로, 예종과 인종의 장인인 동시에 인종의 외조부이기도 하다. 예종이 죽자 외손자인 인종을 추대하였으며, 왕위를 찬탈하려던 왕실의 친인척을 숙청하였다. 외손자인 인종이 즉위하자 자신의 두 딸이자 이모가 되는 폐비 이씨, 폐비 이씨 자매를 외손자인 인종에게 시집보내 권력을 누렸으나 뒤에 인종을 독살하려다가 도리어 인종에 의해 제거되었다.
간략 정보 이자겸李資謙, 출생일 ...
이자겸 李資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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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국공 | |
신상정보 | |
출생일 | 1050년 |
사망일 | 1126년 12월 5일 (음력) |
사망지 | 전라도 영광 법성포 |
부친 | 이호 |
모친 | 통의국대부인 김씨 |
배우자 | 변한국대부인 최씨 |
자녀 | 6남 4녀
2녀 문경태후, 3녀 폐비 이씨, 4녀 폐비 이씨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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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년 이자겸의 난을 일으켜 반대파 인사들을 숙청하고 권력을 장악하였으나, 인종이 회유한 그의 사돈 척준경[2] 등에 의해 제거되었다. 인천 이씨를 당대 최고의 문벌 귀족 가문으로 끌어올린 이자연(李子淵)의 손자이다. 전라남도 영광군에 유배되어 말린 생선을 먹고 그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이름을 붙인 것이 영광 굴비의 어원이 되었다. 작위는 1122년 음력 10월에 한양공(漢陽公)으로 책봉되었다가 1124년 음력 7월 조선국공(朝鮮國公)으로 진봉되었다. 본관은 인천(仁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