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필오
달성학교 교장, 영양군수, 예안군수, 의성군수, 일진회 회원, 대구 자제단 창립위원, 경주 자제단 창립자, 자금으로 협성학교 설립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윤필오(尹弼五, 1860년 음력 9월 10일 ~ 1924년 3월 30일)는 대한제국의 교육인, 관료이자 일제강점기 초기의 관료, 시민운동가였다.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였고, 교육 계몽활동에 투신하였으며, 1900년대 초반에 달성학교 교장을 지내며 교육인으로 활동했다. 3·1 만세 운동에 반대하여 자제단 조직에 참여했다. 본관은 파평, 호는 매석(梅石)이다.
간략 정보 윤필오 (尹弼五), 별명 ...
윤필오 (尹弼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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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책}}} | |
이름 | |
별명 | 호: 매석(梅石) |
신상정보 | |
출생일 | 1860년 10월 23일(음력 9월 10일) |
출생지 | ![]() |
사망일 | 1924년 3월 30일(1924-03-30)(63세) |
사망지 | ![]() |
국적 | ![]() ![]() ![]() |
학력 | 한학 수학 |
자녀 | 아들 윤홍렬, 아들 이름 미상 |
직업 | 관료, 교육자, 계몽 사상가, 사회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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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말 관직에 임용되어 주사가 되었으나 사퇴하고, 교육 계몽운동에 참여했다. 1907년에는 서상돈, 윤웅렬 등과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했다. 1908년 영양군수가 되고, 1910년 다시 영양군수가 된 뒤, 1911년 예안군수, 1912년 의성군수를 역임했다. 일진회 회원을 지낸 일제강점기의 관료이다.
교육 활동으로는 1899년 달성학교의 개교와 영흥학교의 개교에 참여하고, 달성학교 교장, 대구광학회 발기인 등으로 활동하였으며, 청송금융조합 간부이자 일본적십자사 조선본부 대구부지부의 간부로 활동하기도 했다. 1919년 당시 3·1 만세 운동을 비판, 반대하던 자제단의 주요 간부였다. 대구 자제단의 창립멤버이자 경주 자제단의 창립자였다. 남조선과도입법위원회 의원 윤홍렬은 그의 아들이고, 한국의 초기 여자 농구선수 윤덕주[1]의 할아버지이자, 4대·5대 국회의원 서정귀의 처조부였다. 대구시장 허억, 독립운동가 이상화, 이상정, 이상백 형제와 사돈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