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인석보
1459년에 세조의 왕명의 받아 간행된 한글 책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월인석보》(月印釋譜)는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합하여 1459년(세조 5년)에 간행한 목판본 불교 서적이다.[1] 초간본 10권(권1·2·7·8·9·10·13·14·17·18) 8책과 중간본 4권(권21·22·23·25) 4책이 보물 제745호로 지정되었으며, 초간본 2권(권11·12) 2책이 보물 제935호로 지정되어 있다.[2] 조선 전기 한국어 연구와 불교학 및 문헌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며 조선 왕조때 편찬된 석가 일대기로서는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초간본의 1권 맨 앞부분에는 훈민정음의 어제서문(御製序文)과 예의(例義) 부분이 한글로 번역된 '훈민정음 언해'가 실려 있는데,[3] 현재까지 발견된 책중에는 '훈민정음 언해'가 실려있는 최초의 문헌이다.
1447년(세종 29년)에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아들인 수양대군(후의 세조)이 불교 서적을 참고하여 《석보상절》을 편찬했으며, 세종이 이 책을 읽고 한글로 직접 찬불가를 지었는데, 이것을 엮어 《월인천강지곡》을 편찬했다. 세조 5년에 이 두책을 합하여 월인석보를 간행했다. 편찬 동기는 1457년(세조 3년)에 사망한 아들 의경세자와 부왕 세종대왕의 명복을 빌기 위함이라고 되어있지만, 어린 조카 단종을 몰아내 죽이고 왕위에 올라, 사육신 등 많은 신하를 죽인 끝에 당하는 정신적인 괴로움, 회한과 무상(無常)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추진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4]
신미(信眉), 수미(守眉), 설준(雪竣), 효운(曉雲), 지해(智海), 홍준(弘濬), 학열(學悅), 학조(學祖) 등의 고승과 유학자 김수온(金守溫) 등으로 당대의 불학(佛學)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편찬작업에 함께 하였다. 《월인천강지곡》의 한 구절씩을 본문으로 하고 그에 해당하는 내용의 《석보상절》은 주석(註釋)같이 하여 구성하였다.[5] 여러차례 복간된것으로 보이며 현존하는 책들은 경상북도 영주(榮州)의 희방사(喜方寺), 경상북도 안동(安東)의 경흥사(慶興寺), 충청남도 논산(論山)의 쌍계사(雙溪寺)에서 인쇄한 것들이다.[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