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랄산맥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에 위치한 산맥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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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랄산맥(러시아어: Ура́льские го́ры 우랄리스키예 고리[*])은 카자흐스탄 북부에서 북극해까지 러시아를 남북으로 종단하는 산맥이다.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에 위치하며 길이는 약 2,500km, 평균 표고는 900m에서 1,200m에 이른다. 산맥의 최고봉은 나로드나야산(높이 1,894m)이다.[1]
우랄산맥 | |
Ура́льские го́ры Ural Mountains | |
(지리 유형: 산맥) | |
나라 | 러시아 · 카자흐스탄 |
---|---|
지방 | 러시아《바시키르 · 스베르들롭스크주 · 페름 지방 · 첼랴빈스크주 · 쿠르간주 · 오렌부르크주 · 튜멘주 · 한티만시 자치구 · 야말로네네츠 자치구》 · 카자흐스탄《서카자흐스탄주》 |
최고봉 | 나로드나야산(Narodnaya) |
- 위치 | 러시아 튜멘주 한티만시 자치구 |
- 높이 | 1,894 m (6,214 ft) |
- 좌표 | 북위 65° 02′ 00″ 동경 60° 07′ 00″ |
길이 | 2,500 km (1,553 mi) |
너비 | 40-150km (25-93mi) |
지질 시대 | 석탄기 |
16세기 크란스카의 지기스문트 폰 헤르베르슈타인 남작이 러시아의 지리에 대해 저술할 때까지 우랄산맥은 "바위 띠"를 뜻하는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현대 러시아어에서 우랄(Урал) 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16세기에서 17세기 사이 러시아의 시베리아 정복이 이루어질 때이다. 우랄은 처음에는 산맥의 남쪽 지대만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이다가 18세기에 들어 지금처럼 산맥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바위 띠"는 분명 투르크어에서 차용된 것으로 보인다.[2] 투르크어족에 속하는 바시키르어나 우랄어족에 속하는 오브우그르어에서도 이 지역을 자신들의 언어로 "바위 띠"라고 부른다.[3] 13세기부터 바시키르에서는 영웅 우랄(우랄 바티르) 에 대한 전설이 전해져 온다. 그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였고 그래서 산기슭에 만든 그의 무덤에 돌을 쌓았다고 한다. 그 때부터 이 산맥을 우랄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다.[4][5][6] 바시키르어에서 "우르"(үр)는 고지대를 뜻하고, 만시어의 "우르 알라"(ур ала)는 산꼭대기를 뜻하기 때문에 여기서 우랄이란 이름이 왔을 수도 있다.[7] 바실리 타티셰프는 우랄이라는 지명이 띠를 두른다는 뜻의 투르크어 동사 "오랄루"에서 왔을 것이라 추측하였다.[7] I. G. 도브로도모프는 고대 불가르-추바시 방언에서 아랄을 가리키던 말이 바시키르어에서 우랄로 변형되었을 것이라는 가설을 내놓았다.[7] 에벤크어에서 산을 가리키는 "에라"역시 우랄의 어원으로 지목된 바 있다.[7] 핀-우그르 민속학에서는 "연결된 산들"을 뜻하는 오스탸크어 "우르"를 우랄의 어원으로 여긴다.[8] 한편, 투르크학에서는 우랄이 "띠"를 가리키는 고대 타타르어에서 파생되어 "바위 띠"를 뜻하게 되었다고 추측한다.[9]
중세 이슬람 상인들은 우랄산맥 서쪽 기슭에 있던 페름 지방의 옛 국가인 대페름과 거래를 하였다. 중세 이슬람의 지리학자들은 최소 10세기 무렵 우랄산맥이 아랄해에서 북극해까지 길게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10] 러시아에서는 키예프 루스의 《원초 연대기》에서 우랄 산맥을 언급하고 있는데 노브고로드 공화국이 1096년 그들의 영토가 페초라강에 이르렀으며 우랄산맥에서 철광을 채굴하였다고 한다.[11]
그럼에도 불구하고 16세기 초 폴란드의 지리학자인 마치에이 미에호비타(Maciej Miechowita)가 저술한 《두 사르마티아인에 대한 논고》(Tractatus de duabus Sarmatiis, 1517)에는 유럽 동부의 산맥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유럽 동부의 지리에 대해 다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지기스문트 폰 헤르베르슈타인이 《모스코비의 강역에 대한 기록》(Rerum Moscoviticarum Commentarii, 1549)을 저술한 이후이다.
1550년대에 이르러 러시아 차르국의 이반 4세 차르가 카잔 칸국을 멸망시킨 후 러시아는 우랄산맥 남부를 자신의 영토로 삼게 되었다.[12] 1574년 이반 4세는 우파에 요새를 세웠다.[13] 이후 러시아는 1598년에 시비리 칸국을 멸망시키고, 1648년에는 쿤구르에 요새를 건설하는 등 우랄산맥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였다.
17세기에 들어 우랄산맥에는 철, 구리, 운모, 보석 원광 등을 채굴하는 광산이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러시아 제국을 선포한 표트르 1세 황제의 산업화 정책에 따라 우랄산맥은 러시아의 산업 발전에 필요한 원자재를 공급하는 대표적인 광산 지역이 되었다.[14] 19세기는 전세계에서 사람들이 황금을 찾아 몰려가는 "황금광 시대"였고 러시아에도 황금 열풍이 불었다. 알렉산드르 1세 황제가 금광을 개발한 이래 1823년에 2톤이 채 되지 않던 우랄산맥의 금 생산량은 1830년 5톤, 1842년 11톤으로 크게 증가하였으며 1847년 무렵에는 전세계 금 생산의 60%를 차지하게 되었다. 우랄산맥 금광의 대대적인 성공은 이후 러시아가 시베리아를 거쳐 극동에 이르기까지 영토를 확장하는 큰 동기 가운데 하나였다.[15]
18세기 표트르 1세 황제의 명령에 따라 바실리 타시셰프가 우랄산맥에 대한 최초의 지리 조사를 하였고, 1770년에서 1771년 사이에 러시아의 지리학자 알렉산드르 카르핀스키, 식물학자 포르피리 크릴로프, 동물학자 레오니드 파블로비치 사바네예프, 영국의 로더릭 머치슨, 프랑스의 에두아르 드 베르누이로 구성된 국제 조사단이 과학적 탐사 결과를 발표하였다.[16][17] 머치슨은 1841년 우랄 산맥 전체를 나타낸 지도를 제작하여[16] 베르누이, 키설링과 함께 《유럽 러시아와 우랄산맥의 지리》[17][18]를 출간하였다.
1878년 우랄 철도가 건설되었다. 우랄 철도는 이미 러시아의 대표적인 산업 단지였던 우랄 지역 내의 산업 단지 사이를 연결한 것으로 페름에서 예카테린부르크 등을 연결한 것이다.[19] 이후 우랄 철도의 첼랴빈스크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의 기점이 되었다. 1927년 고도 1,895m의 나로드나야산이 우랄산맥 최고봉으로 확정되었다.[20]
1930년 소련은 중공업 중심의 계획 경제를 추진하였고, 우랄산맥의 마그니토고르스크는 제철 산업의 중심지가 되었다.[21] 제2차 세계 대전 시기 독일의 침공에 맞서 소련은 동부 전선에서 충분히 떨어진 우랄 산맥 지역에 군수산업을 육성하였고 니즈니타길의 우랄바곤자보트(УралВагонЗавод, 우랄 차량 공장)는 "제183 스탈린 탱크 제조 공장"으로 개명되어 T-34를 생산였다.[22] 이후 우랄 산맥 지역은 핵무기 개발에서도 중요한 지역이 되어 마야크 재처리 공장에서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마야크 핵무기 시설은 1957년 키시팀 사고로 폐쇄되었다.[23]
우랄산맥은 북극해의 일부인 카라해부터 중앙유라시아 스텝 기후 지역인 카자흐 초원까지 남북으로 길게 이어져 약 2,500km에 달한다. 우랄산맥을 기준으로 동쪽으로는 아시아, 서쪽으로는 유럽으로 구분한다.[16] 우랄산맥은 다음과 같이 극지 우랄, 아극지 우랄, 북부 우랄, 중부 우랄, 남부 우랄로 구분된다.
우랄산맥은 고생대에서 중생대 사이에 형성된 습이다.[25] 3억년 전에서 2억 5천만년전 사이 판의 경계가 충돌하는 조산운동에 의해 형성되었다.
우랄산맥에 위치한 페름에 발달된 지층에서 페름기라는 명칭이 유래하였다. 1840년 러시아 황제의 초청으로 우랄산맥의 지질을 조사하던 머치슨은 석탄기와 트라이아스기 사이에 개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해양생물을 포함하는 층이 있음을 확인하고 페름기라는 이름을 붙였다.[26]
우랄산맥은 다양한 광물의 산지이다. 석탄 매장량이 풍부하며, 석유, 철, 망간, 텅스텐, 마그네슘, 황철강 등 다양한 광물이 채굴되고 있다.[27] 19세기 황금 채광과 함께 보석류 채굴도 성행하였는데, 특히 우랄산맥에서 채굴되는 석류석은 유명하다.[28]
우랄산맥은 남북으로 길게 이어져 있어 위도에 따라 서로 다른 기후를 보인다. 북쪽의 극지 우랄, 아극지 우랄은 아극지 기후이며 북부와 중부 우랄 지역은 대표적인 툰드라 기후 지역이다.[29] 한대 침엽수림인 타이가가 발달하여 시베리아로 이어진다. UNESCO 세계 유산으로 지정된 코미 원시림이 대표적이다.[24] 우랄산맥에 발달한 타이가는 주로 전나무.낙엽송.가문비나무 등 침엽수림으로 남쪽에는 자작나무.떡갈나무 등 활엽수림도 있다.[30]
평균 강수는 가장 많은 비가 내리는 7월에도 63 mm 로 건조한 편이며, 한낮 평균 기온은 7월에 24 °C, 1월에 영하 10 °C 로 여름은 서늘하고 겨울은 몹시 춥다.[31] 우랄산맥 인근은 이렇다할 고지가 없어 우랄산맥이 기후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겨울철 극지 우랄과 아극지 우랄을 중심으로 발달하는 저지 고기압이 제트 기류의 흐름을 막는 블로킹을 형성한다. 이 때문에 북극 한파가 보다 저위도 지역까지 크게 내려와 중위도 지방에 한파를 가져오는 원인이 된다.[32]
남부 우랄은 그 밑의 초원 지대와 접하며 스텝 기후와 건조 기후를 보인다.[29] 한편, 남부 우랄산맥에 복잡하게 발달한 계곡 지역은 보다 습윤하여 사시나무속이나 버드나무속, 골담초와 같은 식물들이 자란다.[4]
우랄산맥의 타이가에는 순록, 곰, 울버린, 스라소니, 긴털족제비와 같은 동물들이 산다. 남부 초원 지역에는 땅다람쥐속의 설치류 등이 살고 있다.[16] 우랄 지방은 매우 오래 전부터 모피 무역을 위한 사냥이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중세 이전부터 우랄에서 기원한 핀인을 비롯한 여러 부족들이 모피를 생산하여 주변 세계와 무역하였다.[33] 러시아 제국은 17세기에서 19세기까지 세계 최대의 모피 공급 국가였으며, 제정 수입의 10%를 모피 무역에서 충당하였다.[34] 이 시기 검은담비는 스베르들롭스크주의 상징이었다.[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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