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경(王經, ? ~ 260년)은 중국 삼국 시대 조위의 관료로, 언위(彦偉)이며[1] 기주 청하군 사람이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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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본래 농민이었다.[2]. 동향인 최림(崔林)에게 발탁되었으며,[3] 같은 주 사람인 허윤(許允)과 함께 명사로 알려졌다.[2]

관직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와 이상한 일을 겪고 관로(管輅)를 찾아가 점괘를 부탁하였다. 관로는 왕경이 곧 관직을 얻을 징조라고 풀이하였고, 얼마 못 되어 왕경은 강하태수(江夏太守)가 되었다.[4] 처음에 강하태수가 되었다가 대장군(大將軍) 조상(曹爽)이 비단을 주고 (吳)와 장사하도록 명령을 내리자, 관직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에게 실상을 고했다.[1] 어머니는 왕경을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매 50대를 쳤고, 이를 들은 조상은 왕경에게 다시 죄를 주지 않았다.[1] 처음 왕경이 태수가 되자, 어머니는 “너는 농가의 아들로서 관위가 2천석(태수의 봉록으로, 태수를 일컫기도 했다)에 이르렀으나, 분수에 지나치면 상서롭지 못하니 이만하고 그치는 것이 좋겠다.”라고 했으나, 왕경은 이를 듣지 않았다.[2] 이후 두 주의 자사(刺史)를 지냈고, 사례교위(司隷校尉)까지 되었다.[2]

정원(正元) 2년(255년) 8월 2일, 옹주자사(雍州刺史)로서 촉의 대장군 강유(姜維)와 조서(洮西)에서 싸워 대패하고 적도성을 지켰다.[5] 당시 왕경은 정서장군(征西將軍) · 가절(假節) · 도독옹양제군사(都督雍揚諸軍師) 진태(陳泰)에게 강유와 하후패(夏侯覇)가 군사를 3분하여 진격하려 한다고 알렸으며, 진태는 강유 등이 군사를 3분할 수 없다고 보고 왕경을 적도에 주둔시키고 진태가 도착하는 것을 기다려 적을 공격하려고 했다.[6] 그러나 왕경은 진태가 도착하기 전에 강유와 교전하여 대패하고 만여 명만 겨우 건져 적도성을 지켰고, 강유는 곧 적도성을 포위했다.[6] 진태와 협력하여 강유의 퇴로를 끊으려는 움직임을 보여, 강유 등이 퇴각하여 겨우 구제되었다.[6] 그때 식량이 열흘분도 채 남지 않았을 정도였다.[6]

감로(甘露) 연간에 왕경은 상서(尙書)가 되었다.[2] 감로 5년(260년) 5월, 황제 고귀향공(高貴鄕公)은 시중 왕침(王沈), 산기상시(散騎常侍) 왕업(王業)과 함께 왕경을 불러들여 전횡을 부리던 사마소(司馬昭)를 치고자 했다.[5][7][8] 왕경은 옛날 노 소공(魯 昭公)이 권신 계손의여(季孫意如)를 치려다가 도리어 계손씨와 숙손씨(叔孫氏)의 반격을 받아 쫓겨난 일을 들어 황제에게 간했으나, 황제는 오히려 목숨을 내던질 각오를 굳히며 왕경의 간언을 듣지 않았다.[7] 왕침과 왕업은 이를 사마소에게 전하려 했고, 왕경도 끌어들였으나 왕경은 이를 따르지 않았다.[9] 결국 왕침과 왕업은 둘이서만 사마소에게 가서 이를 전했고,[5][7][8][10] 이를 들은 사마소가 준비를 하고 반격하여 도리어 고귀향공이 시해당했다.[5][7][8] 왕경은 태후의 조서에 따라 가족들과 함께 체포되어 정위(庭尉)에 넘겨졌고,[5] 반역죄로 처형당했다.[8] 사로잡혔을 때 어머니에게 사과했으나, 어머니는 도리어 낯빛을 변하지 않고 이 날이 언젠가 오리라고 여겼다며 함께 죽게 되었으니, 무슨 한이 있겠냐고 답했다.[11]

사후

사례교위 시절 종사로 벽소한 상웅(向雄)은 왕경이 처형당한 동시에서 곡했다.[12] 또, 옹주자사 시절의 관리 황보안(皇甫晏)은 가재를 내어 장례를 치러주었다.[1] 태시(泰始) 원년(265년), 서진 무제는 조서를 내려 왕경의 손자에게 낭중(郞中)을 주었다.[11]

같이 보기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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