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하지야-조지아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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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압하스 충돌은 압하지야에서 조지아인들과 압하스인들 간에 벌어진 민족 충돌이다.
압하지야-조지아 분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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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의 주요 지역이었던 수후미. 이 사진은 2006년에 찍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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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돌은, 친소비에트 지역에서 벌어진 유혈사태 중에 하나로, 미해결 상태로 남아있다. 조지아 정부는 압하지야에게 몇번은 큰 자치권을 제안했다. 그러나, 압하스의 분리주의 정부와 반대파들이 모드 어떤 형태이든지 조지아와의 연방 체체를 반대했다. 압하스인들은 그들의 독립을 조지아로부터 해방을 위한 전쟁의 결과라고 여겼고, 반면에 조지아인들은 역사적으로 압하지야가 언제나 조지아의 일부였다고 믿었다. 조지아인들은 1989년의 선거에서와 같이 45.7의 득표율로 압하지야와의 전쟁 전에 가장 규모가 큰 단일 민족 단체를 구성했다. 많은 사람들이 무분별한 전쟁에 돌입해서 그리고 난 다음 전쟁 후 외교에서는 무의미한 처신을 했던 에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정부를 비난한다.[출처 필요] 그 전쟁 기간 동안에, 압하스의 분리주의자 측은 250,000명의 민족적으로 조지아인인 사람들을 추방한 결과를 초래했고, 15,000명이 죽임을 당했던 전 규모의 민족 청소 군사 행동을 실시했다.[1][2][3] 조지아인 민족 청소는 리스본, 부다페스트 그리고 이스탄불에서의 유럽 안보 협력 기구(OSCE) 협의에서 공식적 인식되었다. (UN 총의회 결의안 GA/10708에서 언급되기도 했다.)[4][5] UN 안전보장 이사회는 휴전을 호소하는 일련의 결의안들을 통과시켰다.[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