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달마대비바사론》(阿毘達磨大毘婆沙論, 산스크리트어:Abhidharmamahāvibhāṣā Śāstra, Abhidharma-mahā-vibhāṣā-śāstra, 영어:Treatise of the Great Commentary on the Abhidharma, K.952[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T.1545)은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의 근본 논서인 가다연니자(迦多衍尼子)의 《아비달마발지론》(阿毘達磨發智論)을 토대로 이 논서를 주석하는 형태로 이루어진 총 200권의 방대한 분량의 논서로, 설일체유부의 교학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다른 부파와 외도의 교의를 비판하기 위해 그들의 교의를 포함하고 있으며 더불어 불교의 발전사까지 전하고 있기 때문에 불교의 백과사전과 같은 논서이다.[1][2][3]
줄여서 《대비바사론》(大毘婆沙論),《대비바사》(大毘婆沙),《비바사론》(毘婆沙論),《바사론》(婆沙論),《바사》(婆沙),《신바사》(新婆沙),《신역바사》(新譯婆沙)라고 한다.[1][4]
전통에 따르면, 불멸 후 400년 초, 기원후 100년~150년에 북인도의 건타라국(健駄羅國, 가습미라국, Kaśmīra, 월지국)의 가니색가왕(迦膩色迦王, Kaniṣka[5])의 후원 아래 이루어진 제4차 결집 때 협존자(脇尊者, Pārśva)를 비롯하여 법구(法救)·묘음(妙音)·세우(世友)·각천(覺天) 등의 논사를 포함한 500명의 대아라한이 가습미라(카슈미르)에 함께 모여 12년에 걸쳐 완성하였다.[1][3]
성립 연대에 대한 이 전통적인 설의 진실성을 반박하는 주장들이 있는데, 이 논서의 제114권에 '昔健馱羅國迦膩色迦王'(석건타라국가니색가왕: 옛날 건타라국의 가니색가왕)이라는 표현이 있어[6][7] 이에 근거하여 가니색가왕 이후에 성립된 것이라는 주장들이 있다.[1][3]
중국 당(唐)나라 때 현장(玄奘)이 656년 8월에서 659년 7월 사이에 한역하였다. 이 논서의 주석서는 없으며, 이역본으로 시타반니(尸陀槃尼)가 저술하고 승가발징(僧伽跋澄)이 383년 경에 번역한 《비바사론》(鞞婆沙論, K.971, T.1547) 14권과 북량의 부타발마(浮陀跋摩)와 도태(道泰)가 437~439년에 함께 번역한 《아비담비바사론》(阿毘曇毘婆沙論, K.951, T.1546[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60권이 있다. 이 두 논서 중 《아비담비바사론》은 원래 100권이었는데 439년의 정치적 혼란기에 유실되었다가 이후 60권으로 부분 복원된 것으로, 《구바사》(舊婆沙)라고 불리며, 이 논서 즉 《아비달마대비바사론》의 111권 이전 부분의 내용에 해당한다.[4][8]
《비바사론》《아비담비바사론》《아비달마대비바사론》의 세 논서에 분량 차이가 있는 이유는 이들이 같은 텍스트를 번역한 것이 아니라 '비바사론'(vibhāṣā)이라고 하는 설일체유부의 아비달마 코퍼스(corpus, 집성된 문헌)를 번역한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장르가 같은 텍스트를 번역한 것이다.[3] 이 세 논서로 미루어 볼 때, 비바사론(vibhāṣā) 즉 설일체유부의 아비달마 텍스트에 최소한 3번의 개정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3]
전체 내용은 가장 마지막 부분인 가타(伽陀) 납식을 제외하면, 8온(八蘊) 43납식(四十三納息)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8장 43절로 이루어져 있다. 아비달마 8건도(八犍度), 즉 잡(雜)·결(結)·지(智)·업(業)·대종(大種)·근(根)·정(定)·견(見) 등을 각 온(蘊, skandha, 분단 分段) 즉 건도(犍度, khaṇḍa, skandha) 즉 장(章)으로 한 뒤, 다시 각 온을 여러 부분의 납식(納息, varga, 구분 區分) 즉 절(節)로 나누어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1][8][40][41][42]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아비달마대비바사론》해제. 2022년 8월 20일에 확인.
1. 개요
이 경은 설일체유부의 대표적인 논서인 『아비달마발지론(阿毘達磨發智論)』을 토대로 설일체유부의 이론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산스크리트경명(梵語經名)은 Abhidharmamahāvibhāṣā Śāstra이다. 줄여서 『대비바사(大毘婆沙)』·『대비바사론(大毘婆沙論)』·『바사(婆沙)』·『바사론(婆沙論)』·『비바사론(毘婆沙論)』·『신바사(新婆沙)』라고 한다.
2. 성립과 한역
중국 당(唐)나라 때 현장(玄奘)이 656년 8월에서 659년 7월 사이에 한역하였다.
3. 주석서와 이역본
주석서는 없으며 이역본으로 『비바사론』·『아비달마발지론』·『아비담비바사론』·『아비담팔건도론』이 있다.
4. 구성과 내용
총 200권으로 구성된 이 경은 설일체유부의 대표 논서인 『아비달마발지론(阿毘達磨發智論)』을 토대로 설일체유부의 이론을 상세하게 설명하는 논이다. 방대한 분량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단순히 『아비달마발지론』의 주석에 그치지 않으며, 설일체유부의 종의(宗義)뿐 아니라 여러 소승 부파의 교의(敎義)와 불교의 발전사까지 전하기 때문에 흔히 불교의 백과사전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논에서 비판하는 대상은 수론(數論)·승론(勝論)·명론(明論)·이계론(離繫論) 등 외도나 법밀부(法密部)·화지부(化地部)·음광부(飮光部)·독자부(犢子部)·대중부(大衆部)·분별논자(分別論者)·비유사(譬喩師) 등 다른 부파의 주장이다. 이 논은 114년경에 인도 건타라국(健駄羅國)의 가니색가왕(迦膩色迦王)의 후원 아래 협(脇) 존자를 비롯한 법구(法救), 묘음(妙音), 세우(世友), 각천(覺天) 등의 논사와 500명의 대아라한이 가습미라(迦濕彌羅)에 함께 모여 12년에 걸쳐 결집한 것이라 한다. 다만 가니색가왕의 재위 연대를 비교해 그 설의 진위를 반박하는 주장이 있다. 전체 내용은 가장 마지막 부분인 가타(伽陀) 납식을 제외하고, 8온(蘊) 43납식(納息)의 8장 43절로 이루어진다. 아비달마 8건도(犍度), 즉 잡(雜)·결(結)·지(智)·업(業)·대종(大種)·근(根)·정(定)·견(見) 등을 각 온(蘊)으로 한 뒤, 다시 여러 부분의 납식(納息)으로 구분하여 논의를 펼친다. 예부터 이 논은 가습미라파(迦濕彌羅派) 유부의 주장을 담는 대표적인 문헌으로 후대의 수많은 아비달마 논서의 표본이 되었다. 이역본 가운데 전체 100권 중에서 현재 60권이 남아 전하는 『아비담비바사론(阿毘曇毘婆沙論』은 구역 바사라 하여 구바사(舊婆沙)라 하고, 현장(玄奘)이 한역한 이 논은 신바사(新婆沙), 신역바사(新譯婆沙)라 부르기도 한다.
"아비달마대비바사론[阿毘達磨大毘婆沙論]",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8월 19일에 확인:
아비달마대비바사론[阿毘達磨大毘婆沙論]
약어 대비바사론(大毘婆沙論), 바사론(婆沙論), 비바사론(毘婆沙論)
200권. 협존자(脇尊者) 외 500명 편찬, 당(唐)의 현장(玄奘) 번역. 아비달마발지론(阿毘達磨發智論)을 중심으로 하여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교리를 상세하게 해설하고, 다른 부파와 외도의 교리를 비판한 저술.
"阿毘達磨大毘婆沙論",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8월 19일에 확인:
阿毘達磨大毘婆沙論
Basic Meaning: Treatise of the Great Commentary on the Abhidharma
Senses:
(Skt. Abhidharma-mahā-vibhāṣā-śāstra, *Mahāvibhāṣā) 200 fasc. by Kātyāyanīputra 迦多衍尼子, trans. Xuanzang 玄奘 between 656–659. T 1545.27.1a-1004a. Traditionally held to have been composed in Kashmir around the second century CE; the actual date is uncertain. A key philosophical treatise of the Kāśmīra Sarvâstivāda school which presents and argues against the theories of various other schools — though not held to be the earliest extant text of that school (see 六足論, 阿毘達磨集異門足論, 施設論). Commonly referred to by the short title of 大毘婆沙論 (also 大毘婆娑論).
The Xuanzang translation of the *Mahāvibhāṣā is one of three texts of roughly the same name extant, all preserved in the Chinese canon. The others are the *Vibhāṣā-śāstra 鞞婆沙論 (T 1547) translated by *Saṃghabhūti/Saṃghabhadra 僧伽跋澄 et al. in 383; and the *Abhidharma-vibhāṣā-śāstra 阿毘曇毘婆沙論 (T 1546), translated by Buddhavarman 浮陀跋摩, Daotai 道泰 et al., in 437–439 CE. These works are obviously of a particular sort of historical interest as two of the three earliest Chinese translations from the early Sarvâstivāda Abhidharma corpus (the other being the Prakaraṇa-pāda translation by Guṇabhadra and Buddhayaśas, 衆事分阿毘曇論 T 1541).
All three extant Vibhāṣā present themselves as commentaries on the Jñānaprasthāna 阿毘達磨發智論 T 1544)/ *Aṣṭaskandha-śāstra (八犍度論 T 1543) (hereafter JñP; this text is counted as one of the 'seven [basic] treatises' 七論 of the Sarvâstivāda Abhidharma, along with the 'six feet/legs' 六足論). However, these three texts are considered not parallel versions of the same text, but rather exemplars of a genre called vibhāṣā. There is evidence that other texts existed in the same genre that are no longer extant (Willemen, Dessein and Cox 231). On the other hand, Willemen, Dessein and Cox report, on the basis of previous scholarship, that comparison of the Buddhavarman and Xuanzang versions of the text with a Sanskrit fragment in the Pelliot collection suggests that both are translations of the same basic text, and that between the Sanskrit, these two versions of the text, and the Saṃghabhūti, we have evidence of "at the very least, three distinction recensions of a vibhāṣā" (emphasis added). They further state that "the [Sanskrit] fragment represents a recension of the vibhāṣā [emphasis added] different from that represented by either Chinese translation, and... both of the Chinese translations represent expanded, and possibly later versions of the text" (233–234). Thus, it appears that relations between at least the texts represented by the latter two of the three Chinese translations are quite close, even if they do not represent exactly the same text.
The relationship between these various texts is further complicated by the fact that the Buddhavarman translation, originally in a hundred fascicles, was lost soon after its translation in a political disturbance of 439 CE, and it was only possible to partially restore it (to the extent of sixty fascicles) thereafter. The extant text is therefore reportedly only part of the original, fuller translation, and it only covers the first three of eight chapters of the Jñānaprasthāna (Willemen, Dessein and Cox, 232–233). In comparing the Buddhavarman and Xuanzang versions of the text, therefore, it is useful to bear in mind that we cannot normally expect anything appearing after p. 578a14 in Xuanzang (the beginning of JñP Ch. 4) to be matched in Buddhavarman.
The Saṃghabhūti text (*Vibhāṣāśāstra T 1547) is very different in structure from the other two extant Vibhāṣā, and comments only on two sections of the root text JñP; for details see Willemen, Dessein and Cox, 235, 228–229.
The authorship of the *Mahāvibhāṣā has sometimes traditionally been associated with the reign of the Kuṣāna King Kaniṣka (Willemen, Dessein and Cox 232), who may have been an important patron of Sarvâstivāda scholastic endeavors. It has been argued, however, on the basis of a mention of the name of this king in an anecdote in the text (昔健馱羅國迦膩色迦王, T 1545.27.593a15) that it must in fact post-date him; see Ōnishi Yoshinori, “Is the Aṣṭasāhasrikā Prajñāpāramitā Sūtra Really Arguing against the Sarvâstivādins?” Buddhist Studies Review 16, 2 (1999), 169. Another interesting argument about the date of the text relative to other materials has been advanced by Akanuma Chizen, who argues somewhat tenuously, on the basis of a single sentence in the text that he reads as referring to the prajñāpāramitā literature (此中般若說名方廣, T 1545.27.660a29) that at least some version of the prajñāpāramitā must have been known to its authors; see Hanayama Shōyū, “A Summary of Various Research on the Prajñāpāramitā Literature by Japanese Scholars,” Acta Asiatica 10 (1966), 55.
The contents of significant portions of the *Mahāvibhāṣā have been summarized in a series of articles in Japanese by Kawamura Kōshō 河村孝照 (bibliographic details of these articles may be found by searching the INBUDS database at http://www.inbuds.net/jpn/index.html under Kawamuraʼs name). Willemen, Dessein and Cox (239) also give a reference to a detailed outline of the text by Fukuhara Ryōgon 福原亮厳, in his Ubu Abhidastuma ronsho no hattatsu 有部阿毘達磨論書の発達 (Kyoto: Nagata Bunshōdō 1965), 529–598. Numerous further references to prior studies, especially in Japanese, and other bibliographic aids, may be found in Willemen, Dessein and Cox. In his Riven by Lust: Incest and Schism in Indian Buddhist Legend and Historiography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09), Jonathan A. Silk studies a very interesting instance of the working methods of the Vibhāṣā authors, in the particular instance of the Mahādeva narrative. See further 大天.
References:
Willemen, Charles, Bart Dessein and Collett Cox. 1998. Sarvâstivāda Buddhist Scholasticism. Leiden: Brill. See esp. 229-239.
[Michael Radich, Dan Lusthaus]
"阿毘達磨大毘婆沙論(아비달마대비바사론)",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19일에 확인:
阿毘達磨大毘婆沙論(아비달마대비바사론)
【범】 (Abhidharma)mahāvibhāṣa(śāstra). 200권. K-952, T-1545. 5백 대아라한 편저(編著). 당(唐)나라 때 현장(玄奘)이 656년 8월에서 659년 7월 사이에 번역하였다. 줄여서 『대비바사』ㆍ『대비바사론』ㆍ『바사』ㆍ『바사론』ㆍ『비바사론』ㆍ『신바사』라고 한다. 설일체유부의 대표적인 논서인 『아비달마발지론』을 토대로 하여 설일체유부의 이론들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논서이다. 불멸 후 400년 초에 가니색가왕이 5백 나한을 모아 불경을 결집할 때 『발지론(發智論)』을 해석케 한 책으로서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근본 성전이다. 따로 북량의 부타발마와 도태가 함께 번역한 『아비담비바사론(阿毘曇毘婆沙論)』 60권(439)은 이 책의 구역으로 『구바사』라 한다. 이역본으로 『비바사론』ㆍ『아비달마발지론』ㆍ『아비담비바사론』ㆍ『아비담팔건도론』이 있다.
"迦膩色迦王",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8월 20일에 확인:
迦膩色迦王
迦膩色迦,梵名 Kaniṣka。又作罽膩迦王、罽膩伽王、壇罽膩吒王、割尼尸割王、迦膩瑟吒王。古代印度犍陀羅國(月氏國)之國王。係貴霜王朝(梵 Kuṣāna)之第三世王,其年代被認為是印度政治史上、文化史上之關鍵時代,然有關其出世、即位等年代,眾說紛紜:(1)據僧伽羅剎所集經序、雜寶藏經卷七所載,王出世於佛陀入滅後七百年頃。(2)毘婆沙經序載,王出世於佛陀入滅後六百年頃。(3)婆藪槃豆法師傳、彰所知論卷上所載,其年代為佛陀入滅後五百年。(4)據大毘婆沙論卷二OO、大慈恩寺三藏法師傳卷二載,約於佛陀入滅後四百年。(5)洛陽伽藍記卷五載,約於佛陀入滅後三百年。大唐西域記主張王之年代為佛陀入滅後四百年頃,即西紀一世紀之時,近代學者大多同意此說。另有根據三國志魏書卷三「明帝太和三年(229),大月氏王波調(迦膩色迦之孫)遣使至魏」之記載,而主張王之年代為西紀第二世紀者。
迦膩色迦王繼阿育王之後建設大帝國,支配全北印度。於印度佛教史上,與阿育王並稱為護持佛法之二王。將首都由中亞遷至古印度西北犍陀羅地區之富樓沙城(今巴基斯坦白夏瓦),其領土東至瓦拉那西,南至頻陀山脈,北及中亞細亞、伊朗等地。曾與中國、希臘、羅馬文化密切接觸,造成東西文化之融合。王初時信奉瑣羅亞斯德教,不信罪福,輕侮佛法,據聞,因受馬鳴菩薩之感化始歸依佛教。另於大唐西域記卷二、雜寶藏經卷七等,載有不同之歸依因緣。後來極力保護佛教,建立說一切有部之寺院,並召集脅尊者、世友、法救、覺天等五百聖眾,於迦濕彌羅結集三藏,而後注釋之;據云,現存之大毘婆沙論兩百卷即其中之論藏釋論,惟此事真偽殊難確定。於其治世,佛教普遍弘傳,高僧輩出,促進了大乘經典之編纂。而自迦膩色迦王至其子富西色迦王(梵 Huviṣka)時代,深受希臘文化影響,故犍陀羅之佛教美術盛極一時。〔大毘婆沙論卷一一四、付法藏因緣傳卷五、大唐西域記卷三、Rhys Davids: Buddhism; V. A. Smith: Early History of India〕p5012
오백 아라한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김석군 개역(K.952, T.1545). 《아비달마대비바사론》 제114권. 2022년 8월 20일에 확인:
“옛날 건타라국(健馱羅國)의 가이색가왕(迦膩色迦王)에게 한 사람의 황문(黃門)이 항시 안의 일을 감독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잠시 성 밖을 나갔다가 소떼가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수는 5백 마리가 더 되었다. 성안으로 돌아오면서 소를 모는 이에게 물었다.
‘이것은 어떤 소들이오?’
그러자 대답했다.
‘이 소들은 장차 거세(去勢)할 것들입니다.’
이때에 황문은 곧 자기 자신을 생각하면서 ≺나는 전생의 악업으로 인하여 고자[不男]의 몸을 받고 있다. 이제 재물로써 이 소들의 재난을 구해 주리라≻고 하고, 마침내 그 값을 치르고 모두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다.
이 선업의 힘 때문에 이 황문은 곧 남자의 몸으로 회복되었으므로 몹시 기뻐하면서 곧 성안으로 들어가 궁문(宮門)에 서 있으면서 심부름을 시켜 왕에게 아뢰었다.
‘청컨대 들어가 뵙고 싶습니다.’
왕이 불러들여 괴히 여기면서 그 까닭을 묻자, 이에 황문은 위의 일들을 자세히 아뢰었다. 왕은 그의 말을 듣고 놀라며 기뻐하면서 후히 값진 재보를 하사하고서는 높은 관직을 내려 바깥일을 맡게 했다.”
이와 같이 선업은 반드시 상속을 기다리거나 혹은 상속을 거쳐서야 비로소 그 과보를 받게 된다.
"數論派(수론파)",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20일에 확인:
數論派(수론파)
【범】 Sāṃkhya 승기야(僧企耶)ㆍ승카(僧佉)라 음역. 인도 6파 철학의 하나. 옛날 인도에 있던 외도의 1파. 가비라 선인(仙人)이 처음 주장. 25제(諦)를 세워 일체 만법의 생기(生起)로부터 유정윤회(有情輪廻)의 시종(始終)과 해탈하는 일을 말함. 주장하는 성전(聖典)은 『금칠십론』.
"數論",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8월 20일에 확인:
數論
Basic Meaning: Sāṃkhya
Senses:
An Indian brahmanistic philosophical sect founded by Kapila 數論師. Often mentioned in Buddhist treatises as one of the six non-Buddhist schools 六外道 and proponents of the four non-Buddhist views of causation 外道四執, also called 數論外道. Kapila 數論師, the founder of the Sāṃkhya philosophy, 'enumerated' 數 all concepts in twenty-five categories (tattvas, or true principles) 二十五諦, with puruṣa 神我 and prakṛti 冥性 at the head and the others in ordered progress. The object of this paradigm was to effect the final liberation of the twenty-fifth tattva (puruṣa, 'soul' ) from the fetters of the phenomenal creation by conveying the correct knowledge of the twenty-four other tattvas, and rightly discriminating the puruṣa from them. Inter alia Sāṃkhya also teaches 'the eternity and multiplicity of souls' (Eitel). Vasubandhu wrote in criticism of the system (Skt. sāṃkhya, sāṃkhya-vāda, sāṃkhya-pakṣa, sāṃkhyīya). 〔成唯識論 T 1585.31.2b23〕 [Charles Muller; source(s): Nakamura, Hirakawa, JEBD]
"勝論",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8월 20일에 확인:
勝論
Basic Meaning: Vaiśeṣika-śāstra
Senses:
Or the Vaiśeṣika school of Indian philosophy. See 勝論宗. 〔成唯識論 T 1585.31.2c22〕 [Charles Muller; source(s): Hirakawa, JEBD]
"勝論宗",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8월 20일에 확인:
勝論宗
Basic Meaning: Vaiśeṣika
Senses:
A school of Indian philosophy, whose foundation is ascribed to Kaṇâda 迦那陀 (or Ulūka). He and his successors are respectfully styled 論師 and disparagingly as 論外道. The school, when combined with the Nyāya, is also known as Nyāyavaiśeṣika. It is the oldest of the so-called 'six non-Buddhist schools' of Indian philosophy 六外道. The Sanskrit vaiśeṣika literally means 'referring to the distinctions (viśeṣa).' The Vaiśeṣikas chiefly occupied themselves, like the orthodox Nyāya philosophy, with the theory of knowledge, but it differed by distinguishing only six categories of cognition 六句義 (padârthas), viz. substance, quality, activity, species, distinction, and correlation, also a seventh of nonexistence, and nine substances possessed of qualities, these 九陰 being: the five elements, air, fire, water, earth, ether, together with time, space, spirit (manas), and soul (ātman). Vaiśeṣika maintains the view that through the fulfillment of particular duties one may come to know these six categories, and that this knowledge leads to bliss. Kaṇâda presents his system in the Vaiśeṣika-sūtra, which consists of ten adhyāyas (chapters). Also written 獯狐子. They are also named in Buddhist texts as proponents of one of the four non-Buddhist views of causality 外道四執. Transliterated as 衞世師, 鞞世師, 鞞思迦, 吠世史迦, etc. Cf. Keith, Indian Logic and Atomism, and Dasgupta, History of Indian Philosophy. (Tib. bye brag pa) 〔翻譯名義集 T 2131.54.1145a28 〕 〔因明入正理論疏 T 1840.44.118a8〕 [Charles Muller]
"明論",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8월 20일에 확인:
明論
Basic Meaning: fields of knowledge
Senses:
(Skt. vidyā, Tib. rig pa) The classics of learning. The vedas or fields of knowledge in classical Indian society. The Brahmans posited four fields while the Buddhists posited five. When referring to Brahmanic or Hindu tradition 明論 refers to the Vedas 韋陀 (also written 韋陀論 and 吠陀論), of which there were four. The Pāli Nikāyas and Indic Āgamas often refer to 'followers of the Three Vedas' 三明論者 or 'Brahmins versed in the Three Vedas' 三明婆羅門. The three are Ṛg-, Yajur- and Sāma-vedas. Eventually the Atharva-veda was added as a fourth. The Four Vedas are called 四明論 and 四吠陀書.
In the Pāli Tevijja sutta the Buddha shifts the meaning of vijja (= vidyā = veda) from the Three Vedas (tevijja) to three types of knowledge (vijja = vidyā), viz. knowing his own past lives, knowing the past lives of others, and knowing how to eliminate the āsavas 有漏, the festering proclivities that bind one to saṃsāra. Buddhists further expanded that sense of veda qua vidyā, so that at Nālandā Buddhists were encouraged to study five fields of knowledge 五明 or 五明論 (pañca-vidyā). 〔瑜伽論 T 1579.30.359c1〕
[Dan Lusthaus; source(s): Ui, Nakamura, Hirakawa, YBh-Ind]
"順世外道(순세외도)",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20일에 확인:
順世外道(순세외도)
인도의 한 학파. 로가야다(路歌夜多)라 음역. 기원(起源)은 늦어도 6세기 이전. 보통 쨔르바카(Cārvāka)라 함은 이 학파의 시조의 이름인 듯함.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 4원소의 존재만을 인정하고, 정신을 부정하여 육체적 욕망만을 만족함으로써 목적을 삼는 극단의 쾌락주의의 1파. ⇒로가야저가(路迦耶底迦)ㆍ로가야타(路迦耶陀)
"순세외도[順世外道]",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8월 20일에 확인:
순세외도[順世外道]
산스크리트어 lokāyata 지(地)·수(水)·화(火)·풍(風)의 4원소와 그 원소의 활동 공간인 허공만을 인정하는 유물론적인 입장의 외도. 인간도 4원소로 이루어져 있어 죽으면 이들 원소는 각각 흩어지므로 영혼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선악이나 인과도 없고, 과거와 미래도 없다고 함. 따라서 현재의 감각과 쾌락만을 인생의 목표로 함. 육사외도(六師外道) 가운데 아이타시사흔파라(阿夷陀翅舍欣婆羅, ajita-kesakambala)가 이러한 입장임.
동의어: 노가유다, 역노가야타
"順世外道",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8월 20일에 확인:
順世外道
Basic Meaning: Lokâyatika
Senses:
Or, Vāma-lokâyata. A materialistic school that arose in India about the sixth century BCE. "A materialist, follower of the Cārvāka 迦爾瓦卡 system, atheist, unbeliever" (M-W) Interpreted as worldly, epicurean, hedonist. They believed that that human existence was nothing more than a combination of physical elements and that the soul perishes with the body, with the pleasures of the senses being the highest good. Transliterated as 逆路伽耶陀, 路伽耶, 路伽耶陀, and 路柯耶胝柯. (Skt. Lokâyata) 〔大方廣佛華嚴經疏 T 1735.35.799c10; 一切經音義 T 2128.54.399c15〕 [Charles Muller; source(s): Ui,Soothill, JEBD, Hirakawa]
"離繫",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8월 20일에 확인:
離繫
Basic Meaning: dissociated (from binding)
Senses:
To free oneself from the binding of the afflictions (Skt. visaṃyukta, visaṃyoga,viyoga, visaṃyoga-phala, savisaṃyoga, nirgrantha; Tib. rnam par mi ldan pa). 〔 成唯識論 T 1585.31.40a5〕 [Charles Muller; source(s): Stephen Hodge, Hirakawa]
A translation of the name of Nirgrantha 尼乾子, the founder of Jainism—therefore a reference to him, or a Jainist. [Charles Muller; source(s): Nakamura]
"離繫子",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8월 20일에 확인:
離繫子
Basic Meaning: Nirgrantha adherent
Senses:
An ascetic Jain group, adherents of which abandoned all worldly connections, living naked in the forest. Also written 離繫者 (Skt. nirgrantha-śrāvaka). 〔成唯識論述記 T 1830.43.245a12, 瑜伽論略纂 T 1829.43.40c2〕 . [Charles Muller]
"法藏部(법장부)",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20일에 확인:
法藏部(법장부)
【범】dharmaguptāh 소승 20부의 하나. 담무굴다가(曇無屈多迦)ㆍ달마급다(達磨笈多)ㆍ담무덕(曇無德)이라 음역. 법밀부(法密部)ㆍ법호부(法護部)라고도 한다. 불멸 후 300년 중에 상좌 화지부(上座化地部)에서 갈려 나온 일파. 개조: 목건련. 법호가 이 파를 세우고, 교리로는 5장(藏)ㆍ4상(相)등을 말함.
"化地部(화지부)",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20일에 확인:
化地部(화지부)
【범】 Mahīśāsaka 마혜사사가(磨憓奢娑迦)ㆍ미희사사가(彌喜捨娑柯)라 음역. 정지(正地)ㆍ교지(敎地)ㆍ대불가기(大不可棄)라 번역. 소승 20부의 하나. 불멸후 3백년 경에 상좌부(上座部) 중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에서 갈려 나온 일파. 이 파의 초조(初祖)인 불가기(不可棄)는 본래 국왕이었으나, 왕의 자리를 버리고 출가하여 유부종(有部宗)에 들어가서 불법을 넓히다가 뒤에 다른 일파를 세움. 이 부의 이름은 파조(派祖)가 국왕이던 데서 나왔으니, 국왕은 국토, 곧 지(地)를 화(化)하는 사람이란 뜻으로 이렇게 이름함. 교리는 대중부(大衆部)와 거의 같으며, 현재유체과미무체설(現在有體過未無體說)을 세우고, 견도(見道)에서 공무아(空無我)의 행상(行相)으로써 4제를 일시에 현관(現觀)함을 말하며, 또 중유(中有)를 부정하고, 5식(識)에 잡염(雜染)의 힘이 있다고 하며, 9무위(無爲)를 세워서, 예류과퇴(預流果退)ㆍ나한과불퇴(羅漢果不退)를 말함. 현수(賢首)는 이 부를 법무거래종(法無去來宗)에 소속시킴. ⇒미사색부(彌沙塞部)
"飮光部(음광부)",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20일에 확인:
飮光部(음광부)
【범】 kāśyapīya 소승 20부의 하나. 가섭비(迦葉毘)ㆍ가섭유(迦葉遺ㆍ迦葉維)라 음역. 음광은 번역한 말. 파조(派祖)인 가섭파(迦葉波)의 선조는 신선으로 몸에서 빛을 내면 다른 빛은 그 빛에 흡수되어 빛을 잃는다고 함. 또 선세부(善歲部)라고도 함. 불멸 후 300년경 상좌부(上座部) 중의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에서 나뉘었고, 교의(敎義)는 법유아무설(法有我無說)을 주장. 설일체유부와 같고, 다른 것은 법장부(法藏部)의 주장과 같음.
"犢子部(독자부)",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20일에 확인:
犢子部(독자부)
【범】 Vātsīputrīya 또는 바추부라부(婆麤富羅部)ㆍ발사불저리여부(跋私弗底梨與部)ㆍ가주자제자부(可住子弟子部). 불멸 3백년 경에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에서 갈라진 학파. 만유(萬有)를 유위(有爲)의 3세(世)와 무위(無爲)와 불가설(不可說)의 5장(藏)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중생에게는 실아(實我)가 있다고 주장. 이는 불교의 진무아(眞無我)의 이치에 어긋나므로, 이 학파를 불법 안 외도, 또는 부불법(附佛法) 외도라 함. ⇒발사불다라부(跋私佛多羅部)
"大衆部(대중부)",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20일에 확인:
大衆部(대중부)
【범】 Mahāsaṃgika 마하승기부(摩訶僧祇部)라 음역. 이것은 남방과 북방이 각각 달리 전함. (1) 북방에서 전하는 것. 불멸 116년(429 B.C.)경 학승 대천(大天)이 5개조의 새 주장[五事妄言]을 내세워 전통적 보수주의 불교에 반대하였다. 이 자유주의 일파를 대중부라 한다. 이들은 생사ㆍ열반은 모두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창, 현재만을 인정하며 과거ㆍ미래를 부정, 9무위(無爲)를 내세워 심성이 본디 깨끗함을 주장, 응신(應身) 밖에 보신(報身)을 내세우는 등 뚜렷한 교리의 발전을 보였다. 그뒤 약 3백년 동안에 일설부(一說部)ㆍ설출세부(說出世部)ㆍ계윤부(鷄胤部)ㆍ다문부(多聞部)ㆍ설가부(說假部)ㆍ제다산부(制多山部)ㆍ북산주부(北山住部)의 분파를 내었다 한다. (2) 남방에서 전하는 것. 불멸 후 1백여 년에 비야리의 발기(跋耆) 비구가 10개조의 새 주장을 내세워 종래의 지계법(持戒法)을 깨뜨렸으므로, 장로 야사(耶舍)가 사방의 학승을 모아 비야리의 바리가원(婆梨迦園)에서 그 열 가지의 옳고 그름을 평론하였다. 이때 이를 옳다고 한 동방 발기족의 자유관용파(自由寬容派)를 일컬어 대중부라 한다. 이들은 그 뒤 백년 동안에 계윤부ㆍ일설부ㆍ설가부ㆍ다문부ㆍ제다산부의 5분파를 내어 본파와 합하여 모두 6부가 되었다 한다. ⇒마하승기부(摩訶僧祇部)ㆍ승기부(僧祇部)
"譬喩師(비유사)",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20일에 확인:
譬喩師(비유사)
비유자(譬喩者)라고도 함. (1) 불멸 후 1백년 경에 중북인도 달차시라국(怛叉翅羅國)에서 출생한 소승 경량부(經量部)의 개조(開祖). 구마라다(鳩摩邏多)는 비유를 많이 썼으므로 세간에서 비유사라 함. (2) 경량부. 비유를 많이 쓴 구마라다의 학설을 종(宗)으로 삼았으므로 이렇게 말함.
"譬喩師",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8월 20일에 확인:
譬喩師
Basic Meaning: Dārṣṭāntika
Senses:
See 譬喩部. [Charles Muller]
The name of the founder of the Sautrāntika school 經量部; Dārṣṭāntika is also used as a name for the school. He is also known in Chinese as 譬喩論師 and 日出論者." [Charles Muller; source(s): Soothill]
Śrīrāta, the disciple of Kumāralabdha. [Charles Muller; source(s): JEBD]
"犍度(건도)",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20일에 확인:
犍度(건도)
【범】 khaṇḍa; skandha 【팔】 khandaka 또는 건타(蹇陀)ㆍ건도(乾度)ㆍ건도(建圖)ㆍ색건타(塞犍陀)ㆍ색건도(塞建圖)ㆍ사건도(娑犍圖). 번역하여 온(蘊)ㆍ취(娶)ㆍ음(陰)ㆍ중(衆)ㆍ견(肩)ㆍ분단(分段). 같은 종류의 법을 모아서 한 몫씩 묶어 놓는 것. 경론(經論) 중의 부문을 가리키는 명칭, 편장(篇章)에 해당. 계 받는 일을 밝힌 부문, 곧 수계장(受戒章) 또는 수계편(受戒篇)을 수계건도라 하는 것과 같다. ⇒자자건도(自恣犍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