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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뤼흐 스피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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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뤼흐 스피노자(네덜란드어: Baruch Spinoza, 라틴어: Benedictus de Spinoza, 히브리어: ברוך שפינוזה, 포르투갈어: Bento de Espinoza, 1632년 11월 24일 ~ 1675년 2월 21일)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난 포르투갈계 유대인 혈통의 철학자이다.[1] 스피노자가 쓴 저작의 과학적 태도와 포괄성, 철학사적 중요성은 스피노자 사후 오랜 세월동안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으나 오늘날 스피노자는 18세기 계몽주의와 근대 성서 비판의 토대를 놓은 유럽 17세기 철학의 합리주의자 세 거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인정받는다.[2] 대작 《에티카》에서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의 정초주의를 부분적으로 받아들였으나, 정신-육체 이원론에는 반대하였으며 서양 철학에서 중요한 철학자로 손꼽힌다. 헤겔은 모든 근대 철학자에 대해 "그대는 스피노자주의자거나 아예 철학자가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하였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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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 정보 | |
출생 | 1632년 11월 24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
사망 | 1677년 2월 21일 (44세) 네덜란드 헤이그 |
시대 | 근대 철학 |
지역 | 서양 철학 |
학파 | 결정론, 공화주의, 범신론, 스토아 학파, 유물론, 일원론, 정합주의, 합리론 |
스피노자는 네덜란드의 유대인 공동체에서 생활해, 유대 문화에 대해 정통하였으나 비판적인 사상 때문에 유대인 랍비들은 스피노자에게 제명 조치하고, 23살 때에 스피노자는 유대 사회에서 추방되었다.[1][2] 또 스피노자의 모든 저작은 가톨릭 교회의 금서 목록에 올랐다.
스피노자는 안경 알을 깎는 일로 어렵게 생계를 유지했으며, 생전에 교수직을 비롯하여 보수나 명예를 거부하였고 가족의 유산은 누이에게 주었다. 스피노자는 자연 실체와 도덕적 본질을 합일하였는데 이 작업은 고대 스토아 학파의 사상을 근대적 의미로 부활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의 철학자이자 혁명가인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스피노자가 자기원인(Causa sui)으로서의 자연을 규명한 것과 동시에 이것이 세계 만유(존재성) 및 인간성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혔다는 점에서 그가 당대 종교성으로 대표되는 중세기적 몽매주의(蒙昧主義)로부터 인간을 해방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였다고 하였다. 또한 도덕적 특성과 철학적 성취를 두고 20세기의 철학자 질 들뢰즈는 스피노자를 '철학의 왕자'라고 칭하기도 하였다.[4] 스피노자는 폐병으로 44살에 세상을 떠났는데, 사인은 안경을 깎을 때 나는 유리 먼지 때문에 결핵이나 규폐증이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 스피노자는 덴하흐 스파위(Spui)거리에 있는 신교회(De Nieuwe Kerk)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