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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종의 왕비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소헌왕후 심씨(昭憲王后 沈氏, 1395년 10월 20일(음력 9월 28일) ~ 1446년 4월 28일(음력 3월 24일))는 조선 세종의 왕비이다. 본관은 청송이며, 별칭은 공비(恭妃), 경빈(敬嬪), 시호는 선인제성소헌왕후(宣仁齊聖昭憲王后)이다.
소헌왕후 昭憲王后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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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세자빈 | |
재위 | 1418년 7월 20일 ~ 9월 18일 (양력) |
전임 | 숙빈 김씨 (수성부부인) |
후임 | 폐빈 김씨 (휘빈 김씨) |
조선 세종의 왕비 | |
재위 | 1418년 9월 18일 ~ 1446년 4월 28일 (양력) |
전임 | 원경왕후 민씨 |
후임 | 정순왕후 송씨 |
이름 | |
시호 | 소헌(昭憲) |
휘호 | 선인제성(宣仁齊聖) |
작호 | 공비(恭妃) · 경빈(敬嬪) · 경숙옹주(敬淑翁主) 삼한국대부인(三韓國大夫人) |
신상정보 | |
출생일 | 1395년 10월 20일 (양력) |
출생지 | 조선 경기도 양주 사저 |
사망일 | 1446년 4월 28일(양력) | (50세)
사망지 | 조선 한성부 수양대군 사저 |
가문 | 청송 심씨 |
부친 | 청천부원군 심온 |
모친 | 삼한국대부인 순흥 안씨 |
배우자 | 세종 |
자녀 | 8남 2녀 |
능묘 | 영릉(英陵)
경기도 여주시 세종대왕면 영릉로 269-50 |
1395년(태조 4년), 문하시중 심덕부의 아들인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 심온과 삼한국대부인 안씨의 장녀로 출생하였다. 1408년(태종 8년), 당시 충녕군(忠寧君)이었던 세종과 혼례를 올리고 경숙옹주(敬淑翁主)에 봉해졌다.[1]
1417년(태종 17년) 삼한국대부인(三韓國大夫人)에 봉해졌다.
1418년(태종 18년) 음력 6월, 충녕대군이 왕세자에 책봉되자 경빈(敬嬪)이 되었으며,[2] 그해 음력 8월 충녕대군이 태종의 뒤를 이어 즉위하자 중궁(中宮)이 되어 공비(恭妃)[3]에 책봉되었다.[4]
같은 해, 아버지 심온과 숙부 심정이 태종에 의해 역모죄로 처형당하였고 소헌왕후의 어머니와 친족들은 관비가 되었다. 소헌왕후에 대해서도 폐비(廢妃) 논의가 있었으나 내조의 공이 크고, 왕자를 2명이나 출산하였으며 당시에 안평대군을 임신중이었기에 폐비가 되지 않았다. 1426년, 어머니 안씨와 가족들은 천안에서 제명되고 직첩이 복원된다.
1432년(세종 14년), 국초에 사용하던 왕비와 세자빈에게 미칭을 붙이던 제도를 폐지하면서 공비에서 왕비(王妃)로 개봉되었다.
생애 후반의 세종과 소헌왕후는 불교에 귀의하여, 자주 불법(佛法)을 행하였다.
1444년(세종 26년)과 1445년(세종 27년), 어머니인 삼한국대부인 안씨와 아들인 광평대군과 평원대군을 연이어 잃고 불교에 의지했으며 승려를 모아 기도를 하고 불법을 행하였다. 또한 법당을 방문하고 석탑을 조성하기도 하였는데, 당시의 집현전의 학자들이 반발하였다.
1446년(세종 28년) 3월 10일, 병이 들자 세종은 죄수를 방면하고 산천초목에 기도를 드렸으며 승려들에게 불사를 주문하여 소헌왕후의 병에 감응하게 하였다. 병세가 악화되자 세자는 식사를 거두고 병간호를 하였으나 3월 24일, 소헌왕후는 수양대군의 저택에서 승하하였다.[5] 시호는 소헌(昭憲)이며, 문종 대에 선인제성(宣仁齊聖)의 존호가 올려졌다. 명나라가 세종의 시호를 장헌(莊憲)으로 내려주자 '헌' 자가 같으니 문종이 이를 고쳐야 할지 신하들에게 하문했지만 왕과 왕비의 시호가 같은 사례가 많아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답하여 고치지 않았다.
능은 경기도 여주시 세종대왕면 왕대리에 위치한 영릉(英陵)이며, 세종과 합장되었다.
소헌왕후 영릉 지문
- 왕후가 인자하고 어질고 성스럽고 착한 것이 천성에서 나왔는데,
- 중궁에 정위한 뒤로는 더욱 스스로 겸손하고 조심하여 빈잉(嬪媵)을 예(禮)로 접대하고,
- 아래로 궁인이 미치기까지 어루만지고 사랑하여 은혜를 가하지 않음이 없으며,
- 후궁이 나아와서 뵙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위로하고 용납하는 것을 가하며,
- 만일 상감께서 총애하신 자는 특별히 융성한 대우를 주어, 지극한 정[至情]이 사이가 없으며,
- 낳으신 여러 아들을 모두 후궁으로 하여금 기르게 하시니,
- 후궁이 또한 마음을 다하여 받들어 길러서 자기 소생보다 낫게 하였으며,
- 또 일을 위임하여 의심하지 않고 맡기시니, 후궁이 또한 지성껏 받들어 순(順)히 하여 감히 게을리 함이 없었다.
- 이 때문에 빈(嬪)·잉(媵)이하가 사랑하고 공경하기를 부모 대접하듯이 하였다.
- 서출의 자식 보기를 모두 소생 아들과 같이 하였으며,
- 어선(御膳)이 나오면 반드시 몸소 살펴보아 힘써 정성과 공경을 다하였으며,
- 국모로 있은 지 29년 동안에 경계(儆戒)의 도움이 있고,
- 연안(宴安)의 사사(私事)가 없었으며, 한 번도 친척을 위하여 은혜를 구하지 않았으며,
- 또 절대로 바깥 일에 참여하지 않고,
- 비록 궁중에서 날마다 쓰는 자디잔 일이라도 반드시 위로 들리어 감히 임의로 하는 일이 없었다.
부모
배우자
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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