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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성종 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실록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성종강정대왕실록》(成宗康靖大王實錄) 또는 《성종실록》(成宗實錄)은 1469년 음력 11월부터 1494년 음력 12월까지 조선 성종 시대의 사실을 기록한 실록이다. 총 297권 47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조선왕조실록》의 일부를 이룬다.
1469년(성종 즉위년) 음력 11월부터 1494년(성종 25년) 음력 12월까지 총 25년 1개월에 걸친 성종 시대의 국정 전반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편년체로 기록한 실록이다. 총 297권 47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조선왕조실록》의 일부를 이룬다. 원본은 활자본이다.
1495년(연산군 1년) 음력 4월 19일 당시 영의정 노사신과 우의정 정괄 등이 《성종실록》의 편찬을 건의하자, 연산군이 이를 받아들여 편찬하게 하였다.[1] 편찬 작업 도중 무오사화가 발생하였으나 실록 편찬 자체는 큰 지장 없이 진행되었으며, 1499년(연산군 4년) 음력 5월에 완성을 보아 실록 편찬자들에게 포상하였다.[2]
편찬에 참여한 인원은 영관사에 신승선, 감관사에 어세겸과 성준 등 총 89명이다. 처음에 신승선이 총재관을 맡다가 후에 성준으로 교체된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때 전주사고본을 제외한 나머지 실록이 소실되어 1603년(선조 36년)부터 1606년(선조 39년) 사이에 모든 실록을 다시 인쇄하였다. 이때 《성종실록》도 3부가 다시 간행되어 전주사고본 및 교정본을 포함하여 총 5부가 있게 되었으나, 1624년(인조 2년) 이괄의 난 때 춘추관에 둔 1부는 소실되었다. 이후 1929년부터 1932년까지 경성제국대학에서 영인본을 간행하였다.[3]
당시 《성종실록》의 사관으로 참여하던 김일손은 세조가 아들 덕종의 후궁 귀인 권씨와 귀인 윤씨를 범하려 했다는 내용을 사초에 기록하였다. 이에 김일손을 심문하였는데,[4] 이튿날 김일손이 《조의제문》까지 사초에 실은 것이 밝혀졌다.[5] 특히 《조의제문》을 세조가 단종의 보위를 찬탈한 것을 초나라 의제에 빗대어 비난하기 위해 실었다고 주장한 유자광은, 김일손의 스승 김종직의 문집에서 《조의제문》이 실린 것을 찾아내었다. 유자광은 이를 발전시켜 무오사화를 일으켰다.[6] 후일 김일손 등은 참형을 당하였고, 이 사초를 보고도 즉시 보고하지 않은 어세겸, 이극돈, 유순, 윤효손 등은 파직을 당하였다.[7]
한편 무오사화는 다른 사화들과는 달리 "사화(史禍)"로 표기하기도 하는데, 이는 무오사화의 원인이 《성종실록》의 사초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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