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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빙사
1883년 미국에 파견한 조선의 외교사절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보빙사(報聘使)는 1883년 7월 조선에서 최초로 미국 등 서방 세계에 파견된 외교 사절단이다.[1] 미국과 외교관계를 맺은 후 조선주재 미국 초대공사가 부임하자 이에 답방 형식으로 민영익을 대표로한 사절단을 워싱턴으로 보냈다. 이후 사절단은 미국과 유럽 각지를 견학한 후 귀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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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줄 왼쪽부터 홍영식, 민영익, 서광범, 로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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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줄 왼쪽부터 퍼시벌 로웰, 홍영식, 민영익, 서광범, 중국인 통역 우리탕.
본래 보빙사란 외국 사신의 방문에 대한 답방의 형태로 파견하는 사절단을 의미하지만, 일반적으로 1883년 미국에 파견된 사절단을 가리키는 용어로 통용된다. 당시 조선은 곧바로 미국에 공사관을 개설하는데 어려움이 있었기에 사절단을 파견하였다.[2]
사절단의 의례적 목적은 답례와 친선 도모였으나 실질적 목적은 근대화 정책 추진에서 미국의 협력을 얻기 위해서 였다. 또한 임오군란 후 청의 간섭이 강화되자 미국으로부터 조선이 완전한 자주독립국임을 공인받고자 했고, 조선 정부의 외교, 교육 등의 분야에 미국인 고문관과 군사교관을 초빙하고자 했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