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동천(白雲洞川)은 창의문 기슭에서 발원하는 하천으로, 청계천의 도성 내 지류 중 가장 길어 청계천의 본류로 간주된다. 준천사실에는 백운동래자(白雲洞來者)로, 한경지략에는 백운동천수(白雲洞川水)로, 동국여지비고에는 원출인왕산백운동(源出仁王山白雲洞)으로 되어 있다.[2] 1950년대 이후에는 지역명을 따 청운천(淸雲川)으로 불리기도 했다.
현재는 계곡수가 유입되는 상류의 일부를 제외하고 완전히 복개되어 자하문로 등으로 쓰이고 있다. 서울특별시는 2013년 11월에 ‘청계천 2050 마스터플랜 계획’을 발표하였는데, 이에 따르면 2030년까지 백운동천의 계곡수를 청계천으로 유입시킬 예정이다.[3] 복개 이전의 하천은 현재의 청계광장 위치에서 삼청동천(청계천의 중요 지류)과 합류하였다.
- 1925년 : 도렴동~내자동~신교동 간 1,395m 백운동천 복개 착공. 도렴동~내자동 간 약 290m의 복개도로(현 새문안로3길) 개통.[4][5]
- 1926년~1929년 : 내자동~신교동 간 약 970m의 복개도로(현 자하문로) 건설. 당시에는 현재의 자하문로 서쪽 차선을 차지하던 2차선 미만의 도로였음.[6]
- 1978년 12월 27일 : 내자동~청운국민학교앞 1.6km 4차선 확장 개통. 백운동천 복개도로와, 현재의 자하문로 동쪽 차선을 차지하던 2차선 미만의 도로 사이에 있던 집들을 철거하여 확장함.[7][6]
백운동 계곡은 백운동천 상류의 계곡부를 의미한다.
조선 시대의 백운동천의 다리 목록이다. 송기교 이후부터 영도교까지의 다리는 이곳을 참고한다.
- 신교(新橋) : 신교동 70번지 신교119안전센터와 궁정동 9번지 사이에 있었다.[8] 서울청운초등학교에 난간석이 남아 있다.[9]
- 자수궁교(慈壽宮橋) : 옥인동 21번지 자수궁 앞[10], 지금의 자하문로-자하문로16길-17길 사거리 부근에 있었다. 줄여서 자수교(慈壽橋) 또는 자교(慈橋)라고도 불렸으며[11], 승정원일기에는 자시궁교(慈始宮橋)로도 기록되어 있다. 1927년에 백운동천에 암거 공사를 진행하면서 소멸되었다.[12]
- 금천교(禁川橋) : 지금의 금천교시장 앞에 있었으며, 고려 충숙왕 때 지어졌다고 한다.[13] 물이 흘러나가는 곳은 마치 세 개의 구멍이 있는 수문과 같은 모양으로 되었는데, 돌 위에는 귀면과 연꽃 등의 문양이 양각되어 궁궐에 온 듯한 느낌을 들게 하였다.[14] 1928년 백운동천을 복개하여 지금의 자하문로를 만들면서 철거되었다.[15] 금청교(禁淸橋)[16]나 금충교(禁忠橋)[17]로도 불렸으며, 궁궐의 금천과는 관계없다.
- 종침교(琮沈橋) : 내자동 종교교회 앞에 있던 돌다리로, 종침다리 또는 종교(宗橋)라고도 하였다.[18] 1908년, 종침교 건너편 한옥의 예배당을 ‘종교교회’라고 부르게 된 유래가 되었다.[19] 성종 때 윤씨 폐비를 논하기 위해 입궐하던 허종, 허침 형제가 일부러 다리 밑으로 떨어져 이후 연산군의 갑자사화 때 화를 면했다고 해서 형제의 이름을 한 글자씩 따서 종침교라 불리기 시작했다고 하며, 그 이전에는 송첨교(松籤橋)라 불렸다.[20] 1925년 백운동천 복개 과정에서 철거되었다고 한다.[21]
- 송기교(松杞橋) : 신문로1가 23번지에 있었으며, 송기전교(松肌廛橋)라고도 불렀다.[18] 송기교를 기준으로 백운동천이 청계천으로 바뀐다.[18]
신교 (1900년 촬영)
자수궁교
금천교 (1928년 이전 촬영)
서울특별시 홍보기획관 홍보담당관 (2006). 《청계천복원사업 백서 1》. 서울: 서울특별시. 10쪽.
서울역사박물관 (2014). 《성 베네딕도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소장 서울사진》. 서울: 서울역사박물관. 171-173쪽. ISBN 9788991553941.
“횡설수설”. 《동아일보》. 1977년 11월 29일. 2016년 11월 27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