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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요시 친왕
14세기 일본의 황족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모리요시 친왕(일본어: 護良親王 もりよししんのう[*][주석 1])은 일본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부터 겐무 신정(建武新政)까지의 황족 ・ 승려 ・ 무장 ・ 천태좌주(天台座主)・정이대장군(征夷大将軍)이다. 고다이고 천황의 후궁 소생의 아들이다. 구스노키 마사시게, 닛타 요시사다 등과 힘을 합쳐 가마쿠라 막부를 무너뜨리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이후 무가의 필두였던 아시카가 다카우지 및 다른 무사, 황족들과의 알력으로 암살되었다.
오토노미야 모리요시 친왕 大塔宮護良親王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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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부 타도를 위해 거병하였을 때의 모리요시 친왕의 모습을 그린 그림 | |
일본국 정이대장군 | |
재임 | 1333년 |
전임 | 모리쿠니 친왕 |
후임 | 나리요시 친왕 |
천황 | 고다이고 천황 |
이름 | |
휘 | 모리요시(護良, もりよし) |
별호 | 오토노미야(大塔宮) |
신상정보 | |
출생일 | 엔쿄(延慶) 원년(1308년) |
사망일 | 겐무(建武) 2년(1335년) 7월 23일(양력 8월 12일) |
부친 | 고다이고 천황 |
모친 | 민부경 삼위(民部卿三位) |
배우자 | 정실(친왕비): 기타바타케 지카후사(北畠親房)의 딸 미나미노카타(南方, 후지와라노 야스후지藤原保藤의 딸) 미나모토노 모로시게(源師茂)의 딸 |
통칭 오토노미야(大塔宮)이다. 해당 통칭도 일본어 정식 독법은 「오토노미야」(おおとうのみや)이나 세간에서는 「다이토노미야」(だいとうのみや)로 읽었다.[1] 일반적으로 고다이고 천황의 제3황자로 되어 있지만 이치조미야(一宮) 즉 제1황자라는 설도 있다.[주석 2] 어머니는 민부경 삼위(民部卿三位)로 , 기타바타케 모로치카(北畠師親)의 딸인 스케코(資子) 또는 가데노코지 쓰네미쓰(勘解由小路経光, 히로바시 쓰네미쓰広橋経光)의 딸 쓰네코(経子)라는 설도 있다. 손친 법친왕(尊珍法親王)의 이복 형제이며, 아들로 오키요시 친왕(興良親王)이 있었다.
겐코의 난(元弘の乱)으로 가마쿠라 막부(鎌倉幕府)를 타도하는 과정에서 공을 세웠으며, 겐무 신정에서는 세이이타이쇼군(征夷大将軍)에 보임되었다. 그러나 막부 타도의 또 다른 공로자로써 무사들의 지지를 받고 있던 아시카가 타카우지(足利尊氏)를 멀리했던 모리요시 친왕은, 거꾸로 타카우지를 총애하던 고다이고 천황과는 자주 의견 차이가 있었고, 세이이타이쇼군에서 해임되고 정치적 지위도 잃어 가마쿠라에 유폐되었다. 이후 나카센다이의 난(中先代の乱)의 혼란 와중에 아시카가 다다요시(足利直義)의 명을 받은 후치베 요시히로(淵辺義博)에 의해 피살되었다. 가마쿠라 궁(鎌倉宮)의 주제신(主祭神)이기도 하다.